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스페셜] '크루엘라'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인터뷰
2021-05-26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디즈니 영화를 인디영화처럼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70년대, 런던, 펑크록. <크루엘라>의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이 세 키워드만 가지고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즈니 영화를 인디영화처럼 찍었다는 감독의 말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마칠 때쯤 되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4월 19일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과 진행한 일대일 비디오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처음 <크루엘라>의 감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이미지로 크루엘라를 떠올렸나.

=제일 먼저 떠올린 건 펑크록 밴드 블론디였다. 물론 이들은 런던 출신은 아니지만, 블론디의 1976년 앨범이 생각났다. 1970년대, 런던, 펑크록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사용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팅에 엠마 스톤을 대입하고 보니 아이코닉한 블론디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1970년, 런던, 펑크록. 영화의 세팅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나왔다. 영화의 룩에도 이 키워드들이 중요했을 것 같다.

=영화의 룩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요했다. <크루엘라>의 룩을 만들기 위해 우선 <아이, 토냐>에서 함께한 니콜라스 카라카차니스 촬영감독을 데려왔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피오나 크롬비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헤어·메이크업 디자이너인 나디아 스테이시도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를 무대로 세련된 의상을 보여준 제니 비반이 의상감독으로 함께했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는 빌런이 주인공이었다. 이 사실은 사람들이 “디즈니 영화”라고 생각하는 경계를 살짝 벗어날 수 있게 허락했다. 그래서 디즈니 영화가 아닌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공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약간은 인디영화를 만드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고, 그게 참 신났다.

-관객은 크루엘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크루엘라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솔직히 우리는 크루엘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달마시안으로 만든 코트를 좋아한다는 정도? 전사가 없는 캐릭터다보니 와일드카드처럼 생각됐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크루엘라 캐릭터에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교적이며, 재미있는 성격을 찾아냈다. 그리고 크루엘라에게 전사가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악역을 주인공으로 하는 디즈니 영화여서인지 <말레피센트>와 비교될 때가 있는데,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말레피센트>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영화를 미리 본 사람 중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조커>와 만난 것 같다”고 평한 사람이 있었다. <크루엘라>에는 탐욕스러움이 있고, 유머가 있다.

-영화에서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캐릭터가 빌런이 되는 이야기는 코믹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코믹스를 참고했나.

=이 영화를 위해 참고한 건 모두 실재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를 담은 사진들을 봤고, 그 시대의 음악을 들었으며, 그 당시 활동했던 디자이너를 참고했다. 에스텔라가 생활하는 창고는 자료가 마땅치 않아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고, 알렉산더 매퀸의 삶과 커리어를 많이 참고했다. 가난한 지역 출신이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모습, 그의 쇼가 불러일으킨 논쟁이 크루엘라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크루엘라 역시 에스텔라로 자란 1960년대 런던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단적으로 설명하면, 크루엘라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아이였다.

-두 엠마(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와 일하는 건 어땠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인지 모르는 남작 부인(엠마 톰슨)이 에스텔라 또는 크루엘라와 대화하는 장면인데, 남작 부인이 크루엘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 대화에는 언제나 크루엘라/에스텔라가 쥐고 흔드는 듯한 느낌이 있다. 두 캐릭터가 모두 완성도가 높은 데다가 스크립트의 대사도 맛깔나게 쓰여졌다. 크루엘라가 보여주는 자유분방함과 남작 부인의 뉘앙스 가득한 연기가 팽팽히 맞서 보는 맛이 있을 거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면서부터 진짜 재밌어진다.

-디즈니 영화다보니 뮤지컬 넘버와 군무를 기대할 법도 한데 그런 장면은 전혀 없다고 들었다. 대신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물론이다. 음악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캐릭터다. 음악이 흐르지 않는 순간이 없을 정도다. 디즈니와 감독 자리를 놓고 이야기할 때부터 “나는 음악을 정말 많이 사용할 거다.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웃음) 영화에서 대략 50곡 정도 들을 수 있다. 도어스, 퀸, 더 클래시, 도리스 데이, 좀비스 등이다.

-50곡을 찾기 위해 많은 곡을 들었겠다.

=2천곡 정도 들었다.

-2천곡 중에 처음 듣는 곡도 있었나.

=아,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장면은 선곡할 때 조금은 즉흥적으로 하고 싶어서 세트에서 음악을 많이 들었고 촬영하면서 어울리는 곡을 고르기도 했다. 남작 부인이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도 그랬다. 도어스의 <Five to One>을 골랐는데, 남작 부인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려운 노래지만 노래의 애티튜드가 그 장면의 남작 부인과 잘 맞아떨어졌다. 촬영하는 첫날 그 곡을 골랐고,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또 한번 즉흥적으로 노래를 결정한 순간은 크루엘라가 밤에 리버티 백화점에서 술 마시는 장면인데, 문득 엘리베이터에서 술에 취해 걸어나오는 엠마 스톤이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노래를 막 찾았다. 엠마에게 낸시 시나트라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 >을 부르라고 했고, 그게 영화에 들어갔다.

-광고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경력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 도움이 됐나.

=맞다. 광고를 만들 때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약간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즉흥적인 결정을 하는 편이었는데, <아이, 토냐> 때 그런 스타일을 시도했고 만족스러웠다. <크루엘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도 언급했지만, <크루엘라>는 규모가 큰 영화면서도 인디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페이스도 인디영화 같았다. 25분마다 새로운 숏을 촬영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배우들은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빠른 페이스에 적응하려고 모두가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좋았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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