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승리호' 탑승에 필요한 6가지 핵심 키워드
2021-02-06
글 : 송경원
우주로 가자, 이 유능한 자들과 함께

1. 한국 최초의 본격 우주 SF

우주는 영화가 가장 사랑하는 무대 중 하나다. 장대한 우주를 바탕으로 하는 모험담은 최초의 SF영화라 해도 무방한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을 시작으로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 중에서는 우주를 무대로 한 작품이 거의 없었는데 비주얼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승리호>는 단지 우주를 소재의 일부로 사용한 것을 넘어 우주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본격 우주 SF다. 2092년 환경오염으로 토양이 산성화되자 지구에서 식물이 자취를 감춘다. 이에 우주개발기업 UTS(Utopia Above The Sky)는 병든 지구를 피해 우주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곳은 낙원이지만 선택된 소수, 인류의 5%만이 거주할 수 있고 대다수 사람들은 황폐화된 지구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위성 궤도에서는 넘쳐나는 데브리스(파편 등으로 생겨난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들이 일하는 중이다.

장 선장(김태리)이 이끄는 한국 국적의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도 그중 하나다. 장 선장, 타이거 박(진선규), 태호(송중기), 업동이(유해진) 등 4명의 승리호 선원은 누구보다 유능하고 돈에 혈안이 되어 일을 따내지만 세금과 수리비 등을 떼고 나면 항상 돈이 궁하다. 그러던 어느 날 승리호는 사고가 난 우주정을 수거하던 중 숨겨져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의 정체는 대량살상무기로 수배 중인 인간형 로봇 도로시(박예린)다. 당혹감도 잠시, 태호와 승리호 일행은 도로시를 두고 테러집단 검은 여우와 거래를 시도한다. 도로시를 둘러싼 여러 집단의 갈등과 음모 속에서 승리호는 종횡무진 우주를 누빈다. 세계관부터 전개 방식까지 수많은 우주 배경의 모험 활극이 떠오르는 <승리호>는 검증된 재미를 좇는다.

2. 데브리스와 우주 청소부

<승리호>는 조성희 감독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시선으로 쓰레기 청소선의 행보 속에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온도를 불어넣는다. “<승리호> 선원들의 목표는 응징이나 남을 밟고 올라서는 승리가 아니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모두와 함께하는 삶이다”라는 감독의 소개말이 이 영화의 방향을 대변한다. 우주 쓰레기 데브리스를 모으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주 개발 시대의 최대 난제가 우주 공간을 떠도는 쓰레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우주 청소부들은 이 쓰레기를 주워 팔아 연명하지만 어쩌면 이들의 보잘것없는 작업이 우주를 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구를 지켜내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쓰레기로 둘러싸인 삶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이야기다.

3. 대우주 시대, 사람 냄새 나는 승무원

<승리호>는 과학과 고증에 기반한 우주영화가 아니라 대항해시대처럼 우주 공간을 항해하고 다니는 스페이스오페라에 가까워 보인다. 한척의 우주선에 몸을 싣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스타트렉> 시리즈나 현상수배범을 잡는 우주 카우보이들의 활약을 그린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1998)과 닮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들의 일상은 모험이 아니라 생계와 생존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승리호’ 자체가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하고, 결국 이런 종류의 영화에선 배의 멤버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승리호’ 4인의 승무원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절묘하다. 승리호의 주인 장 선장은 똑똑하지만 까칠한 성격으로 타협을 모른다.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해 쓰레기를 낚아채가는 장 선장의 모습은 카리스마 그 자체다. 승리호의 엔진을 담당하는 열혈남 타이거 박은 과거 범죄조직의 수장이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흉포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장 선장이 업어왔다고 해서 업동이라 불리는 우주 최고의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는 인간처럼 보이는 생체 피부를 갈망하는 승리호의 잔소리꾼이다. 끊임없는 수다와 말재주로 삭막한 승리호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조종사 태호는 최고의 조종 실력과 아픈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알고 보면 능력자들인 이들 멤버가 보이는 놀라운 활약은 물론 깨알 같은 호흡이 우주 활극 <승리호>의 진정한 동력이다.

