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서복' 공유 - 모험하는 신중함
2020-12-25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복제 인간 서복(박보검)을 바라보는 기헌(공유)의 눈빛엔 언제나 많은 질문이 담겨 있다. 억제제를 매일 맞는다고? 매번 이런 음식만 먹는다고? 서복을 실험체가 아닌 인간으로 여기기에 건넬 수 있는 질문들. 이 질문들을 딛고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인 서복과 기헌은 조금씩,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배우 공유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전직 요원 기헌의 절박함을 표현하기 위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했다. 서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영화의 화자로서 삶과 죽음을 논하는 <서복>의 메시지를 결코 얕게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유 배우는 ‘눈빛이 처연해서, 기헌과 같은 힘든 상황의 인물을 자주 맡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처연함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한 감정들이 그의 눈에 담겼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은 건 <도가니> <부산행>에 이어 <서복>이 세 번째”라고 말하는 공유는, 영화가 건네는 마지막 질문을 향해 친절하게 관객을 인도한다. 지면에 실리지 않은 미공개컷도 함께 공개한다.

-(스튜디오 벽에 붙은 사진을 가리키며) 혹시 언제 촬영한 사진인지 기억하나요.

=네, 기억해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끝났을 때예요. 이 작품에 관해 공식적으로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였거든요. 원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려다가 했던 거라 더 기억이 남아요. 저때 브로마이드용으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어요. (웃음) 당시 <씨네21>이 <커피프린스 1호점>에 관해 이야기했던 유일한 창구였죠.

-오늘은 <서복>에 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스스로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라고 했던데, <서복>의 경우 어떤 점이 신선하다고 느껴졌나요.

=일단 <서복>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단순한 킬링 타임용 영화가 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또 작품을 선택하는데 요즘 저의 생각과 고민이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 ‘2050년의 한국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이런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거든요. <서복>에 등장한 복제 인간도 가까운 미래에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최근 전부 근미래가 배경인 작품들을 선택했는데, <서복>이 그 시작점이 됐어요.

-얘기한 대로 <서복>은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영화예요. 기헌은 영생의 열쇠를 쥔 복제 인간 서복의 곁을 지키는 관찰자로 등장하는데, 관객은 기헌의 관점을 통해 서복을 바라보게 되죠.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을 듯해요.

=어려웠죠. 이상하게 제가 그런 역할을 많이 맡아요. (웃음) <부산행>도 그렇고 <도가니>도. 기헌은 관객에게 영화를 안내하는 입장인데, 저는 <서복>이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생각하거든요. 그 질문에 다다르기까지 관객을 잘 인도해야 하는 기헌의 역할이 어려웠고 부담도 됐는데, 한편으론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메신저가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중점을 뒀을 것 같아요.

=네, 대사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용주 감독님은 꾸밈없는 날것의 대사를 쓰는 분이거든요. 멋 부린 대사보다 그런 대사를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워서 노력을 많이 했고 표정이나 눈빛, 동작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별히 공을 들인 장면이 있나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신이 있어요. 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기헌과 임세은 박사(장영남)가 연구소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신이에요. 제가 “임상실험이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되냐”라고 물으니 임세은 박사가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라면서 한마디를 덧붙여요. “사람들 참 겁 많죠? 욕심도 많고.” 저는 임세은 박사가 기헌에게 건네는 이 대사가 <서복>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기헌도 지금 죽음을 앞두고 삶이 너무 간절한 상황인데, 그때 임세은 박사의 대사가 탁, 하고 마음에 박히는 거죠.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좋아했고, 그만큼 공을 들였어요. 제가 작품에 몰입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 신이에요.

-이용주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감독님은 저를 믿고 맡길 때가 많았어요. 감정이 폭발하는 신들을 찍을 때라든지, 제가 하고 싶은 대사 같은 게 있으면 편히 하라고 말했어요. 평소 이렇게 저렇게 도전해보는 걸 좋아하는데 <서복>은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았어요.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다 보니 대사나 행동에 있어 좀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기헌의 상황 때문에 더 그랬을 것 같아요.

=그렇죠.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저는 죽음을 경험한 적도,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적도 없으니 다큐멘터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헌의 상황을 그려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대사 한 마디도 신중하게 말했고, 기헌의 상황에 관해서도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서복이 “왜 항상 화만 내냐”라고 말할 정도로 날 서 있던 기헌의 모습이 이해가 가요. 전작에서 보지 못한 모습이에요.

=제가 전에 했던 캐릭터들이랑은 확실히 다르긴 해요. 그리고 아마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입이 거친 인물일 거예요. (웃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오는 예민함도 있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 기헌을 물아붙이는 거죠. 그런데 감독님이 제게 기헌이란 인물을 맡긴 데에는 그런 기헌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길 원했을 거라고 받아들였어요. 그럼 기헌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엔 농담도 잘하고 장난기도 많은 사람이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복을 만났을 땐 과거의 모습이 조금씩 튀어나오도록 톤을 잡았어요.

-기헌의 수척한 모습을 보면서 외적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시한부를 선고받은 상황이니까 볼도 좀더 패어 있었으면 좋겠고, 눈도 퀭하게 보였으면 해서 체중 관리를 했어요. 촬영 중에도 계속 신경을 썼고요.

-액션 신에 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지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82년생 김지영> 촬영 현장은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복>에서 많이 굴렀다”라고 얘기했어요.

