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존 추, 린마누엘 미란다 인터뷰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삶의 레퍼런스에 대해"
2021-06-17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존 추 감독과 린마누엘 미란다 프로듀서(왼쪽부터).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이 궁금하다.

존 추 너무 긴장해서 전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린마누엘을 만나다니! 거의 토할 뻔했다. 만나고 보니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웃음) 린은 만나자마자 “아내와 <스텝업2: 더 스트리트>를 개봉 첫주에 봤다”고 말했다. (웃음) 그때부터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비슷한 삶의 레퍼런스가 많았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린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더라.

린마누엘 미란다 잠깐, 비슷한 나이가 아니라 우리는 동갑이다. (일동 웃음) 아버지는 1980년대에 뉴욕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에서 미국에 왔다. 언제나 돌아가려고 했는데 엄마를 만났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서 자랐다. 하지만 ‘부모님이 고향에 있었더라면?’이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이든, 조부모님이든 미국에 와서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하며 자식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존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영화에서 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고 있었고 팬이었기 때문에 존이 <인 더 하이츠>를 영화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이어 <인 더 하이츠> 역시 백인 캐릭터가 거의 없다.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된 건가.

존 추 두 영화를 거의 동시에 선택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먼저 하면서, <인 더 하이츠>가 나를 기다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기다려주더라. 생각해보면 영화를 고를 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지금까지의 커리어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할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적이면서 두려운 이야기를 찾았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인 더 하이츠> 모두 나를 두렵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전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꼭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만남에 따라 함께 해답을 모색할 거라는 걸 배웠다. 의도한 것도 우연도 아니지만, 이미 분위기는 만들어졌던 것 같다.

-첫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어떤 여정이었나.

린마누엘 미란다 당시 나는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뮤지컬 속의 라티노(미국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계 사람)는 중요한 배역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라티노가 칼을 들지 않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퀴아라 알레그리아 휴즈가 공동 각본가로 팀에 합류하면서 큰 틀이 잡혔고 빠르게 진행됐다. 이 여정은 뮤지컬을 하고 싶었던 내가, 의욕만 앞서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뮤지컬을 완성하고 이제는 영화가 된 이야기다. 이 부분이 가장 멋진 부분이고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존 추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월요일에 촬영하다가 바로 옆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인 더 하이츠> 공연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금요일에 촬영을 접고, 모두가 공연을 보러 갔다. 기억에 남을 만큼 즐거운 공연이었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 현장에 갔을 때는, 무대에 있던 학생들이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인 더 하이츠>는 2008년에 초연됐다. 지금과 얼마나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

린마누엘 미란다 시대와의 관련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2008년의 이야기 속 이민과 젠트리피케이션은 2020년이 되자 더 뜨거운 이슈가 됐다. 솔직하게 말해서 라티노들이 정부 정책으로 지금보다 더 고통받았던 때는 없었다. <인 더 하이츠>의 캐릭터 대부분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인 동시에 미국 시민이다. 이들이 뉴욕에서 각자가 떠나온 국가의 국기를 흔드는 것, 미국을 대표하는 동시에 각자의 고향을 대표하는 모습은 2020년에 바라보면 상당히 급진적인 액티비즘이다.

-워싱턴하이츠는 그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졌나.

린마누엘 미란다 그대로인 부분도 있지만 바뀐 부분도 많다. 어릴 적 추억이 그대로인 곳을 젊은 백인 부부가 유모차를 밀고 걸어간다. 2003년 버전에서 니나의 가사 중에 “181가에 스타벅스가 들어서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스타벅스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내 생각에 가장 달라진 점은 워싱턴하이츠에서 자란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거다. 나도 워싱턴하이츠에 살고 있고, 퀴아라도 우리 동네에 산다.

-캐스팅에 대한 일화가 있나.

존 추 멜리사 바레사는 처음에 바네사로 오디션을 봤는데 니나로 캐스팅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니나보다 바네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가장 마지막에 다시 오디션을 바네사로 바꿔서 본 뒤에 캐스팅했다. 보통 배우들은 역할을 바꾸는 걸 어려워하는데, 멜리사는 그렇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영화 속 넘버는 모두 배우들이 직접 불렀고, 대부분 촬영하면서 라이브로 불렀다.

린마누엘 미란다 베니 역의 코리 호킨스는 US 오픈 때 경기장에서 국가를 부르는 걸 보고 캐스팅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사실 코리가 베니 역할로 물망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코리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국가를 멋지게 불렀다. 그 뒤로 몇번 오디션을 더 진행했지만, 실은 그때 거의 결정했다.

-복권 당첨액이 9만6천달러인 이유가 있나? 인생을 바꿀 만한 금액은 아니다.

린마누엘 미란다 2008년에도 9만6천달러는 집을 살 정도로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돈이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주 약간 나아진 삶을 살 수 있는 금액이고, 빚을 갚을 수 있는 정도다. 세금을 떼고 나면 4만달러다. (일동 웃음) 내가 96이라는 숫자를 생각한 이유는 이렇다. 나는 100가에서 자랐고, 내가 다닌 학교는 84가에 있었다. 84가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였다. 그 두 지역의 중간이 96가였다. 그래서 96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서 가난과 부를 가르는 구분선이었다. 두 지역에서 파는 맥도널드 치즈버거 2개 가격의 차이가 50센트나 됐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96이라는 숫자에 더 가지고 덜 가지고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