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아무도 없는 곳' 김종관 감독 - 그 공간에서 만나요
2021-04-01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아무도 없는 곳>엔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카페에서 만난 미영(이지은), 편집자 유진(윤혜리), 사진가 성하(김상호), 바텐더 주은(이주영)과 나눈 이야기가 차분히 담겨 있다. “이전 작업에서 다음 작업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김종관 감독의 말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감독의 전작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두 사람의 대화란 점에서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이, 죽음과 상실 등의 주제를 다룬 면에서 <밤을 걷다> <달이 지는 밤>이 떠오른다. 하지만 창석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들을 연결하고, 쌓인 이야기들이 창석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주목하는 <아무도 없는 곳>은, 김종관 감독의 전작과 분명한 차이를 지닌 작품이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소개됐던 <아무도 없는 곳>이, 극중 배경과 같은 이른 봄을 맞아 관객과 마주할 채비를 마쳤다. ‘대화’란 틀 속에서 꾸준히 시도하고 모험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넓혀가는 김종관 감독과 함께 <아무도 없는 곳>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도 없는 곳>은 창석이 5명의 인물을 차례로 만나는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페르소나> 중 단편 <밤을 걷다> 등 그동안 두 사람의 대화로 구성된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 연장선상으로 <아무도 없는 곳>도 두 사람의 대화라는 구성 안에서 형식적으로 여러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극중 창석은 소설가임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연우진 배우에게 창석이란 인물을 맡긴 이유와도 연결돼 있다. 대화 신을 구상할 때 ‘누가 누구를 관찰하고, 공격하는가’로 시작해 접근하길 좋아한다. <더 테이블>을 촬영할 때도 연인으로 등장한 임수정 배우의 공격을 연우진 배우가 물처럼 받아내는 게 재밌었다. <아무도 없는 곳>의 창석도 사람들이 털어놓는 사연들을 유연하게 받아내는 면이 필요한데, 연우진 배우가 그걸 잘해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창작자인 창석이 여러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고, 그 과정이 창석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다양하게 레이어를 쌓아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연우진 배우 외에도 이지은, 이주영, 윤혜리 등 전작에 등장한 배우들과 다시 한번 합을 맞췄다.

=<아무도 없는 곳>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밤을 걷다>와 닿아 있어서 이지은 배우에게 대본을 먼저 보여줬다. 작업실에서 따로 리딩을 할 때 이미 영화 한편을 다 본 느낌이 들더라. 이지은이라는 아티스트가 갖고 있는 유연함을 좋아한다. 미영과 창석의 대화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이지은 배우가 그 시작을 잘 열어줬다. 미영과 성하 역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어울리는 배우의 느낌을 정해둔 상태였는데 유진과 주은 역은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놨었다. 윤혜리 배우는 특유의 개성과 호흡이 유진 역에 잘 어울리겠다 싶었고, 이주영 배우는 진솔하고 천진한 주은의 매력을 잘 살려줄 것 같았다. 주은이 창석의 공간을 묘하게 침범하는데도 그 모습이 전혀 거북스럽지 않다. 10회차의 짧은 일정이라 촬영이 밀도 높게 진행됐지만 다들 집중력 있게 잘 임해줬다.

-어둠을 굉장히 다양하게 활용했다. 창석을 비롯한 인물들은 어둠에 완전히 잠기기도, 반대로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은 어둠이 중요한 영화다. 어둠, 즉 그림자의 영역을 잘 본다는 것은 반대로 빛을 잘 본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잘 바라보는 것도 삶을 잘 들여다본다는 말과 같다. 어둠과 빛, 죽음과 삶처럼 상반된 요소가 영화에 잘 드러날 수 있길 바랐다. 기술적으로도 어둠이 관객에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과 함께 공을 들였다. 극장 관람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영화라 관객이 영화관에서 볼 때 어둠도, 어둠 속의 감정도 더 잘 와닿을 거다.

-죽음과 상실, 나이듦이란 주제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나이듦의 처연함에 집중한 에피소드가 있다. 하지만 창석처럼 큰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나이듦은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다. 기억도,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이런 주제들을 양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했다.

-꿈과 현실, 허구와 진실의 경계가 계속 모호한 이유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최악의 하루>에서도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판타지가 조금씩 섞여 있지 않나. 그때부터 꾸준히 가져온 생각인데, 경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다. 이 경계를 잘 타다보면 레이어가 더 풍성해지고 관객에게서도 여러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도 그런 경계가 잘 드러났다.

=미영과 창석이 대화를 나누는 카페 ‘시티커피’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실제로 30, 40년 정도 된 공간이고 주 고객층도 영화에서처럼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카페의 안과 밖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게 인상적이어서 따로 변화를 주지 않고 거의 그대로 공간을 활용했다. 창석이 사용하는 공중전화 부스도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찾아오는 이 없이 쓰레기만 즐비한, 정말 ‘아무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면서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곳>이란 제목의 의미는.

=처음 마케팅팀, 홍보팀에서 걱정이 많았다. <아무도 없는 곳>이란 제목 때문에 관객이 들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웃음) 반어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이다. 또 공간이 워낙 중요한 영화고. 사람들이 제목을 보고 여러 의문점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한다.

-현재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나.

=<더 테이블 속편>이란 제목의 시나리오를 완성해둔 상태다. 대화 형식을 유지하되 휴머니티한 감정을 좀더 부각할 예정이다. 그리고 장르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범죄물도 하나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 문혜인, 김승비 배우와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단편을 찍었다. 4월에 있을 전시장에서 상영될 예정이고, 해당 전시 공간에서 촬영했다. <아무도 없는 곳>의 세계관과 이어지는 작품인데 배우들이 재밌게 소화했다. 나중에 전시 보러 오시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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