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감각으로 오는 것 같다. 짜릿한 해방감. 원래의 나에서 벗어나는 듯한 기분. 매혹과 구원. 그렇게 술에 빠지고 또 마약에 빠진다. 그런데 중독은 왜 시작되는 걸까? 심각한 알코올중독 상태였다가 서서히 중독에서 벗어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여러 갈래를 살펴나간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 학창 시절 잘난 친구들에게 무시당한 경험이나 아버지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기억들이 원인일 수 있다. 글쓰기에 탐닉한 저자처럼 예술가 범주에 속한 경우에는, 알코올중독 자체가 창조의 원동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나 존 치버 같은 영문학의 신화가 이를 부채질한다. 술에 취해 땅에 구르고 유치장에 갇힐지언정 근사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처럼 술을 통해 예술가로 거듭나리라는 소망.
하지만 이 신화가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여성은 ‘돌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술에 취해 살았던 진 리스 같은 작가는 알코올중독으로 눈물 많고 눈꼴사나운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쓴다. 한편 저자는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사뭇 다른 시선도 지적한다. 둘 다 위험한 것임에도 알코올중독은 재활의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한편 마약중독은 소수인종이 탐닉하는 위험한 범죄로 여겨져왔다.
음주 사실을 파트너에게 숨기려고 침실에서 몰래 술을 먹거나 약속 한 시간 전에 술을 들이붓는 생활을 하던 저자는 재활을 위해 치료 모임을 찾는다. 술에 취해 기억이 끊기고, 낯선 남자와 마음에도 없이 관계하고, 다치거나 자해를 하는 삶과는 멀어질 참이다. 그런데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재활 과정 또한 쉽지 않다.
‘회복’이 따분할까 봐, 매력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한편 재활 모임에서 자신의 중독담을 영웅담처럼 늘어놓으며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동안 끊었다가 다시 술을 마시고 또 단주를 결심하며, 그렇게 저자가 서서히 중독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20년에 걸쳐 폭음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걸작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쓴 진 리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비틀거리며 살다
“필름이 끊긴 동안 토하고,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르다 정강이가 멍들고, 커피 케이크 조각에서 묻어온 설탕 가루처럼 코카인을 코밑에 묻히는 일이 다반사였다.”(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