디지털의 습격, 우주 서사시의 제2막을 열다그곳은 루카스 왕국이었다. 야트막한 초록 능선 위에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드문드문 서 있는 빅토리아풍 저택들 사이로 사슴이 촉촉한 코를 불쑥 들이미는 드넓은 사유지. 마치 은퇴한 거부의 별장인 듯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카이워커 랜치’는, 뜻밖에도 250명의 직원이 맹렬하게 일하고 있는 루카스필름의 본사다. 현지 시간 5월5일 저녁,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시간 거리의 마린 카운티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II: 클론의 습격>의 세계 언론 시사가 있었다. ‘오래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또하나의 루카스 왕국이, 디지털 프로젝터를 통과해 스크린 위로 옮겨진 것이다.
장대한 스펙터클, 탄탄해진 스토리지난 이야기로부터 10년이 흐른 시점, 타투인의 노예 소년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는 이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의 수련제자로 성장했다. 여왕직에서 물러난 은하계 상원의원 파드메 아미달라(내털리 포트먼)가 암살 위협을 받자, 아나킨은 그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암살의 배후에 있는 분리주의자 카운트 두쿠(크리스토퍼 리)의 음모와 클론 군대를 조직해 권력을 키워나가는 팰퍼타인 상원의장(이안 맥디아미드)의 야심이 부딪쳐 전쟁을 야기하며, 한편 나부에서 함께 지내는 아미달라와 아나킨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튼다. 대규모 드로이드 군단과 복제인간 군인들의 스펙터클한 전투, 그리고 사적인 감정이 금지된 제다이 기사와 공적인 의무에 스스로를 매어둔 의원과의 사랑은 영화의 양날개가 되어 웅장한 액션과 낭만적인 로맨스의 양편으로 활개를 넓게 펼친다.현란한 볼거리에 비해 빈약하다는 평을 받으며 전작의 결함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는, 에피소드2에서 훨씬 탄탄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프리퀼 3부작의 가장 굵은 축은 아나킨이 다스베이더로 변화하는 과정. 첫편에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어린 소년으로 소개되었던 ‘애니’가 에피소드3에서 악의 화신으로 거듭난다면, 가운데인 <클론의 습격>은 그 변모의 단초들을 심어놓는 데 주력한다. 신예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강력한 포스를 타고났으되 그것을 조절하는 통제력은 갖추지 못한 젊은 제다이가 겪는 혼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헤어진 어머니 슈미와 재회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죄책감과 무력감,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가 자신의 재능을 질투하고 억누른다는 원망과 반항심, 아미달라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들어 어기고 마는 제다이 규율로부터의 일탈 등이 그의 눈빛에 어둠의 표식을 심어놓는다. 화려한 액션신을 곳곳에 배치하는 한편 로맨스를 강화한 것은 <스타워즈> 팬들뿐 아니라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필름 아닌 필름의 시대를 열다완성된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에피소드2는 소니의 HD 디지털카메라와 파나비전 렌즈를 이용한 100% 디지털 촬영으로 화제가 되었다. ILM의 슈퍼바이저 16명이 만들어낸 대규모 전투신의 스펙터클, 여러 행성들의 개성어린 배경, 전편의 포드레이싱을 뛰어넘는 생생한 추격장면, 프랭크 오즈의 목소리 옷을 입은 CG 캐릭터 요다의 미세한 주름과 머리카락 등은 과연 놀랄 만큼 선명한 영상을 펼친다. 그러나 에피소드2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주목받는 것은 컴퓨터그래픽이 구현하는 포토리얼리즘의 측면이 아니다. 실사영화 최초로 영상을 필름이 아닌 픽셀로 저장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필름(기록매체로서의) 아닌 필름(영화)’의 시대를 연 것이다. 프로듀서인 릭 매캘럼은 “CG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 영화에서 이런 식의 작업방식은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이미지를 스캔할 필요없이 촬영 뒤 1주일이면 그래픽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후반작업’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진 것. 그러나 극장 시설의 인프라는 아직 디지털 상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프로젝터를 구비한 극장은 미국 안에서도 70여개, 밖으로는 20∼30여개 극장에 불과해 이번 에피소드2 세계 개봉을 위해서는 디지털 영상을 필름 프린트로 옮기는 작업이 불가피하다.이 연작을 교향곡에 종종 비유해온 조지 루카스는 과거의 3부작 중 두 번째였던 <제국의 역습>에서 제시되었던 테마를 여러 시퀀스에서 반복변주하며 운을 맞춘다. 특히 다스베이더와 루크의 관계가 드디어 밝혀진 에피소드5의 주제였던 ‘아버지(혹은 상징적인 아버지인 스승)와 아들의 대결’은 이번 악장에서 더욱 복합적으로 재현된다. ‘미싱 링크’였던 카운트 두쿠가 등장하면서 요다-카운트 두쿠-콰이곤 진-오비완 케노비-아나킨으로 이어지는 제다이 기사의 사제관계 계보가 제시되며 그들간의 피할 수 없는 결투 또한 비장하게 그려지는 것.
카운트 두쿠와의 싸움 도중 손을 잘리고 의수를 다는 아나킨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아들에게 같은 일을 저지르게 되는 그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미리 목격한다. 그 밖에 오비완이 우주선을 소행성 뒤에 숨겨 장고팻을 따돌리는 추격신은 한 솔로의 우주선 밀레니엄 팰콘을, 제다이와 드로이드의 전투장면에 등장하는 AT-TE 워커는 긴 다리의 AT-AT 워커를 추억하게 한다. 열성팬들에게는 어떤 제다이 기사가 캐릭터 상품 리스트에 등극하는지, 광선검 액션에는 무슨 변화가 있는지 또한 중대 관심사일 것이다. 옛 3부작의 현상금 사냥꾼 보바팻의 아버지인 장고팻은 비중있게 등장한 새 인물. 그는 카미노 별에서 만들어지는 클론 군대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악한 마법사 사루만으로 등장한 크리스토퍼 리는 변절한 제다이 카운트 두쿠를 연기하며 다시 한번 악역의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요다의 활약. 주로 ‘포스’를 조용히 설파하는 현자였던 그가 이번에는 손수 짧은 광선검을 휘두르며, 오비완과 메이스 윈두(새뮤얼 잭슨) 등의 제다이 기사들도 전작에 비해 비중이 늘어났다. 1부에서 다스 몰의 양방향 광선검이 화제가 되었다면, 이번에는 로마식 원형극장에서 수백명의 제다이 기사가 푸른 빛을 번쩍이는 대규모 결투신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고전 SF영화의 우주인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긴 실루엣의 카미노족, 곤충을 닮은 제노시스족이 새로 등장하는 대신 혹평을 받았던 겅간족 자자 빙크스의 비중이 대폭 줄어든 데서는 1편을 의식한 흔적이 엿보인다.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될 에피소드3스카이워커 랜치의 집무관 안에 2개 층으로 꾸며진 루카스의 서재에는 철학서부터 러시아 요정 이야기, 로마시대 건축양식에 관한 책까지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곳에서 온갖 시대의 문화적 스타일을 망라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마지막 이야기도 탄생할 것이다. 대대로 새 작품에 대해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루카스는 에피소드3에 대해서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정도로 말을 아끼고 있으나, 오비완과 요다를 제외한 모든 제다이 기사들이 몰살당하며 루크와 레이아의 탄생 이후 아나킨이 다스베이더로 점점 기계화하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는 5월16일 개봉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6월 월드컵의 열기를 피하는 대신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맞춰 7월5일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