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건 입말이건 누구나 자주 쓰는 부사가 있다. 내 경우는 ‘이를테면’과 ‘다만’을 많이 쓰고 입말로는 ‘약간’을 습관처럼 쓴다. 확언과 속단을 걱정하는 성격이 부사로 드러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 부사가 내 말로 옮아왔다 떠나기도 한다. 부사 없이도 문장이 되지만, 이따금 대체할 수 없이 묵직하게 자리를 잡은 부사를 만나면 거기 사로잡혀 한참을 머문다. tvN <나빌레라>를 볼 때도 그랬다. 발레를 배우겠다고 스튜디오를 찾은 일흔살 노인 심덕출(박인환)은 취미나 운동이 필요하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아니에요. 온전히 발레를 해보고 싶어요.” 흔히 쓰는 부사 ‘온전히’는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와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게’라는 뜻이다.
무용수가 되기엔 한참 늦은 나이임을 알아도 덕출의 목소리와 눈빛은 확신으로 또렷하고, 내 시야는 눈물로 부옇게 흐려졌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발레를 원한다고 누군가에게 처음 말하는 순간일 테니까. 원작 웹툰의 덕출은 머리는 희어도 다부진 근육이 드러나는데 박인환 배우의 몸을 통과한 덕출은 팔다리가 짧고 배가 불룩한, 우리가 익히 아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스물셋 젊은 무용수 이채록(송강)과 거울 앞에 선 덕출은 춤으로 단련한 젊은 육체와 나란히 선 자신의 초라한 몸을 비교한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남은 생을 헤아리는 즈음, 후회와 조바심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덕출은 젊은 선생의 아름다운 자세와 동작을 품고 몸으로 익혀 결국 빛나는 사람이다. 고상한 손동작으로 공기를 가르고 아득한 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박인환은 일흔 넘은 노인의 발레를 설득해내고야 만다.
극 초반 채록은 한계가 뻔한 노인을 가르치는 게 시간 낭비라 여겼으나, 무대에서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이 다르지 않은 덕출의 지지와 인정을 통해 자기 확신이 부족했던 마음이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받은 대로 돌려준다. 채록이 외부 발레단원 앞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심덕출 무용수”로 소개하는 그때, 덕출의 부사를 빌려오고 싶어졌다. 무용수라는 호칭을 수락하는 덕출의 벅찬 감격이 ‘온전히’ 전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