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귀여운 매력이 있다.” <메이드 인 루프탑>의 하늘과 자신의 공통점을 꼽으며 이홍내가 씩 웃는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악역 지청신을 맡았을 때와 달리, 어깨에 힘을 빼고 대화를 이어가는 그에게서 전과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배우 이홍내가 연기한 하늘은 남자 친구 정민(강정우)에 대한 애정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특유의 사랑스러움 외에도 취준생으로서 불안정한 현실을 버티는 하늘을 보며 이홍내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경찰, 보디가드, 근위대 부대장 등 강렬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이홍내는 자신에게서 하늘이 잘 연상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 내 김조광수 감독을 찾아갔다. 김조광수 감독은 그에게서 하늘과 같은 “소년미”를 발견했고, 이홍내의 바람대로 <메이드 인 루프탑>은 그의 첫 주연작이 되었다.
-올해 초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어릴 때 보던 잡지에 내가 나온다니”라며 감격했는데, 반년 만에 표지를 찍게 됐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정말 실감이 안 난다. (웃음) 지난 인터뷰가 실렸을 때도 너무 좋아서 친구들한테 <씨네21>을 사서 나눠주고 그랬는데 표지라니. 솔직히 결과물 나오기 전까지도 실감이 안 날 것 같다.
-<메이드 인 루프탑> 대본을 보고 먼저 하늘을 연기하고 싶다고 연락했다던데.
=하늘에게서 내 20대 초반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에너지를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랬던 내가 하늘을 연기하면 관객에게 위로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니 감독님이 뭐라고 하던가.
=웃는 게 예쁘다고 하셨다. 그래서 계속 웃었다. (웃음) 그냥 시켜달라고 떼쓰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늘을 연기할 생각인지 고민한 바를 신중하게 말씀드렸다.
-<메이드 인 루프탑>의 하늘은 그간 맡은 인물 중 가장 부드러운 면모를 지녔다. 어떻게 접근했나.
=전작 <경이로운 소문>의 악역 지청신이 워낙 강렬해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고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특별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메이드 인 루프탑>을 먼저 촬영하기도 했고. 하늘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건 기존 매체가 보여준 것처럼 성소수자를 희화화해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는 거다. 내 상상력 안에 머물지 않으려고 거의 신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과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그렇게 쳐다보면 무서워”라는 말. (웃음) 하늘이 남자 친구인 정민에게 투정부리는 연기를 할 때 내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많이 잡아주셨다. 후반부에도 감정이 너무 깊어질 때마다 굳이 그렇게 슬프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많이 끌어올려주셨다.
-영화는 하늘이 정민과 이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애틋함을 쌓을 새도 없이 곧바로 서운함을 표현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
=정민과의 서사가 짧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굳이 뭔가를 더 추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늘이 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는 바로 정민이다. 내가 그걸 계속 염두에 두고 연기한다면, 둘의 애정 신이 없어도 관객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이는 계속해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정민이가 전화를 5번 걸어야 받아줄 거란 이야기를 들었을 땐 너무하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감독님, 작가님한테 ‘정말 이렇게 연애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었다. 결국엔 그게 하늘이란 사람의 연애 방식이라고 받아들였다. 진짜 헤어지고 싶어서 매몰차게 구는 게 아니라 ‘내가 널 이만큼 좋아하는데 왜 이렇게 날 서운하게 해, 내게 더 관심 갖고 사랑해줘’라고 나름대로 표현한 거지.
-그런 하늘이가 정민이 폰에 있던,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전부 지운다. 정민이 사고를 당한 와중에 그의 가족에게 게이임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늘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이 굉장히 잘 드러나는 신이었다.
=하늘이는 함께한 추억을 기록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인물이었을 거다. 정민이가 그 반대고. 정민이가 가족에게 자기를 소개해주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자기 손으로 그 사진들을 다 지워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의외의 모습도 보여줬다. BJ인 봉식(정휘)과 같이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굉장히 잘하더라.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나.
=노래방 가는 걸 정말 좋아한다. 친구들한테 칭찬도 많이 받아봤다. 그런데 촬영은 또 다른 문제더라. 내가 계속 엇박으로 들어가서 뮤지컬을 오래한 정휘 배우가 많이 도와줬다. 그때 ‘아, 나는 노래방 마이크 없인 힘들구나, 술 한잔의 힘이 필요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웃음)
-정휘 배우와의 호흡이 좋았나보다.
=정휘는 실제론 굉장히 의젓한 성격인데 촬영 땐 원래 성격이 봉식이처럼 밝은가 싶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친구였다. 많이 믿고 기댔다. 정민 역의 강정우 배우도 마찬가지다. 워낙 베테랑인 데다가 준비도 철저히 해온다. 함께하는 신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고양이 아리와의 촬영은 어땠나. 스크린상으론 무리 없어 보였는데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고 표현했더라.
=정말 그랬다. 평소엔 온순하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예민해졌다. 낯선 환경에선 고양이들이 그렇게 된다더라. 그래서 온전히 아리 컨디션에 맞춰 기다리고, 촬영하고를 반복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경이로운 소문> <메이드 인 루프탑> 두 작품을 선보였다. 하반기엔 어떤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까.
=아직 차기작을 공개할 순 없지만 현재 영화와 드라마 모두 준비 중이다. 그동안 화면에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등만 나올 때도 많았는데,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다. 지금보다 더 새롭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씨네21>과 세 번째 만남도 기다리고 있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