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씨네리’의 취향저격 여름 음악영화 추천
2021-08-24
글 : 김현수
글 : 김소미
같이 들을래?

연이은 폭염과 기약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겹친 2021년의 여름을 보내기가 어느 때보다도 힘겹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반기며 극장가를 강타하는 흥행 대작을 소개하기 바빴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무엇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여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에 독자 여러분들의 취향을 미끼 삼아 올여름을 더욱 시원하게 보낼 음악영화 8편을 엄선했다. 개봉한 지 40여년이 흐른 뮤지컬영화에서부터 8월 말 극장 개봉을 기다리는 신작까지 장르와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하게 선정했다. OTT 플랫폼이란 망망대해에 드리워진 낚싯대의 심정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영화들이다.

#음악이 촉감이 될 때

<코다>(2021)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퍼디아 월시 필로,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다니엘 듀런트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청인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루비는 자연스레 가정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역할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 노래를 사랑하는 그녀가 버클리음악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가족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급한 위기에 처한다. 속이 상한 엄마 재키(말리 매트린)는 불쑥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장님이었으면, 넌 그림 그린다고 했겠네?”

재능 있지만 조금 주눅 든 주인공, 듀엣 파트너로 배정된 잘생긴 동급생, 뛰어난 감식안과 통솔력을 지닌 선생님 등 <코다>에는 음악영화를 즐겁게 하는 컨벤션이 모두 있다. 그런 동시에 쾌감을 쉬이 얼룩지게 하는 신파의 유혹은 영민하게 제거되어 있기도 하다. 노래는 더이상 듣는 것만이 아닌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지하는 무언가다.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뭉클한 음악영화로서 좀처럼 흠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예상보다 눈물을 많이 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올해 제37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8월31일 극장 개봉예정이다.

▶ 이 한곡!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

조니 미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대충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오디션 곡으로 <Both Sides Now>를 선택한 루비에게 혹독한 평을 날리는 음악 선생 베르나르도가 다수의 사례 중 하나. “조니 미첼을 선택했으면 잘 불러야지, 이게 뭐야? 이건 엄청난 명곡이라고!” 흥분한 그에게서 엿보이는 조니 미첼을 향한 마음 깊은 곳의 숭배는 찰나의 장면이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청춘 뮤지컬영화의 원조

<그리스>(1978)

감독 랜들 클라이저 출연 존 트래볼타, 올리비아 뉴턴존

사랑은 누군가를 변하게 만든다. 청춘들의 뜨거운 사랑을 소재로 한 수많은 뮤지컬영화가 있다지만 여름과 어울리는 청춘 음악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그리스>다. 19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10대들의 이야기를 뮤지컬 형태로 담은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사회와 젊은이들의 세태를 엿볼 수 있는 가죽 재킷, 자동차, 헤어스타일 같은 시각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선 화려한 겉치장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했다.

껄렁껄렁한 대니 역의 존 트래볼타와 유학생 출신의 얌전한 샌디 역의 올리비아 뉴턴존이 춤과 연기의 경계를 뒤흔드는 열연을 보여준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같은 액션영화에서 볼 법한 ‘데스 레이스’ 카 체이싱 장면도 등장한다. 이 영화는 2020년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영화”로 미국 국립영화 등록부에 등재되었다.

▶ 이 한곡!

존 트래볼타, 올리비아 뉴턴존의 <You’re the One That I Want>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올리비아 뉴턴존의 반전 매력이 듬뿍 담긴 주제곡.

#살짝 미쳐도 좋은 청춘의 삽화

<갓 헬프 더 걸>(2014)

감독 스튜어트 머독 출연 에밀리 브라우닝, 올리 알렉산더, 해나 머리

힙스터 문화의 근거지에서 나온 영화답게 <갓 헬프 더 걸>은 매 장면이 빈티지한 뮤직비디오의 일부 같다. 나름대로 멋을 잔뜩 부린 채 정신병원에서 도망나온 이브(에밀리 브라우닝)가 병원 담벼락에서 대뜸 노래를 시작하는 오프닝부터 어딘가 고약하다. 거식증과 우울로 고통받는 이브는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것으로 내면 재건 작업을 대신하려 하는데, 길에서 만난 두 뮤지션 제임스(올리 알렉산더)와 캐시(해나 머리)가 여기에 합류한다.