4. 환경과 우주, 소녀와 자본, 순수와 욕망

도로시를 차지하기 위해 두 세력이 각축을 벌인다. 하나는 <승리호> 세계관의 사실상 지배자인 거대 기업 UTS다. UTS와 대립하는 테러집단 검은 여우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는데 UTS에서는 수소폭탄을 이용해 대량학살을 일으키려는 집단이라며 선전한다. 도로시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 UTS와 검은 여우의 대립은 <승리호>의 주제를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시작된 우주 개발 시대인 만큼 이들의 선명한 대립은 보이는 것 이상의 어두운 내막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척박한 상황에서도 순수함의 가치를 발견하는 조성희 감독의 예민한 촉수가 어떤 식으로 이 현란한 우주 모험담을 관통해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5. VFX의 신기원, 경쾌하고 가볍게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듯 보인다. 청소선이라고 하면 둔탁한 움직임을 생각하기 쉽지만 ‘승리호’는 레이싱 경기를 펼치듯 누구보다 빠르게 먹이를 낚아챈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우주를 휘젓고 다니는 승리호의 날렵한 움직임은 기대를 자아낸다. 우주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것인지, 무엇이든 가능한 상상력의 장소로 표현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승리호>는 후자를 택한 듯 하다. 허용된 범위 안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시각적 쾌감과 속도감을 밀어붙이는 예고편 영상은 기존 한국영화, 아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여느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우주 쓰레기 청소선은 물론 우주 쓰레기 하치위성, 스페이스 콜로니, 위성 궤도 등 우주 공간의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500여컷 중 2천여컷 이상이 시각특수효과(VFX) 작업을 거친 <승리호>는 상상을 있는 그대로 구현한 꿈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유해진 배우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로봇 업동이의 애크러배틱한 움직임이 매력적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R2D2처럼 우주 배경의 SF영화라면 하나쯤 꼭 나오는 상징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6. 이상하고 아름다운, 조성희 월드

독특하다. 창작자에게 이만한 칭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독창성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독특함이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느냐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조성희 감독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달의 거리감마냥 실로 절묘한 밸런스를 자랑한다. 그는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알 수 없는 세계로 치달아가지도 않는다.

조성희 감독의 진가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소수의 누군가가 맹렬하게 좋아할 영화와 모두가 시큰둥할 무난한 영화 사이 어딘가, 감독 조성희의 야심이 떠돌아다닌다. 생각해보면 이건 매우 이상한 표현이다.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려울지라도 완전히 거부할 수도 없는 영화. 아마도 조성희 영화에 대해 아쉬움이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 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땐 비난보다 애정에 기반을 두고 있을것이라 믿는다. <늑대소년>(2012)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등 그의 영화에 대한 반응조차 그의 세계를 닮았다.

2000년대 인상적인 단편영화를 꼽는다면 반드시 거론될 <남매의 집>(2009)을 시작으로 그는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이어진 <짐승의 끝>(2010)은 조성희 감독의 기반이 무엇인지 증명한 영화들이다. 그는 이상한 세계에 인물들을 던져놓고 그들의 반응과 불협화음을 가만히 지켜본다. 다시 말해 조성희 월드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상상력의 소유자가 장편 대중영화를 연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갈렸다. <늑대소년>에서는 초현실적인 동화와 멜로드라마를 섞었고,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에서는 할리우드 누아르의 흔적을 빌려와 재창조했다. 어떤 장르를 가져와도 본인의 중력 아래 두는 조성희 월드의 비결은 인물에 있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소년, 소녀가 등장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가 비틀린 세계 한가운데 놓일 때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조성희 월드의 첫걸음은 거기서부터 발을 뗀다. 이상한 나라에 초대되는 앨리스처럼 인물들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 지금이 아닌 언젠가로 걸음을 옮기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생경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세계는 언뜻 익숙한 것들의 조합이지만 인물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어쩌면 조성희 감독이 SF영화를 택한 건 당연한 행보일 것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그가 상상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조성희의 모든 영화가 SF라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세계에서 끝내 희망과 낙관을 발견한다. 아니, 그의 세계는 처음부터 거기서 출발한다. <승리호>의 낙관적이고 해맑은, 한없이 착한 디스토피아는 그렇게 비로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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