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21 미국 시상식 화제작] '노매드랜드' 연민하지 않고, 낭만화하지도 않고
2021-04-09
글 : 임수연

2008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급격히 쇠퇴한 어느 도시로부터 스토리가 시작되지만, <노매드랜드>는 현대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사회파 영화가 아니다. 미국 네바다 엠파이어의 석고 공장이 문을 닫고 유령 도시가 된 이곳은 우편번호마저 없는 곳이 되지만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그에게 닥친 상실감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는다. ‘뱅가드’라는 이름을 붙인 밴을 타고 ‘노매드’ 생활을 선택한 펀은 미국 각지를 떠도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하고, 다시 혼자 길을 떠난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는 주요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며 이번 오스카에서도 가장 유력한 작품상, 감독상 후보로 떠올랐다. 4월15일 한국 개봉을 앞둔 <노매드랜드>가 어떤 작품인지 미리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보았다.

노매드랜드 Nomadland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프랜시스 맥도먼드, 데이비드 스트라탄

상영 플랫폼 극장 개봉

주요 수상·후보지명 기록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등 6개 부문 후보

-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 제78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

- 제26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수상

집이 없으면 불행할까?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제작자 피터 스피어스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의 판권을 구입했지만 감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챕터별로 다른 주제를 담은 보도 저널리즘은 어떤 클라이맥스가 없었기 때문에 극화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클로이 자오의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마침내 적임자를 찾았다. “제작자로서 전형적인 남성/서양 장르 소재를 두려움에 대한 승리이자 생존 의지, 새로운 꿈이라는 좀더 보편적인 스토리로 담아낸 여성감독에게 끌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결과 영화는 건조한 사회비판보다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만드는 기묘한 아름다움까지 시청각적으로 담아냈다. 트럼프 시대의 정치적 맥락을 보여주는 장치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포착하는 데 보다 집중한 것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나는 이 세계로 들어가서 진정한 유목민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펀은 집이 없어서 밴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밴이 그의 집이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 이유로만 그가 노매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곳에 정착하는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광활한 미국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전에 없던 해방감을 준다.

<노매드랜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일을 해도 노년에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정확히 언급하면서도 노매드들을 연민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이 생활을 지나치게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또한 젊음이 가치 있고 노화는 막아야 할 것처럼 치부되는 요즘의 분위기와 달리 노인의 연륜과 지혜를 조용히 경청하는 시간을 고요히 갖는다. 더불어 이들이 구축하는 공동체가 중요하게 묘사된다. 실제 노매드이자 영화에도 등장하는 린다 메이는 “내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직업이나 생활 방식, 지역적 위치 등을 보자면 결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길에서 만나면 곧바로 깊은 동지애와 서로에 대한 돌봄이 싹텄다. 노매드라는 생활 방식에서 나오는 유대감이 보통은 몇년씩 걸릴 우정을 빨리 싹트게 했다”고 말한다.

주연배우가 냄비 받침 75개 만든 사연 <노매드랜드>의 제작자이자 가상의 인물 펀을 직접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브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탄을 제외하면 영화에는 실제 노매드들이 등장한다. 책에 등장하는 린다 메이와 스웽키는 일찌감치 캐스팅돼 중요한 캐릭터를 맡았다. 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이어야 했을까. 극영화의 형식을 취한 후에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제작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매드랜드>는 제작진이 노매드들의 공동체를 이해해야만 완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20여명의 제작진은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360도 촬영이 가능한 밴을 타고 다니면서 긴밀하게 그들과 소통했고, 사우스다코타의 황무지와 월드러그 신을 시작으로 웨스턴 네브래스카, 북캘리포니아 해안의 멘도시노 카운티, 애리조나 유마, 캘리포니아 샌 버나디노 카운티 등 광활한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필름메이킹과 실제 삶이 자연스럽게 일체화되면서 펀의 공간에는 프랜시스 맥도먼드 개인의 서사가 녹아들게 됐다. 그는 아버지가 선물해준 접시 세트나 커틀러리 세트를 가져와 펀과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나갔고, 공예품이 밴 내부를 채우고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도 냈다. “길 위에서 생활할 때 시간 보내기 좋고 실생활에 필요하거나 길에서 물물교환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냄비받침을 만드는 뜨개실과 미니 뜨개틀, 뜨개바늘을 챙긴 맥도먼드는 촬영하면서 냄비 받침을 75개 정도 만들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미국을 보는 새로운 렌즈, 클로이 자오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내고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감독으로서 클로이 자오는 그 자체로 독창적인 렌즈가 된다. 미국 원주민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 실제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로데오 카우보이>는 도시와 자연, 인간과 공간 사이에서 그가 느낀 진실한 감정을 채집해나간 결과다. 그리고 <노매드랜드>에서 아마존 물류센터와 노동자는 인간 소외의 이미지를, 넓은 사막을 보금자리 삼은 공동체의 풍경은 자연의 신묘함을 담아내며 미국의 양면을 드리운다.

클로이 자오의 필모그래피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자연주의적 성향은 그의 이름을 테렌스 맬릭의 계보에 놓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테렌스 맬릭에게서 영화를 배웠다고 밝혔고, 맬릭의 <뉴월드>에 관한 <크라이테리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연을 통해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호기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클로이 자오는 마동석의 합류로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은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연출을 맡았다.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는 트리트먼트만 있는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가고, <노매드랜드>는 촬영 중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더해 거의 매일 대본을 수정했던 그가 마블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기다려진다.

사려 깊은 청취의 힘 “이 나라에는 나이가 들거나 사회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필요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코멘트는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존재감이 <노매드랜드>에 절실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영화 속 노매드 공동체는 서로의 결핍과 상실감을 공유하며 더욱 돈독해진다. 펀 개인의 이야기도 있지만 러닝타임 대부분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맥도먼드는 실제 노매드들이 들려주는 사연을 진실 되게 듣는 리스너로서 관객과 이들의 가교 역할을 한다. 제시카 브루더가 노매드로 위장해 실제 경험한 일을 책에 녹여냈던 것처럼, 프랜시스 맥도먼드 역시 아마존 물류센터, 사탕무 농장, 관광 명소의 식당 등에서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삶을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일상의 습관을 체화하고자 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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