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분더카머> 호기심의 시간, 머릿속의 공간
2021-06-14
글 : 이다혜
윤경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분더카머는 16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성행했는데,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멀리 있는 사람과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통신기술이 발전하기 전이었으므로, 분더카머는 필연적으로 이미지의 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낯선 나라의 글씨 역시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맥시멀리즘의 원칙을 따라 (거의) 빈 공간 없이 들어서 있다. 범주를 나누고 분류한 듯 보이지만 ‘야릇한 무계통의 혼돈’이 가득하다. “사실 모든 것이 잡동사니다.”

윤경희의 책 <분더카머>는 놀랍게도, 저 설명대로 낯설고도 복잡한 책으로, 사물과 이미지, 텍스트를 포괄해 사유하는 자가 얻을 수 있는 경이의 감각을 선물한다. 글에 매혹된 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수집과 분류의 열망이 책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분더카머>다. 해석은 번쩍이며 지나가고, 그러면 새로운 문장이 태어난다. 윤경희가 관찰하는 것은 마치 환등기가 영사한 듯 어른거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다. ‘서구 문학의 관습에 침윤’된 저자가 추억하는 어린 시절 자체가 분더카머의 하나의 수집물이 된다.

경험은 적절한 언어라는 자리를 찾을 때에야 의미를 갖는다. 타자의 텍스트를 경유함으로써 거울 속 사람을 직시하는 것은 텍스트에 매혹되어 수시로 길을 잃어온 사람의 습벽이다. 복잡해 보이는 이 말을 책 속의 표현으로 대체하면 “문학은 소음에서 시작된다. 술렁이는 것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 너는 어느 나라 말이니”. 분더카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확장시켜보면, 영화의 미장센, 나아가 한편의 영화 역시 일종의 분더카머일 수 있다. 관객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각자의 호기심과 애호에 따라 수집하고 분류하고 해석한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은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에서 <분더카머>를 “은신처이자 보호소”라고 했다. 그 의견에 깊이 공감하며, 이 책 속 수많은 나열된 단어들을 소리내 읽는다. 책의 부제는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인데, 이처럼 모를 듯 알 듯, (소리나 이미지로) 연결될 듯 말 듯 나열된 단어들은 오직 문자만이 허용된 분더카머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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