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홍상수 월드의 또다른 시작, <인트로덕션> 시사 첫 반응
2021-05-27
글 : 송경원
글 : 배동미

홍상수 감독의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수상작 <인트로덕션>이 5월 27일 개봉했다. 세 개의 단락을 통해서 청년 영호(신석호)가 각각 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들을 따라가는 <인트로덕션>은 “제목과는 반대로, 입문자를 위한 소개용이 아니라 오히려 홍상수 감독 영화 세계의 확장판”(<버라이어티>)으로서 충만해진다. <인트로덕션>의 시사 첫 반응을 전한다.

송경원 기자

세 번의 포옹, 지난한 기다림과 짧은 온기. 두렵고도 아름다운 순간들. <인트로덕션>은 ‘효율성의 대가’로 정평이 난 홍상수 감독의 스물다섯 번째 영화이자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수상작이다. 앞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의 여우주연상, <도망친 여자>(2020)의 감독상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청년 영호(신석호)가 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세 단락으로 그린 이 영화는 66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소품이라 부를 수 없는, 간결해서 도리어 깊은 홍상수식 미니멀리즘의 현재를 증명한다.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음악까지 직접 맡은 홍상수의 영화는 곁가지를 줄이면서 점점 맑고 투명해져 가는 중이다. 불순물을 줄이고 영화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간다는 일체감. 그렇기에, <인트로덕션>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건 부질없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영화를 향해 말을 걸고 싶어진다. 마치 해변으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지는 파도처럼.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변화를 겪는 연인들,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은 어떤 마음. 인물들은 수시로 담배를 피우고, 서로 포옹하고, 머뭇거리고 말을 삼킨다. 카메라는 우리가 흔히 사건이라고 믿는 그것이 시작되기 전 앞에 고인 망설임에 머물고 침묵을 찍는다. 이것은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전조 혹은 서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과 마주할 수 있으니. 동시에 이것이 지금 현재 홍상수의 모든 것이다. 다음을 위한 준비과정이나 쉼표가 아닌 오롯이 지금. 문 앞에서 망설이는 세상 모든 ‘지금’의 발견. 감독 홍상수는 당연하다는 듯 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배동미 기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어느 순간 앞선 서사를 뒤집고 전치시키는, 일종의 누빔점을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해나 망각으로 여러 번 뒤집히거나(<그후>), 꿈 속 이야기로 뒤바뀌면서 무화되고 해체됐다.(<하하하> 이순신 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엔딩) 뒤집힘이 반복되자 어두운 극장에 앉아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가 실은 꿈이 아닐까, 또 누군가의 오해가 아닐까' 홀로 피로함을 느끼는 시간들도 있었다. 연인이 나눠먹는 시원한 수박(<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차창 너머로 흩날려 들어오는 눈발(<그후>)은 고맙게도 부유하고 해체되는 홍상수 월드의 이야기를 현실의 층위로 내려 앉혀줬다.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 뺨에 와 닿는 눈발에의 감각은 시청각에 의해 의미화되는 영화란 매체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촉각적인 경험들이다.

<인트로덕션>에서는 겨울 파도가 세차게 밀려와 이런 역할을 한다. 영호(신석호)는 1장부터 3장에 이르기까지 각장에서 아버지와 연인, 그리고 대배우를 만난다. 상대들은 영호를 달가워할 수 없는 상황인데, 관객들은 이들의 만남과 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부대낀다. 이야기가 전치되고 인물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가 관객에게 잔존할 때쯤 영호는 기꺼이 바다로 들어간다.

차갑고 세찬 파도의 촉각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관객 역시 앞선 대화와 몸짓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식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겠지, 연인은 새로운 기회를 바라보고 있었겠지, 노배우는 진심을 담아 사랑에 빠진 연기를 했겠지... 겨울 바다에서 걸어 나와 이를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위를 느끼면서도 영호가 웃음 짓게 되는 건 모든 확정적이지 않은 관계들과 기억 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말의 조각들을 현실의 파도가 한순간에 내려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현존하는 감각이 영호를 깨우고 관객을 깨울 때 영화는 파도처럼 홀연히 물러나 현실을 불러들인다. <인트로덕션>은 대단히 촉각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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