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아야와 마녀'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 “작품은 혁신적으로, 사업은 신중하게”
2021-06-18
글 : 송경원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 과정과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되는 <지브리의 천재들>이란 책이 최근 국내에도 출판됐다. 책은 지브리 탄생의 주축이 된 두명의 천재,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가만히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또 한명의 천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책의 저자이자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를 맡고 있는 살림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다. 스즈키 도시오는 자신의 역할을 “두 천재가 잘 움직이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곧 지브리의 역사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야와 마녀> 개봉을 앞두고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와의 국내 단독 인터뷰를 전한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6년 만에 제작한 신작이다. 어떻게 애니메이션화를 결정했나.

=도쿠마 서점의 아동서적 편집자가 매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내게 아동서적 신간을 보내준다. 나는 불성실해서 거의 읽지 않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성실한 사람이라 그걸 전부 훑어본다. 4년 전 <이어위그와 마녀>를 건네며 재미있는 책이라며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역시나 좋은 내용이었고, 지금 시대에 맞는 것 같았다. 당시 하야오 감독은 은퇴 선언을 철회하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획 중이었기 때문에 둘 중 어떤 걸 진행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양쪽 다 놓칠 수 없는 기획이라고 말했고, 미야자키 감독도 동의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미야자키 고로 감독을 찾아가 <아야와 마녀>를 해보라고 설득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들인 고로 감독에게 먼저 권유한 거였나. 고로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코쿠리코 언덕에서>, 심지어 <산적의 딸 로냐>까지 이제껏 고로 감독이 만든 건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안한 기획이었다. 당시 자신의 오리지널 기획을 구상하고 있던 고로 감독 입장에선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반드시 해보겠다고 했다.

-곁에서 지켜보기에 미야자키 고로는 어떤 연출자인가.

=어려운 질문인데. (웃음) <아야와 마녀> 속 아야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아야는 짓궂고 심술맞지만 강한 아이다. 얼핏 보면 귀엽지 않아, 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오래 보고 있으면 점점 귀여워진다. 아마도 본인과 닮은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지점을 섬세하게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심술궂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영리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아이. 딱 고로 감독이다.

-일본 잡지 <아니메주>와의 인터뷰에서 반대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아야 캐릭터가 스즈키 도시오를 닮았다고 했다. 서로가 저쪽이 모델이라고 하는 건데, 둘의 관계가 재미있다.

=고로 감독이 스탭에게 지시해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딸을 취재해갔다고 들었다. (웃음) 아야를 귀엽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로 감독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말괄량이 삐삐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이라면 아야는 가장 영리한 아이다. 삐삐를 무척 좋아하는데 어떤 의미에선 아야가 삐삐의 패러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은 부분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상황을 영리하게 대처해나간다는 점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가치는 강함보다 현명함이 아닐까 한다. 원작은 예전에 창작됐지만 이걸 지금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에게 에너지를 안겨주는, 시의적절한 캐릭터다.

-아야는 처음부터 자신이 사람을 조종하겠다고 선언하는데,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와 닮았다는 게 아닐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조종받고 싶은 사람이랄까.

=알기 쉽게 차이를 설명하겠다. 나는 심술궂지 않고, 고로는 심술궂다. (웃음)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3D CG다. 3D로 제작을 권유한 장본인이라던데.

=그렇다. 일본에서 3D CG 작품의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아 처음엔 고로 감독도 3D로 만들되 셀룩 기법으로 보이도록 변환하자고 했다. 하지만 모처럼 3D로 하는 걸 그렇게 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본격적인 3D CG로 평가받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지브리 입장에선 드로잉과 CG 양쪽을 다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로 감독이 연출한 <산적의 딸 로냐>에서 CG를 경험했기에 그걸 기반으로 3D에 도전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으로 얻은 것도 많겠지만 돌파해야 할 문제도 많았을 텐데.

=크게 두 가지가 난제였다. 하나는 표현방법이다. 고로 감독이 콘티를 가져왔는데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이걸 장면으로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다. 표정 하나, 톤 하나가 작품의 전체 인상을 결정지을 수 있다. <아야와 마녀>는 북미의 CG애니메이션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택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카락의 움직임이라든지 동작, 질감 등에서 인형극의 수법을 여러 가지로 빌려왔다. 실제로 고로 감독이 대학생 때 인형극을 하기도 해서 도움이 됐다. 두 번째는 인력 문제인데, 다행히 우수한 애니메이터가 많이 모여서 새로운 도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번 작업 현장은 스탭의 연령대가 30살 전후로 젊은 편이었다고 들었다.

=그랬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젊은 스탭들이 중심이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했다. 그들과의 작업은 현장에 여러 가지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스튜디오 지브리의 초창기 때처럼.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난제들이 있었음에도 이런 사정으로 작업을 지연하는 부분이 없어서 감탄했다. 그런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외국에서 온 애니메이터들이 솔직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좋았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고로 감독이 처음에 작업할 때 내게 와서 이걸 끝으로 더는 작품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너무도 체력을 요하는 일이라 더 해나갈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던 중 어느 날 슬며시 와서는 앞으로 두세편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함께한 스탭들이 너무 훌륭하다며, 이런 분들이 앞으로 지브리와 함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퇴 발표와 복귀 선언이 있었던 셈이다. 어쩐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생각나는데. (웃음)

=(폭소) 닮을 수밖에 없는 건가? 거기에 대해 나는 아무런 답을 해줄 수 없다. (웃음)

-스튜디오 지브리는 2014년 제작팀 해체 후 일시적으로 제작 중단을 발표했는데, 이번 작품이 지브리 부활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이 앞으로 지브리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계속 작업 중이다. 2014년 이후 여러 곳에서 애정 어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앞으로 작품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작품마다 어려움이 있을 테지만 그걸 개선해나가는 것 역시 지브리가 걸어온 길이었다.

-판권과 저작권을 지켜왔던 지브리가 넷플릭스에 작품을 서비스한 건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이었다. 이후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오래전 베타와 VHS 방식의 경쟁이 있을 때도 지브리는 모든 상황이 결정된 후에 참여했다. 지브리의 방침 중 하나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신중하다는 거다. 작품에 관해서는 혁신과 도전이 있지만 사업적으로는 신중해야 한다. 해당 변화가 당연한 것이 되었을 때, 어쩌면 가장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게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도 그런 경우였고, 앞으로도 같은 방침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다.

-차기작을 소개해줄 수 있나. 특히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작업 상황이 궁금하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아직은 모든 게 비밀이다.” (웃음)

사진제공 대원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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