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얼굴이자 정신으로 기억되는 배우 하라 세쓰코.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그녀의 대표 캐릭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남다른 삶을 살았던 은막 뒤편의 이야기까지 한데 모았다.
<만춘>의 마술
배우 하라 세쓰코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세계에 합류한 첫 작품인 <만춘>(1949)에는 사별 후 혼자가 된 아버지(류 지슈)와 다정히 살아가는 27살의 딸 노리코(하라 세쓰코)가 나온다. 나이 든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해변가에서 아버지의 젊은 조수 하토리와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내달리는 노리코의 얼굴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서 손에 꼽히는 절정 중 하나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은 거의 마술에 가깝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실내 장면의 절제된 미학과 함께 자주 언급되지만, <만춘>의 자전거 신은 웃음기 가득한 하라 세쓰코의 얼굴에 힘입어 역동적인 기운으로 살아 움직인다. 완연한 늦봄의 빛과 공기 속을 가로지르는 하라의 모습을 누구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후 오즈와 하라는 <만춘>을 시작으로 1961년작 <고하야가와가의 가을>까지 총 6편을 함께하게 된다.
노리코 3부작
하라 세쓰코는 오즈 야스지로와 작업한 초창기에 ‘노리코’라는 이름의 각기 다른 인물을 연달아 연기했다. <만춘>과 <초여름>(1951)의 노리코는 결혼 앞에서 고민하는 젊은 여성으로, 원가족의 기대와 새로운 모험 앞에서 시험에 처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원한 대표작인 <동경 이야기>(1953)의 노리코는 전쟁 중 남편을 잃은 과부다. 며느리를 보러 도쿄에 찾아온 시부모는 노리코에게 부디 재혼하라고 타이르지만, 노리코는 두 어른을 그저 극진히 모신다.
3부작을 거치며 배우와 함께 노리코도 성장한다. 홀아버지와 안온한 삶을 살 것인지 혹은 미지의 세계로 떠날 것인지 고민하던 <만춘>의 살가운 딸은, <초여름>에서 가족의 바람과 상관없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려는 단호한 인물로 탈바꿈하고, <동경 이야기>에서는 삶의 악조건 속에서도 절제와 위엄을 잃지 않는 품성을 갖추면서 인간의 고결한 조건을 말하기에 이른다.
계절 시리즈
오즈 야스지로의 늦봄(<만춘>), 맥추(<초여름>), 늦가을(<가을 햇살>) 속에서 하라 세쓰코는 오즈의 영화를 걷다가 골목 모퉁이를 돌면 언제나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젊은 딸, 아내, 과부, 약혼자 등을 거쳐 1960년작 <가을 햇살>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딸을 염려하는 어머니가 된다. 하라 자신이 <만춘>의 아버지가 놓였던 자리로 이동한 것이다. 다다미방에 앉아 묵묵히 자기 앞의 기쁨과 비애를 감당하는 여자와 세월을 함께하면서, 많은 관객이 익어가는 계절의 순리처럼 살아가는 일의 왕도를 배웠다.
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로 기억되나
오즈 야스지로를 만나기 전부터 하라 세쓰코는 유명 배우였다. 전쟁 직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하라를 발빠르게 캐스팅해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를 만들었고 하라는 당대 최고의 스크린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이 영화에서 전쟁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하라의 모습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오즈는 하라에게서 정반대의 면모를 끌어냈다. “여배우에게 가장 힘든 것은 평범한 가정의 여자 역을 맡는 것이며, 이런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하라 세쓰코 뿐”이라는 말에서 오즈가 구현하려던 여성성과 하라를 향한 기대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오즈의 영화에서 하라는 언제나 갈등하고 이별하는 주체였다. 패전 후 미군 점령 정치를 경험한 일본 사회는 문화·경제 면에서 급변하기 시작했지만, 수면 아래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의 풍경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비밀스럽게 내적 혼란을 느껴야만 했던 일본인의 이상적 초상이 바로 오즈 야스지로 영화 속 하라 세쓰코라 하겠다. 특유의 온건한 미소, 그 안에 자리한 심오한 비련의 뉘앙스에 관객은 즉각 감응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욱 드러나는 효과, 아이같이 즐겁고 순수한 얼굴에 깃드는 사색적인 슬픔까지. 하라 세쓰코가 불어넣은 깊이와 서정성은 서구 비평가들에게는 가장 일본다운 것으로 해석되었고, 시네필들에게는 영화 이미지의 축복으로 다가갔다.
우리 시대의 하라 세쓰코
“나는 <만춘> 속 딸의 캐릭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라 세쓰코의 진실>을 쓴 일본의 논픽션 작가 다케오 이시이에 의하면, 하라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서의 이미지를 마냥 달가워하지 않았던 듯싶다. 나치 정부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로부터 국빈 대접을 받으며 10대 시절부터 해외영화계 인사들을 만났던 하라에게 진정한 동경의 대상은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였다. 당대 일본영화계의 후진적인 성평등 의식에 관해 문제제기를 했다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큰 비난에 휩싸인 전력도 있다.
특히 서구권 평론가들에 의해 지나치게 이상화된 감이 있는 일본영화 속 “영원의 처녀” 타이틀은, 우리 시대에 이르러 재고 될 필요가 있다. 당대의 보편과 이상을 체현한 배우로서 하라 세쓰코의 위상이 너무도 거대한 나머지, 그녀는 후대가 마땅히 뛰어넘고 파괴해야 할 여성 캐릭터의 전범으로도 남았다. 하라 세쓰코가 연기한 인물들은 이제 분명하게 과거의 초상이 되었으나, 배우가 남긴 아우라만큼은 여전히 불멸의 반열에서 빛난다. 슬픔 속에서도 결코 신파를 허용하지 않는 굳건한 균형 감각을 통해 하라는 언제나 인물 너머로 묵직한 심연을 드리웠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가 이처럼 오랜 시간 강렬한 인상으로 지속되는 것은, 고도로 능숙한 배우가 더한 절제와 여백 덕분이다. 그리하여 당대의 관객과 오늘날의 관객이 하라 세쓰코의 인물들에게서 조금 다른 의미를 읽어낼지라도 그 감흥만큼은 서로 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