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를 UFO로 이끌었을까. 맹성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교 공학박사 출신 공학자로 1995년에 <UFO 신드롬>이란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고도 UFO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UFO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증언에서 패턴을 기록하고, UFO처럼 찍힌 사진과 영상을 판독한다. 그리고 다른 UFO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눈다. 가족과의 관계나 사적인 모습은 완전히 제거한 채 UFO와 맹성렬 교수만을 좇는 다큐멘터리 <UFO 스케치>는 여느 휴먼 다큐멘터리와 달리 미지의 존재를 대하는 인류의 본질로까지 질문을 넓혀나간다.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 시네마 부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비경쟁부문 오픈시네마, 춘천영화제 경쟁부문 한국독립SF에 초청된 <UFO 스케치>가 새봄을 맞아 비행을 준비 중이다. 촬영감독 출신으로, 첫 장편으로 여러 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김진욱 감독의 <UFO 스케치> 제작 비화를 담아 리뷰를 전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또 다른 UFO 전문가 지영해 옥스퍼드대학교 동양학과 교수가 등장해 맹성렬 교수와 UFO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을 벌인다. <씨네21>은 토론의 연장선상에서 두 사람에게 UFO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 학자의 서로 다른 흥미로운 답변도 함께 전한다.
새로운 세기를 앞둔 20세기 말, UFO와 초능력, 예언 등이 판을 칠 때 아직 학생이던 맹성렬 교수는 <UFO 신드롬>이란 베스트셀러 책을 냈다. 과학의 시선에서 UFO를 바라봤다고 해서 신선한 평가를 받았다. <UFO 신드롬>으로 인해 맹 교수는 아직도 UFO처럼 보이는 물체가 담긴 사진과 영상을 판독해달라는 언론사의 요청을 받고, 연구실로 걸려오는 UFO 목격담 전화를 받는다.
SF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이 맹 교수에게 자문을 부탁하는 일도 생겨났다. 김진욱 감독도 마지막 사례였다. “서울 신촌의 모 카페에서 맹 교수님을 만났다. 나 말고도 다른 영화를 준비하는 이가 맹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 차례가 나였다.” 미스터리 극영화를 준비하던 김진욱 감독은 UFO 연구자 캐릭터를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맹성렬 교수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날의 만남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고.
두 사람은 카페를 나와 홍대 앞을 걸었다. 맹성렬 교수는 자기가 아는 맥줏집으로 김진욱 감독을 데려가려 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겠다”며 앞장선 맹 교수는 어쩐 일인지 맥줏집을 찾지 못했고,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15분 거리를 1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렇게 홍대 앞을 헤매는 동안 김진욱 감독의 마음속에는 예기치 못한 감정이 피어났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맹 교수와 함께 헤매면서 동질감 비슷한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앞으로 뭔가 이런 여정을 계속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마침내 들어간 맥줏집에서 김진욱 감독은 맹 교수에게 그를 다큐로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UFO 학자와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후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UFO를 봤다는 이들을 만나고, UFO가 목격되는 곳을 찾아간다. 다큐멘터리 <UFO 스케치>는 그렇게 시작됐다.
‘UFO 전문가’의 세 가지 딜레마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은 UFO 학자 맹성렬 교수가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첫 번째 난감함은, 30년 가까이 UFO에 대해 연구하면서 책을 쓰고 UFO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 증거를 모으지만 맹 교수 자신의 눈으로 UFO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난감함은, 맹 교수가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공학박사라고 이야기할 때 동석한 지인이 “맹 교수는 UFO 전문가”라고 설명할 때다.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봐 맹 교수는 솔직히 걱정한다.
