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메이드 인 루프탑' 정휘, 하이 텐션 극과 극
2021-06-23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한껏 치켜세운 파마머리에 선글라스와 붉은색 피케 티셔츠. 어리둥절해하는 친구 하늘(이홍내) 앞에 전동 킥보드를 타고 나타난 봉식은 덥다며 슈퍼의 아이스크림 판매대에 머리를 쑥 집어넣는다. 엉뚱한 매력을 지닌 봉식에게 하이 텐션으로 끝없이 말을 쏟아내야 하는 BJ는 의심할 여지없이 천직이다. “하지만 그렇게 밝은 면이 내면의 아픔을 감추기 위함이란 걸 알게 되면서 봉식에게 더 마음이 갔다.”

봉식을 연기한 정휘는 2013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한 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베어 더 뮤지컬>, 연극 <에쿠우스> 등에 출연했다. 무대에서의 모습이 더 익숙한 그에게 <메이드 인 루프탑>은 “운명처럼 찾아온” 첫 장편 주연작이다. 평소 가명이냐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자신은 ‘진짜 휘’라는 자부심이 있다며 정휘는 시종 유쾌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매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내놓았지만, 그 속에 녹아든 고민들이 그가 오랜 시간 봉식을 살피고 연구했음을 짐작게 했다.

-2016년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나왔을 때부터 김조광수 감독이 눈여겨봤다더라.

=너무 신기했다. <팬텀싱어> 때의 모습과 봉식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알고 보니 공연계 지인에게 따로 추천도 받으셨다더라. 오디션을 아무리 봐도 안되는 게 있고, 예상치 못하게 불쑥 나타나는 작품이 있는데 <메이드 인 루프탑>은 후자였다. 정말 배우마다 자기 작품이란 게 있나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내면에 다른 면모를 지닌 인물인 듯 봉식을 표현하고 싶었다던데, 연기해보니 무엇이 담겨 있던가.

=요즘 2030세대는 일면 가벼워 보이지 않나. 나도 올해 서른하나인데 여전히 애 같다. 그럼에도 30년이란 세월은 확실히 무시 못한다. 봉식도 비슷했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데 오랜 시간 축적된 아픔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래서 겉으론 더 밝게 표출하는구나 싶고. 짠하면서도 계속 눈길이 갔다.

-봉식이 어떻게 옥탑방에 살게 됐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음, 그냥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설정을 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봉식과 정말 잘 어울리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봉식은 마흔까지 살겠다고 말하며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본인은 현재와 미래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

=완전히 미래지향적이다. 봉식처럼 좋은 옷, 차에 욕심은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열심히 절약하는 편이다. 봉식은 자신의 끝을 마흔으로 정해뒀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사실 오래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으니, 미래를 단념하고 현재에 집중하게 된 거지.

-봉식의 스타일은 어떻게 완성했나. 머리도 예사롭지 않은데 항상 원색 혹은 강렬한 패턴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감독님이 먼저 제안해주셨다. 처음엔 빨갛게 염색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때 다른 공연을 하던 중이라 불가능했고, 대신 펌을 하고 헤어밴드로 올리는 식으로 변경했다. 기왕 화려할 거 더 화려하게 가자 싶어서 귀걸이도 2, 3개씩 하고 선글라스도 꼈다.

-라이브 방송도 능숙하게 잘하더라. 딱 한번만 촬영했다고 들었다.

=준비를 진짜 많이 했다. 대본 자체가 하이 텐션이라 나도 그렇게 방향을 잡았고, 목소리 크고 리액션 많이 해주는 BJ들의 특징을 주로 참고했다.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도 철저히 준비해서 집에서 직접 촬영해 확인하는 식으로 연습했다.

-방송할 때는 한없이 발랄한데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는 조심스럽고 차분해진다.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서 쉽지 않았겠다.

=워낙 차이가 커서 다른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도 됐는데 그런 복잡한 부분을 잘 그려줘야 봉식이 다층적인 인물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식의 고민을 베이스로 뒀고, 그렇게 속을 채우니까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홍내, 곽민규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실제론 내가 동생이라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이홍내 배우가 워낙 잘 받아줬다. 원래 동생이 까부는 것도 형이 잘 받쳐주기 때문이지 않나. (웃음) 곽민규 배우랑은 대화가 잘 통할 때의 짜릿함이 있었다. 이 사람이 진짜 나를 보는구나, 나랑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중 이정은 배우가 봉식의 아랫집 이웃으로 등장했다.

=너무 유명한 분이라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딱 하루 동안 모든 촬영을 진행해야 해서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잘 그려질까 싶었는데, 선배님이 워낙 잘하셔서 “그만 좀 하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끝나고 같이 사진도 찍고 번호도 교환했다. (웃음)

-2013년에 데뷔한 뒤로 뮤지컬,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왔다. 영화에선 어떤 장르와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나.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다. 몸 쓰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태권도를 오래해 4단까지 땄고 예고에 진학하기 전까진 선수 생활도 했다. 멜로도 해보고 싶다. 그것도 세기말 감성의 진한 멜로를. (웃음)

-연출에 대한 꿈도 있나. 지난해 배우 홍승안, 연출가 이지원과 함께 ‘원승휘 프로젝트’를 결성하고 올해 초 리딩 공연인 <파인드 파인>을 올렸다.

=연출이라기보다는 공연 제작쪽에 관심이 있다. 예술적인 가치관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운좋게 만났고 앞으로도 이들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파인드 파인>을 준비하면서 공연 하나 올리는 데에 정말 많은 수고와 돈과 노력이 든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에 출연 중이고 곧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8월 개막 예정인 뮤지컬 <메리셸리>와 원승휘 프로젝트까지. 남은 한해를 정말 바쁘게 보내겠다.

=예전엔 매년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바라보고 달렸는데, 이제는 현재의 하루하루에 집중한다. 당장 내일 관객과의 대화(GV) 잘하고, 내일모레 공연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러다보면 주변을 잘 챙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공연 외에 매체쪽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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