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뮤지컬 <해밀턴>의 극본, 작사, 작곡, 주연(초연)으로 이름을 알린 린마누엘 미란다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으로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남미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뉴욕주 맨해튼의 워싱턴하이츠를 무대로 삼아 고단한 삶 속에도 모두가 마음 한켠에 품은 꿈과 희망을 노래한 뮤지컬로, <스텝업> 시리즈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의 지휘 아래 영화화됐다.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이상 개봉을 기다린 <인 더 하이츠>는 원래 2020년 8월 개봉예정이었기에, 존 추 감독과 린마누엘 미란다와의 인터뷰는 지난 2020년 2월에 진행됐다. 같은 날 만난 출연진 안소니 라모스, 코리 호킨스, 멜리사 바레사, 레슬리 그레이스와 나눈 이야기를 통해 뮤지컬영화 <인 더 하이츠>를 살짝 엿보았다.
영화 및 TV시리즈의 평점을 신선도로 표시하는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 닷컴에 따르면, <인 더 하이츠> 신선도는 6월 8일 기준 99%다. 개봉 전이기 때문에 시사회를 통해 먼저 영화를 본 평론가들의 평점만 반영된 결과인데도 99%라는 신선도는 놀라울 만큼 높은 수치다. 예술영화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다. 게다가 자칫 잘못 만들면 뮤지컬 팬들로부터 원성을 사기 쉬운 뮤지컬 원작의 영화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99%는 비현실적인 평가다.
<슬랜트 매거진>은 “계속해서 놀랍고, 독창적으로 용감한” 영화라고 평했고, <옵서버>는 “올여름 꼭 봐야 하는 영화적 경험”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인디펜던트>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아찔하리만치 감정이 풍부한 각색”이라며 “지금 이 시기에 영화관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고 호평했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뮤지컬 <해밀턴>의 극본, 작사, 작곡, 주연(초연)으로 명성을 얻은 푸에르토리코계 이민 2세대 린마누엘 미란다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적한 해변의 바에 앉은 한 남자가 마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문을 연다. “사라져가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때 한 아이가 불쑥 끼어들어 흐름이 끊기자 남자는 이야기로 돌아가기 위해 나무로 된 의자를 두드리는데, 그 두드림은 배경음악의 타악기 리듬으로 바뀌며 장소는 워싱턴하이츠로 바뀐다. 이때 나오는 뮤지컬 넘버가 <In the Heights>로, 이제는 린마누엘 미란다의 인장이 된 힙합과 뮤지컬 앙상블, 라틴음악이 모두 섞여 영화의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알려준다. 낙후된 거리에서 모퉁이 잡화점을 운영하는 우스나비(안소니 라모스)는 생필품부터 식품, 신문, 커피 등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판다.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우스나비의 잡화상은 워싱턴하이츠 주민들이 매일 찾는 동네 사랑방이다.
사람들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집어들고 신문을 펼치고 우유와 설탕을 넣은 모닝커피를 주문한다. 우스나비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스페인어로 ‘수에니토’라고 하는 이 작은 꿈은 가난 때문에, 억양 때문에, 다른 피부색 때문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버티게 해주는 희망이다. 워싱턴하이츠의 사람들은 매일 우스나비의 가게에 들러 복권을 한장 사는 걸로 각자의 작은 꿈에 희망을 한 스푼 더한다. 푼돈을 투자해 당첨에의 기대를 안고 작은 행복을 사는 마음은,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것이다. 우스나비의 꿈은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해변의 작은 바를 다시 여는 것이다.
<인 더 하이츠>의 캐릭터들은 우스나비의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로, 가족 같은 이들이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품앗이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이민자 사회의 정서가 반영된 순간은 영화에 자주 나온다. 우스나비의 가게에서 사촌 동생인 소니가 함께 일하고, 이웃 할머니 클라우디아를 소개하면서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라는 설명이 따라온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명문대에 진학한 자랑스러운 딸 니나(레슬리 그레이스)를 둔 아버지 케빈(지미 스미스),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지만 언젠가는 다운타운으로 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바네사(멜리사 바레사), 우스나비의 절친이며 니나와 사랑에 빠지는 베니(코리 호킨스)는 매일 우스나비의 가게에 들른다.
어느 날, 우스나비의 작은 잡화상에서 판매된 복권이 9만6천달러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네는 기대감에 술렁인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자신일 수 있다는 설렘이 녹아든 뮤지컬 넘버 <96,000>은 무더운 여름의 야외 수영장에서 안무가 에스터 윌리엄스가 디자인한 아쿠아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뮤지컬 스테이지를 벗어나 영화라는 미디어로 무대를 옮겼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장점을 잘 이용한 장면 중 하나이며, 춤을 소재로 한 영화로 커리어를 쌓은 존 추 감독의 장기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처음에 린마누엘 미란다는 <인 더 하이츠>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에 기쁜 동시에 걱정스러웠다. 뮤지컬의 영화화가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화된 뮤지컬이 더이상 뮤지컬이 아닌 경우도 있고, 영화화됐음에도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공동 작가인 퀴아라 알레그리아 휴즈가 영화의 각본에 참여하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퀴아라 알레그리아 휴즈는 존 추 감독과 함께 극본의 한줄 한줄을 영화의 스크립트로 바꾸며 원작의 뉘앙스를 지키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2005년에 쓰여진 이야기를 2020년 현재에 맞춰 업데이트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국에서 이민자 커뮤니티가 맞닥뜨린 큰 문제 중 하나인 다카(DACA,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를 우스나비의 사촌 동생 소니의 상황에 대입함으로써 시대가 직면한 이슈를 다루었다. 뮤지컬의 영화화가 걱정됐지만 꼭 시도해야만 했던 이유는 실제로 촬영을 워싱턴하이츠에서 했기 때문이다. “<인 더 하이츠>의 모든 뮤지컬 넘버는 맨해튼의 한 구석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영화가 실제 그 공원, 골목을 촬영할 것을 생각하니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인 더 하이츠>는 “워싱턴하이츠를 무대로 펼쳐지는 러브 스토리이며 워싱턴하이츠에 대한 러브레터”라는 미란다의 설명처럼 영화에는 두개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바네사를 향한 우스나비의 짝사랑과 베니와 니나의 러브 스토리다. 흥미롭게도 미란다의 진짜 러브 스토리가 이 두 이야기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미란다는 <인 더 하이츠>의 넘버를 작업하던 때 지금의 아내인 바네사와 데이트를 시작했다. 덕분에 여주인공 이름은 바네사가 됐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쓴 넘버는 베니와 니나가 함께 부르는 <When You’re Home>으로 탄생했다.
“나와 아내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두 번째 데이트 때 동네를 걸으며 서로에게 특별한 장소를 보여줬다. 집에 돌아와서 뮤지컬 연출자인 토미 케일에게 전화했는데 토미는 빨리 전화를 끊고 감정이 살아 있을 때 베니와 니나를 위한 러브송을 쓰라고 했다. 이 장면을 리허설하던 날이 생각난다. 비오는 날이었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공원으로 나오라고 했다. 우리가 수없이 걸었던 공원에서 촬영하는 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울더라. 그러니 이 영화가 얼마나 특별한지 나로선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나의 가장 깊은 곳과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