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씨네21' 정훈이 만화 연재 종료… 정훈이 작가 인터뷰
2020-12-28
글 : 이다혜
정훈이 만화는 수필 같아... 생활 중에 이야깃거리를 건져올렸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때는 1995년 <영챔프>가 주관하는 제2회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수상한 젊은 만화가 정훈이는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인연으로 영화에 대한 2쪽짜리 만화를 연재하게 되었다. 1996년에 시작한 연재는 10년을 넘겨 계속되다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독자들의 성원으로 다시 <씨네21> 지면에 복귀했다. “동철이 형(남동철 기자)이 연락을 해와서는, 다시 연재하면 안되겠냐고 하더라고요. 정훈이 만화 때문에 정기구독 그만둔 사람도 있다고.” <씨네21>에서 편집장까지 지낸 남동철 기자를 ‘동철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창간 초기 밤샘이 일상 같던 주간지에서 연재 만화가와 기자들은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웹하드로 원고를 주고받으면서는 연재 작가와 편집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어, 출판 만화에서 웹툰으로 만화판의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갔다. 매체 역시 거센 변화의 파고를 어렵사리 넘는 중이다.

2020년 12월 송년호를 끝으로 정훈이 만화의 연재가 종료된다. <씨네21>의 많은 독자들에게도 편집부에도, 해학 넘치는 친구였던 남기남, 씨네박 같은 캐릭터를 더이상 지면에서 만날 수 없게 된다. 정훈이 작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오랜 마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들었다. 남선우 기자가 역대 정훈이 만화 중에 재미있는 작품을 10편 선정해 함께 소개한다.

-1996년 초에 연재를 시작해 2020년 마지막 책까지 정훈이 만화를 연재했다. <씨네21> 편집부에서 가장 오래 <씨네21> 지면을 지킨 사람 중 하나다. 마지막 원고 작업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했는데.

=세대가 여러 번 바뀐 걸 실감할 정도로 오래 했다. 10년쯤 했을 때는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세월이 빨리, 많이 흘렀다. 아쉬운 마음이 큰데, 일이 끝나서 아쉽다기보다는 조금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20대 때는 예비군 얘기를 했는데, 어느새 민방위 얘기를 하게 됐고 이제 50대가 눈앞이니까 독자들과 맞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지금에 딱 맞지 않나 한다.

-처음에는 창원에서 시작했고, 서울, 일산으로 이주해서 오래 마감을 했다. 지금은 대구에 있다. <씨네21> 편집부와 점점 가까워졌다가 멀어진 시간이었다.

=서울에 살다가 전세금에 쫓겨서 서울 외곽으로 갔다. 프리랜서라 출퇴근에 구애받지 않으니까 서울에서 점점 멀어졌다. 일산으로 갔다가 더 북쪽인 파주로 갔다가, 월북할 시점에 결혼하면서 대구로 왔다. 부모님 연세도 있지만, 당시 장인어른 건강이 안 좋아서 대구로 와서 살게 됐다. 필요하면 KTX 타고 서울로 가면 되니까.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니까 대구에 있으나 울릉도에 있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더라. 갈수록 사람들을 안 만나게 되더라. 담당자 얼굴을 볼 일도 없게 되고.

-연재 초기에는 만화 원고 데이터를 들고 사무실에 왔기 때문에 기자들과도 모두 알고 지냈다.

=연재 초반에는 벽돌만 한 외장 하드를 들고 매주 사무실에 갔다. 마감 끝날 때까지 같이 있다가 회식도 같이 갔다. 재미있었다. 물리적으로 원고 전달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가야 했던 시대가 만든 상황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심리적인 거리도 생긴 시간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훈이 만화에 <씨네21> 편집부가 종종 등장했다. 기자 생김새나 성격을 다 알고 만화에 등장시켰다.