마지막 난감함은, 함께 UFO에 대해 토론하고 자료 수집을 이어가는 ‘UFO 동료들’이 있지만 맹 교수가 그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는 데 있다. 공학자인 맹 교수는 증거를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UFO가 실재하고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때문에 UFO 동료들로부터 진심으로 UFO를 믿지 않는다고 추궁당하기 일쑤다. 진심과 진정성이 없다면 그가 오랜 세월 동안 UFO를 연구할 수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UFO의 실존 가능성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와 초자연적 현상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UFO를 목격했다는 이들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고 과학적 가능성을 따지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맹성렬 교수. 그는 <UFO 스케치>의 주인공이자 왠지 모르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무더운 7월 경기도 파주에서 UFO 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중년 여성 조성희씨를 찾아간 신. 백팩을 메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맹 교수는 조성희씨가 찍은 영상을 찬찬히 살피는데, 하늘 위 헬리콥터를 찍던 중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를 포착한 영상이다.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맹 교수는 그것이 UFO가 아닌 벌레라는 판단을 내놓는다. 당황하는 조씨에게 맹 교수는 차분하고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가는데, 맹 교수의 태도에 담긴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관객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UFO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후에도 그와 같은 순간을 포착하려고 계속해서 증거를 모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조씨 역시 헬리콥터 영상 이후 기록한 다양한 영상들을 맹 교수에게 꺼내놓는다. 맹 교수는 먼저 본 영상이 별것 아니라고 해서 다음 검증을 허투루 하지 않으며, 조씨가 촬영한 모든 영상들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UFO일 가능성이 높은 영상을 가려낸다. 맹 교수의 과학자로서의 열린 자세가 돋보이는 신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빛나는 통찰
그렇다고 <UFO 스케치>가 단순히 선한 인물에 대한 휴먼 다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UFO를 비롯해 미지의 존재에 대한 통찰도 가득 담겼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맹성렬 교수와 지영해 옥스퍼드대학교 동양학과 교수의 대담은 인류의 두 갈래 지성, 과학과 인문의 통찰이 빛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맹성렬 교수와 지영해 교수는 각각 공학도와 인문학자로서 서로 다른 뿌리를 두고 있지만 UFO와 외계인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데, 같은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토론을 벌인다. 지영해 교수가 UFO에 의해 피랍되었다가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피랍의 패턴이 있고 몸에 남은 흔적이 동일하다고 주장하자, 맹성렬 교수는 체험자의 말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되며 몸에 남는 흔적은 자연적으로도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맞선다.
UFO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연구하는 맹성렬 교수가 UFO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논쟁은 끓어오르는데, 맞서는 지영해 교수 또한 만만치 않다. UFO가 관찰되고 외계인을 봤다는 사람이 등장하는 등 인간의 지각 범위 안으로 기묘한 현상들이 포착되었다가 사라지는데, 이는 마치 우리의 인지 영역을 벗어난 무언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논박한다. “예를 들어 바닷속 물고기한테 ‘너희들이 같은 지구에 살면서 못 보고 있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면 물고기들이 엄청 놀랄 겁니다. 우리가 왜 그들(외계인)을 못 보는가. 물고기의 세계에서 우리를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지영해) 생각해볼 지점이다.
김진욱 감독은 지영해 교수의 분야인 ‘외계인 피랍 연구’를 소개하기 위해 맹성렬 교수가 질문을 던지고 지영해 교수가 답하는 방식으로 대담을 꾸렸지만, 이는 두 사람간의 치열한 논쟁으로 번졌다. 촬영 당시 5시간 넘게 UFO를 두고 첨예하게 토론한 두 학자는 사실 친밀하게 교류해온 사이다. 지영해 교수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한국학 강의를 하며 데이비드 제이콥스 템플대학교 역사학 교수와 함께 외계인 피랍 연구를 하는 학자로, 과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UFO의 이상한 움직임을 봤다고 주장하는 전투기 조종사나 공항 관제사의 증언을 주목하는 맹성렬 교수와 달리, 외계인에 의해 피랍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패턴을 정리하는 데 집중한다.
영화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UFO 목격자의 사례를 검증하기 위해, 맹 교수가 지 교수에게 부탁하는 등 두 사람은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한다. 64년생 맹성렬 교수와 그보다 2~3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지영해 교수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간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공학박사 과정을 밟던 맹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으로, 신학박사 과정 지영해 교수는 옥스퍼드대학교 소속으로 운동장에서 같이 뛰었지만 당시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훗날 각자 교수가 된 뒤 UFO에 대한 관심으로 서로를 알게 됐고, 그날 그 시간에 축구 시합에서 조우했다는 걸 알게 됐다. UFO만큼이나 기묘한 인연이다.
<UFO 스케치>는 2016년부터 3년간 촬영했고, 후반작업을 거쳐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촬영 기간 동안 맹성렬 교수는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UFO를 목격했고 연구자에서 체험자로서 전환을 맞는 모습이 다큐에 고스란히 담겼다.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미륵사 일대에서 UFO를 직접 목격한 맹 교수는 다음날 낮에 미륵사를 찾아가 산책을 한다. 과학자는 한 가지 질문을 품은 채 백제인들이 남기고 떠난 거대 유물 사이를 걷고 있다. 거대한 유물과 한없이 작은 인간. 카메라가 둘을 한숏에 담듯, 어쩌면 인간은 작은 것과 큰 것을 동시에 품는 존재, 혹은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늘 안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