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①] 안재홍 감독 "마음의 울렁거림을 간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020-12-08
글 : 남선우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안재홍 감독

그를 만나자마자 호칭부터 정리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이하 <울렁울렁>)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안재홍 감독 겸 배우는 대중에게 연기자로 더 익숙하지만 이미 단편 <좋은연기> <열아홉, 연주> <검은돼지> 등을 만든 어엿한 연출 경력자다.

그가 올해 6월 울릉도에서 촬영한 단편 <울렁울렁>은 울릉도에 사는 철수(안재홍)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간 영희(이솜)의 마음을 따라간다. 풍랑주의보에 발이 묶인 영희가 철수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면서, 어쩌면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밤일지 모를 시간이 펼쳐진다. 영화는 두 사람을 묵묵하고 담담하게 좇으며 만든 이의 담백한 섬세함을 재확인하게 한다. 배우로서 관객을 만날 때보다 연출자로서 관객을 만날 때 한층 “폭넓은 민망함”이 동반된다는 그를 기어이 ‘감독님’이라 부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검은돼지>(2015) 이후 오랜만의 연출 복귀다. 지난 3월 <씨네21>과 만났을 때 장편 연출 계획은 아직 없고 “학교 다닐 때 워크숍 영화를 연출했듯이 단편영화를 몇편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 했었다.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볼 때의 설렘, 그 떨림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울렁울렁>은 어떻게 시작됐나.

=4~5년 전에 우연히 <울릉도 트위스트>를 들었는데 가사가 괜히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울릉도의 동백꽃과 호박엿을 말하다 ‘나를 데려가세요’라며 끝나는데, 왜 ‘어서 오세요’가 아니라 ‘데려가세요’일까 싶었다. 그때 받은 느낌을 영화화하면 재밌겠다 싶어 혼자 일주일 정도 울릉도를 여행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에 “재밌다가도 가슴 먹먹해지는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가 적혀 있더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는 먹먹한 감흥을 주고 싶었다. 연출 의도는…. 다른 감독님들은 멋스럽게 쓰셨던데 나만 너무 멋없이 쓴 게 아닌가 싶다. (웃음)

-다시 쓸 수 있다면 뭐라고 쓰겠나.

=오미자차 같은, 다섯 가지의 맛이 나는 다채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쓸 것 같은데? 근데 그것도 좀 별로다. 담백한 게 좋은 것 같다. (웃음)

-이별했지만 헤어진 상태가 아닌 연인의 시간을 씁쓸하고도 재치 있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나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 같은 작품도 떠올랐다.

=특별히 참고한 영화는 없지만 90년대 멜로영화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지금 봐도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들.

-두 사람의 감정을 은유하는 것만 같은 상황과 대사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우리의 사연을 묻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철수의 대사가 특히 그랬다. 이들의 이별 사유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느냐고, 관객에게 되묻는 듯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그 대사는 정확히 그런 지점을 의도했다. 이별의 이유보다 이별을 했다는 사실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감정이 더 중요한 영화였으면 했다. 최대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은 채 제목처럼 계속 마음의 울렁거림을 간직한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 관객이 더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감독 안재홍 출연 이솜, 안재홍 제작연도 2020년 상영시간 30분 페스티벌 초이스

-영희를 연기한 이솜 배우와 <소공녀>에 이어 다시 한번 합을 맞췄다.

=이 영화가 영희로 시작해서 영희로 끝나는 데다 영희가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다보니 연기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관객이 계속해서 인물의 감정을 궁금해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존재감 강한 배우를 모시고 싶었다. 이솜씨가 즐겁게 임해줘서 고마웠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연기한 박호산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도 꼭 드리고 싶다. 유일하게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쓴 역할인데, 1년 전쯤 광화문시네마 엠티에서 호산 선배님이 기타를 들고 체감 다섯 시간 정도 떼창을 유도하셨다. (웃음)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등장과 동시에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어 연락을 드렸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 승낙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또 다른 인연도 눈에 들어왔다. 음악에 자이언티가 참여했는데, 안재홍 감독은 그가 가수 이문세와 함께 부른 <눈>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너무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주입하지 않는, 촌스러운 느낌도 조금은 풍기는 음악을 원한다는 애매모호한 말씀을 드렸는데 ‘어떻게 한거지?’ 싶을 만큼 멋진 결과물이 나왔다. 롱테이크 두컷에 걸쳐서 음악이 나오는데, 덕분에 무드가 잘 잡혔다.

-<울렁울렁>을 영화제 밖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영화제 상영 버전과는 조금 다른 완성본이 이제 막 나왔다. 어떤 식으로 공개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께 <울렁울렁>을 선보이고자 논의 중이다. 이야기를 확장시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만들고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소감을 듣고 싶다.

=투박하더라도 재밌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한 시간이었다. 작업을 해내고 관객을 만나기까지가 많은 자극과 환기가 되었다. 이 구상을 실현시켜준 아토의 김순모 프로듀서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진제공 제이와이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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