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②] 웹소설 '템빨' 박새날 작가 “게임은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더없이 멋진 수단”
2020-11-20
글 : 조현나
박새날 작가. 사진제공 마야마루출판사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템빨’이 진리 아닌가?” <템빨>이란 소설의 제목만큼이나 명료한 박새날 작가의 답변이다. <템빨>은 하루 평균 14시간을 가상현실게임 ‘Satisfy’에 투자해온 주인공 신영우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게임 속 직업인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할 수 있는 아이템 ‘레전드리 전직서’를 찾게 되면서 온오프라인에서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4년 12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 <템빨>은 인기에 힘입어 이후 조아라, 네이버 시리즈, 리디북스 등에서 동시 연재됐다. 카카오페이지에서만 249만명이 선택했으며 지난 4월 1일 연재를 시작한 동명의 웹툰도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118만명이 구독 중이다. 누적 조회수 5억8천회, 누적 매출액 100억원 이상으로 가공할 만한 기록을 세운 <템빨>은,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국내 게임소설 중 하나다.

박새날 작가는 “어려서부터 독서와 게임을 좋아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장르소설에 입문한 뒤로 2년 만에 책을 출판했을 정도로 소설을 읽고 쓰는 일에 익숙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아직 생소하던 시절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했다.” 그런 박새날 작가가 소설 <템빨>을 쓰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템빨>의 기초적인 설정은 당시 최고 히트작이었던 게임소설 <달빛조각사>의 영향을, 전반적인 시스템은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의 영향을 받았다. 소설의 제목을 <템빨>로 정하게 된 건 “게임소설에서 가장 당연하게 강조해야 할 요소이고, 그 부분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가상현실게임의 이름을 ‘Satisfy’로 설정한 이유도 비슷하다. “게임이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더없이 멋진 수단이기 때문이다.” 게임소설에 입문한 것에서부터 <템빨> 세계관 내의 세부적인 이름을 설정하는 데까지, 게임에 대한 박새날 작가의 애정이 작품 곳곳에 강하게 묻어 있다.

<템빨>의 세계관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세분화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필드’만 해도 인간계, 지옥, 신계, 무릉도원 총 4가지이며 게임 속 유저들을 구분하는 ‘클래스’도 히든 클래스만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드리, 신화로 나뉠 정도다. 하지만 박새날 작가가 처음 소설의 세계관을 구상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격 등 큰 틀만 정해두고 곧장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새날 작가는 연재를 진행하면서 최대한 독자의 니즈에 맞춰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템빨>의 스케일이 크고 등장인물도 워낙 많다보니, 일부 팬들은 <템빨>의 설정과 등장인물들을 따로 정리한다. 박새날 작가 역시 설정집을 만들어 지금까지의 작품 설정을 기록해뒀다고 전한다.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보험 같은 거다. 다만 앞으로 진행할 에피소드들은 새로운 여백에 구상한다.”

주인공 신영우는 그저 아이템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킬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노력파 성장 캐릭터다. 박새날 작가는 “신영우를 처음부터 일부러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으로 설정했다. 완성형 주인공보다는 성장형 주인공을 보여줘야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영우에게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빚보증 문제 때문에 집안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신영우는 삐뚤어지지 않고 전설의 대장장이라는 능력치를 살려 열심히 아이템을 제작하고 수익을 얻는다. 소설에 따르면 신영우가 판매한 ‘무아지경의 검’과 같은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는 2억6천만원 상당의 거액으로 판매됐다.

신영우의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은 ‘그리드’. 그리드의 적대 세력 중 ‘임모탈’이 있는데, 임모탈의 수장이자 기적의 5인 중 한명인 ‘아그너스’는 신영우처럼 불행한 과거를 지녔지만 그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그리드의 변화 과정을 그리던 중 ‘과연 내가 그리드 같은 과거를 겪었을 때, 그처럼 선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영우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아그너스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박새날 작가는 그런 아그너스에게도 애정이 깊다. “아그너스는 불행한 과거를 겪었기 때문에 뒤틀린 사람이다. 그리드의 행보를 인정하면 스스로 혐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드를 함부로 인정할 수도 없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아그너스 외에도 박새날 작가는 기적의 5인 중 한명인 크라우젤을 가장 좋아한다. “남들이 못하는 걸 쉽게 해내고, 그로 인해 세간의 존경을 얻는 천재 캐릭터다. 크라우젤이 어떤 일을 해도 독자들이 납득하기 때문에 크라우젤 에피소드를 쓸 때가 가장 쉽고 재밌다.”

사진제공 마야마루출판사

2008년 <공작아들>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 박새날 작가는 <9서클 마법사의 아들>을 거쳐 <템빨>을 연재하며 인기 게임 웹소설 작가로 거듭났다. 연재를 시작한 2014년부터 4년 정도는 주 5회를 연재해야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글을 쓰고 토요일과 일요일엔 다음주 에피소드를 구상하느라 쉬는 날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는 푹 쉬고 이틀은 에피소드 구상, 4일은 작품을 연재하는 데 할애한다.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작품을 연재 중이라 지겨울 법도 한데, 박새날 작가에게 게임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취미생활 중 하나다. “특히 길드 개념이 있는 MMORPG를 좋아한다. 이길 때의 쾌감이 크고, 졌을 때는 사람들과 서로 위로하면서 더 큰 열정을 품게 돼서 질리질 않는다.” 또한 이런 게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박새날 작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게임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다른 연령대,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캐릭터를 창조한다. 사실 캐릭터의 배경과 성격만 정해지면 서사를 만드는 건 오히려 쉽다.”

독자와 소통도 활발히 하고 독자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박새날 작가는, <템빨>과 같은 게임 판타지 소설의 인기 비결로 ‘가상현실게임’이라는 소재를 언급한다. “독자들도, 작가인 나도 언젠가 가상현실게임이 나왔을 때를 상상하며 즐겁게 읽고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아직 <템빨>의 영상화 계획은 없지만 만약 영상화된다면 박새날 작가가 가장 기대하는 장면은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싸우는 장면”이다. 현재 박새날 작가가 구상 중인 차기작의 프롤로그는 <템빨>의 에필로그다. 한 작품의 끝이, 또 다른 작품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템빨>의 세계관이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해진다.

사진제공 마야마루출판사

<템빨>은 어떤 작품?

카카오페이지 / 웹소설-월·수·금·토요일 연재, 웹툰-매주 토요일 연재

공사장에서 일하는 영우는 가상현실게임 ‘Satisfy’에서 ‘그리드’란 이름으로 하루 평균 14시간을 투자하는 플레이어다. 게임에 그다지 재능이 없어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투자함에도 남들보다 레벨을 올리는 속도가 늦다. 그러던 중 영우는 북쪽 끝 동굴 어딘가에 있는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의 기서’를 찾아내란 S급 퀘스트를 받게 된다.

3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실존하는지조차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북쪽 끝의 동굴을 찾아낸 영우는, 레전드리 직업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할 수 있는 레전드리 전직서를 찾아내고 이를 인생 대역전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템빨>은 신영우의 성장과 그리드와 아그너스의 대립, 수없이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과 그들의 등장과 함께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소설의 복잡한 세계관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마치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제공 마야마루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