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즈 야스지로 초심자를 위한 가이드
2021-03-19
글 : 배동미
반복과 차이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는 사는 동안 53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다. 그중 18편은 소실되어 후대의 우리가 볼 수 없고, 10분 분량만 남아 전해지는 영화가 두편이다. 온전하게 남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33편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오즈의 영화 세계에 첫발을 딛는 길이 33가지나 된다는 뜻이다. 오즈 야스지로를 아직 만나지 못한 초심자들에게 그가 어떤 감독이었는지 알 수 있는 조각들을 소개한다. 정적인 다다미숏으로 유명한 그가 친근하게 다가오길 바라며.

독신자 감독의 결혼 이야기

결혼을 주요 사건으로 삼은 영화를 다수 만들었던 오즈 자신은 평생 독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작 결혼식 장면을 제대로 재현하지 않는 감독이기도 했다. 그가 서사의 동력으로 삼은 건 결혼식 그 자체이기보다 결혼을 둘러싼 마음들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을 다뤘는데, 결혼할 마음이 없는 여성들은 아버지에 의해(<만춘> <꽁치의 맛>), 어머니에게 의해(<가을 햇살>), 오빠에 의해(<초여름>), 시아버지에 의해(<동경 이야기>) 결혼을 요구받는다. 결혼 의사가 있어도 사전에 아버지의 허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달맞이꽃>).

다다미숏

오즈의 영화는 다다미숏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오즈의 공간인 다다미방에는 일본식 돗자리가 깔려 있고 인물들은 그 위에 방석을 깔고 무릎 꿇은 채 앉는다. 심도가 깊어 후경에는 목조식 미닫이문들이 보인다. 오즈의 인물들은 전통적인 다다미방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와 자식을 걱정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숨을 거두기도 한다. 이때 카메라는 로앵글로 인물을 담는데, 줌인이나 줌아웃하는 법이 없고 패닝도 없다.

화창한 날씨

제목에 계절이 명시되는 작품이 많지만, 사실 오즈 영화에는 비나 눈이 내리는 장면이 없다. 화창한 하늘에 구름만 몇점 떠다니고, 하라 세쓰코는 계절을 특정할 수 없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나며, <동경 이야기>의 노부부는 우산을 들고 다니지만 펼치는 법이 없다. 오즈를 “백주의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부초>와 <부초 이야기>에는 비 내리는 신이 등장하니 놀라지 말 것.

<동경 이야기>

차이와 반복

오즈는 자신의 전작을 유사하게 반복하면서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인 <만춘>은 후에 <가을 햇살>에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유사하게 반복되는데, <만춘>에서 딸로 등장했던 하라 세쓰코가 <가을 햇살>에서는 딸의 시집을 권유하는 홀어머니 아키코로 분한다. 오즈의 두 번째 컬러영화이자 코미디 걸작인 <안녕하세요>는 오즈 자신의 흑백 무성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을 변주한 작품이다.

어쩌면 대부분 흑백영화

오즈의 필모그래피는 거의 흑백영화로 채워졌다. 오즈는 1927년부터 10년 동안 무성 흑백영화를 만들었고, 1936년 <외아들>을 시작으로 22년간 토키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색채가 없는 흑백의 세계다. 컬러영화는 5년간 만들었을 뿐이다. 그의 첫 번째 컬러영화는 <달맞이꽃>이다.

~는 했지만 시리즈

오즈는 <대학은 나왔지만> <낙제는 했지만>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라는 무성영화 세편을 남겼다. ‘했지만’이란 단서가 붙은 만큼 오즈의 인물들이 웃지 못할 상황을 겪는데, 취업난을 겪으면서 가족에게 취업했다고 거짓말하자 어머니가 찾아온다거나(<대학은 나왔지만>), 졸업 시험의 답안을 몰래 셔츠에 써뒀는데 하숙집 아주머니가 셔츠를 빨아버린다(<낙제는 했지만>). 도쿄 교외로 이사 온 어린 형제가 텃세를 경험하고 아버지가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는 등(<태어나기는 했지만>) 오즈는 세편의 작품에서 서민들의 상황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대학은 나왔지만>은 필름이 유실돼 현재 10분 분량만 남은 상태다.

무성영화 시절 버스터 키튼식 코미디

정적인 카메라로 대표되는 오즈는 무성영화 시절에 누구보다 카메라의 활동성에 주목했다. 남겨진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영화 <젊은 날>에서 오즈는 카메라를 이동시킬 뿐 아니라, 미끄러지는 스키를 쫓아가며 눈비탈에서 미끄러지는 버스터 키튼식 유머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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