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21 미국 시상식 화제작] '사운드 오브 메탈' 소리와 침묵으로 경험하는 영화
2021-04-09
글 : 이주현

사운드 오브 메탈 Sound of Metal

사진제공 EVERETT

감독 다리우스 마더

출연 리즈 아메드, 올리비아 쿡, 폴 라치, 마티외 아말릭

상영 플랫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주요 수상·후보지명 기록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리즈 아메드), 남우조연상(폴 라치), 음향상, 편집상 후보

-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 수상

- 제33회 시카고비평가협회 남우조연상(폴 라치) 수상

-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배우상(리즈 아메드) 수상

사진제공 EVERETT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사운드 오브 메탈>이 국내에선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온라인에서만 스트리밍되고 있다. 사운드 디자인이 훌륭한 영화인 만큼 큰 스크린에서 잘 조율된 사운드로 영화를 만날 수 없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선 특별하고 용감한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각본은 훌륭하나 투자는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오랜 시간 <사운드 오브 메탈>에 매달리며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완성한 다리우스 마더 감독에게도 더불어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극단의 소리로 채워진 영화다. 고막을 강력하게 강타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연주와 음소거 상태의 공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세계의 만남. 2인조 헤비메탈 밴드 블랙가몬의 드러머 루벤(리즈 아메드)과 보컬 루(올리비아 쿡)는 연인 사이다. 두 사람은 캠핑카를 보금자리 삼아 함께 길을 달리고 공연하며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벤의 청각에 문제가 생긴다. 의사는 루벤의 청력이 20% 정도만 살아 있으며, 잃어버린 청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의 청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큰 소음에 노출되지 말아야 하며, 비용이 많이 들긴 하나 달팽이관 삽입 수술을 통해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도 남긴다. 현재의 청력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선 밴드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 게다가 루벤에겐 수술을 받을 여윳돈도 없다. 결국 루벤은 루와 상의한 끝에 청각장애인들의 공동체에서 당분간 지내보기로 한다. 그곳에서 루벤은 외부와 단절된 채 낯선 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루벤이 청각장애인들의 공동체에 머물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 깊고 넓은 주제를 향한다.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설정만 보면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이 결국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명곡을 탄생시킨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나를 구원한 건 음악이고 예술이었다는 이야기. 혹은 절망적인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주인공이 감동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이야기 말이다. 헤비메탈 밴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운드 오브 메탈>은 음악영화가 아니다. 그러니 좌절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도 여기엔 없다. 루벤은 음악이 아니라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루벤은 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헤로인 중독자였다. 루벤이 약물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루를 만나서였다. 루의 팔에도 자해의 흔적이 가득한데, 두 사람은 힘든 시기 서로의 구원자가 되어주었다. 사랑하는 루와 함께했던 생활이 이젠 소리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고, 루벤의 마음은 그 사실에 한없이 흔들리고 약해진다.

한편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리더 조(폴 라치)는 루벤에게 청각장애인이 되는 법을 익히라 한다. 그것은 수화를 배우는 일부터 소리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깨치는 일들을 말한다. 루벤은 차츰 수화를 익히고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적응하지만 정적을 마주하는 데는 실패한다. 조는 루벤이 소리에 집착하지 말고 정적 속에서 길을 찾길 바란다. 그러나 루벤은 청력을 되찾지 않고는 루와 함께하는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다시 소리로 가득한 세상으로 향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실험적으로 영화의 소리를 제거하거나 데시벨을 미묘하게 조절하면서 소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 3인칭 시점으로 루벤의 상황을 지켜보던 관객은 어느 순간 루벤처럼 소리가 아닌 정적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적이 불러오는 불안의 감정을 통과하고 나면 세상의 소리에 다시 예민해지는데, 소리가 아닌 고요에 집중하게 되는 이런 명상적 효과는 종종 반복된다. 침묵 속에서 도리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특별함, 그것이 곧 이 영화의 탁월함이다.

리즈 아메드의 존재가 없었다면 영화의 실험적 사운드와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리즈 아메드는 8개월간 하루에 각각 두 시간씩 드럼과 수화와 연기 연습을 하며 루벤을 준비했다고 한다. 다리우스 마더 감독은 리즈 아메드에게 분석하지 말고 본능을 따르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루벤을 연기하는 리즈 아메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루벤이라는 실존 인물이 카메라에 포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파키스탄계 영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리즈 아메드는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시작으로 <네 얼간이> <나이트 크롤러>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베놈> 등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HBO> 드라마 <더 나이트 오브>의 주인공 나즈 역으로 2017년 에미상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사운드 오브 메탈>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참고로 그는 Riz MC라는 이름의 래퍼로도 활동 중이다.

영화를 연출한 다리우스 마더 감독은 다큐멘터리 <보물을 찾아서>로 감독 데뷔한 뒤 데릭 시언프랜스 감독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각본을 썼고, <사운드 오브 메탈>은 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다. 영화를 연출하기 전 뉴욕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데릭 시언프랜스의 <메탈헤드>

사진제공 EVERETT

<블루 발렌타인>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만든 데릭 시언프랜스 감독은 한때 2인조 메탈 밴드 주시퍼(Jucifer)의 이야기를 <메탈헤드>라는 이름의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다 시언프랜스 감독은 <블루 발렌타인>에 착수하게 됐고, <메탈헤드>의 아이디어는 감독과 친분이 있었던 다리우스 마더 감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함께 메탈 밴드를 꾸려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밴드 주시퍼의 커플 이야기는 <사운드 오브 메탈>의 바탕이 되었고, 실제 밴드 멤버를 영화에 출연시키려 했던 시언프랜스 감독과 달리 다리우스 마더 감독은 리즈 아메드와 올리비아 쿡을 캐스팅하며 온전히 극영화로 재창조했다. 시언프랜스 감독은 <사운드 오브 메탈>의 제작자로 참여했다.

사진제공 EVE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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