=사실 액션 신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는데 말 그대로 몸을 굴려가며 촬영해야 하는 신들이 있었어요. 기헌과 달리 서복은 주로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본인의 능력을 사용하곤 하거든요. 그럴 때 박보검 배우가 부러웠어요. (웃음) 그래도 <용의자>라든지, 전작에서 난이도 높은 액션 신들을 많이 소화해서 <서복>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촬영했어요. 무술감독님도 오셔서 “할 줄 아시잖아요” 하고 몇번 시범을 보여주시고. 그렇게 촬영했어요. (웃음)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임무를 맡은 기헌은, 모두가 서복을 실험 대상으로 바라볼 때 유일하게 그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우해주는 인물이에요.

=기헌이 그렇게 변해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겉보기엔 그 또래 남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서복이 복제 인간이라고 하니 기헌도 처음엔 반신반의해요. 그러다 함께 긴 여정을 떠나게 되면서 서복이 툭툭, 내뱉는 말들이 기헌에게 크게 다가오는 거죠. ‘평생 이것만 먹고, 이것만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중간에 서복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루”를 산다고 하니, 가만히 듣던 기헌이 “속여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두 사람이 교감하는 클라이막스 신이라고 생각해요. 이 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관계가 더 끈끈해지거든요. 죽음을 앞둔 기헌과 영원한 삶을 사는 서복. 두 사람이 완벽히 대비되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게 영화 <서복>을 선택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해요.

-<서복>에서 처음 만난 박보검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요.

=따지고 보면 제가 남자배우와 투톱으로 나온 적이 많지 않아요. 그런 점이 신선했고, 서로 주고받는 신이 많다보니 촬영할 때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박보검 배우의 순수하고 밝은 에너지가 제게 도움을 줬고요. 또 저와 비슷한 길을 걷는, 걷고 있는 후배 배우이다 보니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말하지 않아도 지금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 느껴질 때가 있었고. 선배로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격려도 많이 건넸어요.

-박보검 배우에게 화내는 연기에 관한 조언을 해줬다고 알고 있어요. 주로 어떤 얘기를 해줬나요.

=조언이라기보다는… <서복>이 CG가 많은 영화라 상황을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영화를 늘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다보니 갑자기 감정을 크게 발산해야 하는 때가 더러 있었는데, 안 그런 척 연기를 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찍을 때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모노드라마 찍듯이 혼자 “으악!” 하고 소리 지르고 제스처를 취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럴 때 저는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데, 그러면 상황에 더 집중하게 돼요. 마치 노래하기 전에 목을 풀듯이. 그런 후엔 다음 테이크를 가는 게 훨씬 수월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서로 많이 나눴어요.

-드라마 <도깨비> 이후에는 <82년생 김지영>과 <서복> 등 계속 영화를 선택했는데, 혹시 영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맞아요. <도깨비> 끝나고 너무 소진돼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작품을 시작했거든요. 제가 영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뒤돌아서 보니 제가 영화 현장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여러 차례 했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툭 치고 나타났는데 웬걸, 정말 제 필모그래피에 있다는 게 너무너무 좋은 작품이에요. 이 말을 나중에 감독님과 제작사에 했더니 되게 감동받으시더라고요. (웃음) <82년생 김지영>은 작품만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만족스럽게 촬영한 영화예요. <서복>은 <82년생 김지영>과는 너무 다른 컬러의 영화죠. 기헌이 워낙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고. 저한테 그런 처연한 역할들이 많이 들어와요.

-눈빛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서복>에서도 기헌이 서복을 쳐다볼 때 눈빛에서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어요.

=제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가진 눈이 기본적으로 처연하다고. 그런데 장난기도 있다고. (웃음) 저는 잘 모르지만, 제 눈빛이 가진 처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선택을 일부러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도 하는데, 그런 선택은 어려운 만큼 확실히 매력이 있어요.

-데뷔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되셨습니다. 스스로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보면 <서복>의 본질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갈수록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사람들 참 겁 많죠? 욕심도 많고”라는 임세은 박사의 대사가 유독 와닿은 것도 그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싶어요. 돈이나 명예와 같은 물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또 매사에 너무 들뜨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려 해요. 늘 일이 잘 될 수 없으니 좋지 않은 경우의 수부터 미리 생각하고, 그러다 일이 잘되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계속 내려놓는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변화하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숲 매니지먼트의 유튜브에서 낚시하는 영상들을 봤어요. 워낙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배우라 그런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낚시 이야기는 밤새워 할 수 있어요. (웃음) 2015년 즈음에 지인을 따라 갔다가 낚시에 매력을 느꼈어요. 생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는데, 그 복잡한 생각을 다 없애줬어요. 이렇게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주는구나, 고기를 꼭 잡지 않아도 제가 치유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의 제게 정말 필요한 시간이다 싶었죠. <서복>에 같이 출연한 박병은 배우와도 통영에 촬영 갔을 때 같이 낚시를 했어요. 하필 또 촬영지가 통영이어서. (웃음) 지금도 맨날 유튜브 채널에서 낚시 영상 보고, 대리 만족을 하고 있어요. 기자님, 4대 돔이 뭔지 아세요? (웃음) 낚시 한번 해보세요.

-<서복> 이후에도 <원더랜드>와 <고요의 바다> <오징어 게임> 등 차기작들이 관객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어요. 작품이 많아서 바쁜 일정을 보냈을 것 같아요.

=네, 특히 <원더랜드>와 <고요의 바다>는 촬영 일정이 조금 겹쳐서 바쁘게 촬영했어요. <오징어 게임>은 특별 출연인데요, 늘 극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제게 부여된 캐릭터 하나에만 충실하면 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이정재 배우와도 처음 합을 맞춘 거라 나름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작품이 다 재밌게 나올 거 같아서 기대가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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