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2021-01-19
글 : 진영인 (번역가)
정호승 지음 / 비채 펴냄

‘일상의 쉬운 언어’로 ‘삶의 구체성’을 담은 서정시를 써서 수십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 60편 및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를 한데 모은 책이다. 시를 읽고 뒤이어 실린 산문을 읽어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와 문화사의 흐름에 몸을 싣는 기분이 든다.

이동원 가수의 구슬픈 노래로도 유명한 시 <이별노래>는 1970년대 태평양화학(현재 아모레퍼시픽)의 사보 ‘향장’에 처음 발표되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 <부치지 않은 편지>는 고 김광석 가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르고 녹음한 노래의 노랫말이기도 했다.

산문집에는 정호승 초기 시의 정수로 꼽히는 <서울의 예수>도 실려 있다.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산산조각>은 흙으로 만든 소중한 부처님 기념품이 깨지고 말았어도 오히려 “산산조각을 얻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자는 시다. <바닥은 감사의 존재다>라는 산문은 삶의 바닥에 굴러떨어지더라도 바닥이 있어 끝없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으니 바닥에 감사하자고 한다. 정호승의 시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역설적 화법은 책의 후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했던 유년 시절과 고단한 가운데 남몰래 시를 쓴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개인사와 어우러진다.

검정고무신에 대한 추억, 친척들과 경주의 첨성대 창문 안으로 들어가 놀던 기억. 크리스마스가 오면 어머니와 함께 교인 집을 방문하여 성탄송을 부르고 과자를 돌리던 저자는 훗날 군인 시절 보초병들을 방문하여 빵을 선물한다. 이 모든 기억의 조각은 고통과 슬픔, 괴로움을 밀어내는 대신 공감의 힘으로 껴안자는 시적 주제와 어우러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은 저자가 독자의 요청으로 시집에 사인해줄 때 가장 많이 써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정호승의 산문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으로서 내 존재의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2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