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이 카메라 앞에서 본인의 가장 감추고 싶은 감정까지 진솔하게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 감사했다. 뭘 믿고 내게 이런 말씀까지 하시는 걸까 싶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이야기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학교 가는 길>을 만든 김정인 감독은 감독이자 아버지로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는 자막이 뜨는데, 마로는 감독의 딸 이름이다.
-어떻게 기획하고 시작한 영화인가.
=2017년 9월 2차 토론회가 끝나고 부모님들을 처음 만났다. 평소 장애 이슈에 관심이 많거나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은 아닌데, 딸이 커가면서 교육 문제에 눈길이 가더라. 어느 날 서진학교 신설 1차 토론회가 무산됐다는 짧은 기사를 봤다. 손바닥만 한 기사였는데 여운이 오래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보니 ‘아이를 학교 보내는 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들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9월에 2차 토론회가 예정돼 있다고 해서 작은 카메라를 들고 토론회에 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아빠가 딸에게, 그 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같은 다큐멘터리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아 만들었다.
-서진학교의 이야기를 도시 개발의 역사 속에서 짚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공진초등학교의 폐교 배경에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학군 분리라는 사안이 놓여 있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서진학교 신설 때도 되풀이된다.
=공진초등학교가 폐교하면서 그 자리에 서진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텅 빈 공진초등학교를 둘러보는데 이상했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학교인데 학생 수가 줄어들어 문을 닫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찾아보니 이곳은 199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동네고, 일반분양아파트 주민들이 학군 분리를 신청하면서 임대아파트 지역 아이들만 공진초등학교에 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서진학교 신설 문제는 특수학교 찬반의 이분법을 넘어 지역사회의 맥락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단순히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잘못했네 하고 욕하고 끝나는 데서 머물면 이 작품은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분들이 악덕 주민으로만 그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끝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실수를 반복하면 안되는지를 고민했다.
-이야기의 중심엔 서진학교가 있지만 그외에도 발달장애인 관련 문제를 두루 언급한다.
=이 작품 하나로 발달장애 이슈를 백과사전처럼, 종합선물세트처럼 다 다룰 순 없었다. 하지만 서진학교 설립 이슈는 사안과 얽혀 있다.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과정이 중심축을 이루지만 거기에 여러 레이어가 더해진다.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의 삶이라든지 일자리 문제는 발달장애인들의 생애주기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꾸준히 관심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런 것은 없다. 다만 <학교 가는 길>을 만들면서 한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해준 게 기억난다. 외롭게 우리만 이 싸움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준 카메라가 있어 덜 외로웠다고. 앞으로도 내 카메라가 필요한 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