=마감을 <씨네21>에서 한 적이 있다. 그림을 그려 스캔하고 맥에서 작업한 데이터를 외장 하드에 담아서 <씨네21> 사무실에 가져가는 식으로 작업하던 시기였는데, 한밤중에 스캐너가 안되는 바람에 원고 들고 <씨네21> 가서 스캔을 받았다. <씨네21> 옆자리에 <한겨레21>이 있을 때였는데, 마감일이 다른 <한겨레21> 빈자리에 앉아서 마감 끝나기를 기다렸다. 당시 최보은 기자가 내 마감 경쟁자였다. 마감 꼴찌를 두고. 내가 사무실에 가면 마감을 못한 기자들이 당황해하고 놀라던 모습이 기억난다.

-최보은, 허문영 기자가 대체로 그 후보군이었다.

=나를 보고 당황해하던 표정. (웃음) “어, 왔냐? 조금만 더 늦게 오지.” 마감 꼴찌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심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씨네21> 마감 최후의 원고는 정훈이 만화와 편집장의 글이다. 예전에는 정훈이 만화가 일찍 들어오면 편집장들이 초조해하곤 했다.

=마감을 한주 전에 한 건 딱 한번이다. 내가 신혼여행 갔을 때. 나머지는 거의 마지막에 마감했다. 미리 마감하려고 전전날부터 열심히 하는데, 희한하게 마감이 닥쳐야 마감이 가능했다. 거의 다 그려놓고 다른 게 떠오르기도 하고. 그랬다. 원고 마감이 늦어서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마감 펑크낸 건 딱 한번, 초창기에. 자느라고. 한여름에 너무 더워서 한겨레신문사 바로 근처에 있던 선배 사무실에 가서 작업한 적이 있다. 작업하다가 컴퓨터가 뻗었다. 다시 부팅시켜놓고 잠깐 누웠다가 잠들었다. 일어나니까 아침이더라. 그런 일이 한번 있었다.

-그 한번 말고는 마감을 지켰다. 매번 아이템을 어떻게 찾나. 주간지 마감이 만만치가 않을 텐데.

=처음에는 비디오 대여순위 상위권에 있는 작품을 다뤘는데, 2~3년 지나서 <씨네21>에서 신작 영화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신작 영화를 다루면서부터 영화를 보고 그리지 못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영화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이야기가 된 셈이다. <씨네21>에 오래 연재한 것도 영화를 가지고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패러디를 한 것 이었으면 오래 못 그렸을 거다.

-매주 진행되는 작업 방식을 말해줄 수 있나.

=아이템을 잡을 때 특별한 건 없다. 강태공 낚시하듯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신작 영화에 계속 관심을 두고 관련 뉴스나 이슈를 찾아본다. 누가 특정한 영화로 그려달라고 해도 맞춤으로 그릴 수 없더라. 영화를 정해놓고 작업한 적은 거의 없다. 이번주 개봉작, 다음주 개봉작까지 늘 살펴보고 오래 생각을 굴린다. 요즘은 영화 유튜브가 많으니까 정보를 얻기는 더 쉬운데, 영화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면 영화에 얽매여서 어느 순간부터는 많이 찾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하게 된 적이 있다. 댓글을 보고 알았다. 엔딩을 모르고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스포일러가 된. 그 뒤로는 아예 엉뚱하게 그리게 된 거지. 단편영화나 예술영화를 많이 못 다룬 게 아쉽다.

-부인이 함께 마감을 한다고 알고 있다. 지금도 그런가.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아내가 고기를 잘 잡는 스타일이다. 모티브를 잘 잡는다. 그러다보니 의존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아내가 정치, 시사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와 이슈를 엮는 제안을 먼저 할 때도 있다. 다만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데, 상황이 너무 빨리 바뀌니까 일간지면 몰라도 주간지 리듬으로는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시사만평 같다가 시트콤 같다가 해서 정훈이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꾸준히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친구처럼 익숙해진다.

=상당수가 실존 인물이다. 친구들, 지인 등 실존 인물이 많다.

-본인들도 알고 있나.

=남기남은 생김새부터 친한 친구와 비슷하게 그렸다. 다른 캐릭터는 살면서 스친 사람 중 성격 등 일부를 가져오는 식이었고 에피소드 같은 건 전부 만화적 창작이다. 캐릭터 이름은 없는 채로 그리다가 뒤늦게 붙인 경우가 많다. ‘정훈이 만화’라는 명명도 처음에는 없었고, 등장인물도 초창기를 떠올리면 ‘씨네박’만 이름이 있었다. 즉흥적인 게 많았다.

-마감 늦을 때 영화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할 때가 있었다. 어떤 경우였나.

=아이디어를 두세개 두고 그중 골라서 작업한다. A안으로 그리다가 B안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려봐야 알 수 있다. 그러면 A안을 접고 B안을 새로 시작한다. A안을 다음주에 쓰면 좋은데 그렇게 한 적은 없다. 마음에 안 들어서 접은 거니까. 매주 개봉작이 많으니 항상 새로운 영화가 있기도 해서 아니다 싶은 건 잘 버린다. 한번은 컬러까지 다 해놓고 접은 적도 있다. 내 작품은 수필 같다. 생활 중에 생각난 것을 포착해서 그린다. 번쩍하고 영감이 떠올라서 그리는 건 대사도 잘 나오지만 계획을 세워서 하려면 하면 잘 안된다. 정훈이 만화의 경우 아이디어를 생각하면서 계속 돌아다닌다. 걸으면서 대사를 연기하고 상황극을 암기하면서 커피 마시고. 그렇게 이야기가 완성되면 그리기 시작한다. 오래 작업하다 보니 스토리보드 없이 그려도 칸수가 딱 맞는다. ‘생활의 달인’같다고나 할까.

-이건 내가 봐도 재밌었다는 회차나 영화가 있나.

=하도 오래되다 보니 너무 많아서 베스트를 꼽기가 어렵다. 그나마 지금도 기억나는 건 <사무라이 픽션>. 그것도 내 마음에 들었다기보다 사람들이 괜찮았다고 한 경우다. 나는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게 괜찮을 때가 많다.

-만화산업은 출판 만화에서 웹툰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잡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유튜브로 뭘 해야겠다 생각은 하지만 잘 모르겠다. <씨네21> 연재가 끝나면 1년 정도는 쉴 생각이다. 그다음에 뭘 할지는 모르겠다. <씨네21> 연재 외에도 하는 일이 있는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웹툰에 집중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웹툰을 한창 보는 친구들의 부모 세대가 아는 작가인 데다 지금 젊은 독자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옛날 선배, 원로 만화가들 생각을 하다가 내가 어느새 그 나이구나 싶더라. 삼십대까지는 할 게 너무 많아서 뭘 먼저 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머리가 굳는 것도 있지만 못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도 있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정훈이 만화를 연재해온 셈이다.

=만화 그리는 건 앞으로 10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는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지…. <씨네21>과 거의 인생을 같이해왔다. 어떻게 보면 겁도 없이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 <씨네21> 작업할 때만 해도 길어야 2~3년 정도라고 생각했다. 1년만 연재해도 다행이라고. 건방졌던 셈이다. 하지만 그때가 부러울 때가 있다.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노파심도 생기고 자기 검열도 심해졌다.

-<씨네21> 마감을 하지 않게 되면 정훈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나 아니면 연재와 함께 사라지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씨네21>을 보는 분들께는 남기남이 유명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또 낯선 캐릭터다. 가끔 어떻게 보면 사람 같다. 남기남 생각을 하다가 울 때도 있었다. 갑자기 얘를 못 볼 때가 오겠구나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 정이 들어서겠지. 씨네박은 아직도 출연을 못시키고 있다. 성격은 예비군 중대장, 외모는 앙드레 김 선생님을 모델로 했고, 오지 오스본을 가져다 만든 캐릭터인데, 오지 오스본만 남고 다른 두분이 돌아가시니까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가 없었다. 원래 철없는 어른을 상징했던 캐릭터인데 그 인물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 죽고 나니 슬퍼져서. 그래서 요즘에는 거의 안 나왔다.

-오랜 연재라 그런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캐릭터에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캐릭터도 나를 닮아간다. 내가 캐릭터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투나 그런 것이 닮아간다. 예전에 누군가가 남기남이 예전에는 귀엽고 순박했는데 지금은 못되고 짜증을 엄청 낸다고 하더라. 나는 크게 달라졌나 싶었지만 보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보더라. (웃음)

사진제공 정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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