<갓 헬프 더 걸>은 스코틀랜드 밴드 벨 앤드 세바스찬의 리더 스튜어트 머독이 오랫동안 뮤지컬영화 제작을 꿈꾼 결과물이다. 스튜어트 머독 감독은 2009년에 발표한 동명의 앨범을 통해 뮤지컬 넘버를 선공개한 뒤, 영화에서 세 배우가 직접 훌륭하게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각적인 취향을 지닌 우울한 마이너들의 여름나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 몽롱한 기분으로 함께 흥얼거리게 된다. 화려한 쇼나 경연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할리우드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이 한곡!

벨 앤드 세바스찬의 <Dress up in You>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Dress up in You>는 비주류들을 향한 연민을 노래한다. 천진난만한 소년의 목소리로 감미로운 포크 팝을 선사하는 벨 앤드 세바스찬의 스타일이 집약돼 있다.

#시원한 화채 같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 파이어 사가 스토리>(2020)

감독 데이비드 돕킨 출연 윌 페럴, 레이첼 맥아담스, 댄 스티븐스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시원해지는 아이슬란드 배경의 음악영화다. 물론 주인공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는 열정적인 도전만큼은 조금 과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뮤지션 지망생 랄스(윌 페럴)와 지그리트(레이첼 맥아담스)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연 대회 ‘유로비전’에 나라를 대표해 출전하게 되면서 우정을 뛰어넘은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

하이라이트는 국가 대항 공연 무대다. 현실과 거리가 먼 과장된 방식으로 코미디를 유발하는데 음악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주제가인 <Husavik>가 놀랍게도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아이슬란드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바 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 배우 윌 페럴이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그 특유의 선 넘는 코미디 묘사가 썰렁할 수도 있는 코미디 음악영화다.

▶ 이 한곡!

몰리 산델, 윌 페럴의 <Husavik>

유튜브 뮤직비디오를 찾아보시길. 현실과 영화의 감동이 뒤섞인 화제의 곡이다.

#아카펠라와 애나 켄드릭의 발견

<피치 퍼펙트>(2012)

감독 제이슨 무어 출연 애나 켄드릭, 브리트니 스노, 리벨 윌슨

동아리 활동에 빠져 지내던 대학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 수 있는 음악영화다. 아카펠라는 록이나 힙합에 비해서 음악만으로 리드미컬한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가진 관객에게 추천한다. 음악영화로서 후반부의 화려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이며,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청춘들의 갈등과 러브스토리가 어우러진다. 미국의 팝 문화, 인종, 젠더와 관련한 농담으로 가득한 코미디영화도 표방하기 때문에 음악과 코미디의 비중이 엇비슷하다. 물론 음악 무대로 코미디를 유발하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 출신 애나 켄드릭의 존재감을 단박에 확인시켜준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이 한곡!

애나 켄드릭의 <Cups>

컵 소리와 손뼉의 조화가 귀에 착착 감기는 감각적인 곡이다.

#이국의 추억

<치코와 리타>(2010)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하비에르 마리스칼 목소리 출연 에마르 조오나, 리마라 메네세스

낭만이 한껏 고조된 1940년대의 재즈 클럽, 땀과 음악이 동시에 흐르는 여름밤의 열기를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치코와 리타>는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가 아름다운 보컬리스트 리타를 만나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는 통속적 서사를 고수하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이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아프리카 전통 리듬을 재즈와 결합한 쿠바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에게 영감 받은 스토리로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콘수엘로 벨라스케스의 <Besame Mucho>, 에스트렐라 모렌테의 <Lily> 등 쿠바, 멕시코, 스페인, 뉴욕을 아우르는 명곡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관능과 충만함에 기꺼이 몸을 내맡기게 되는 영화.

▶ 이 한곡!

<카사블랑카> O.S.T <As Time goes by>

리타가 떠난 뒤 상심한 치코가 꾸는 꿈은 고전영화 <카사블랑카>(1949)와 꼭 닮아 있다. 불후의 러브 스토리와 실연을 겪는 한 남자의 쓸쓸한 정신이 만나 빚어낸 황홀한 몽타주가 이 곡과 함께 요동친다.

#소녀들의 방과 후 음악 활동

<리즈와 파랑새>(2018)

감독 야마다 나오코 목소리 출연 다네자키 아쓰미, 도야마 나오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빛의 오묘한 질감과 클래식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교토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즈와 파랑새>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여성감독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성과 접근으로 방과 후 음악실을 둘러싼 소녀들의 마음 상태를 담아낸다. 교내 관악부 소속인 미조레(다네자키 아쓰미)는 노조미(도야마 나오)를 다른 친구들에게 뺏길까 노심초사하고, 노조미는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숨기는 미조레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실력 차이가 나는 두 친구의 사연과 영화 속 동화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며 친구 사이의 우정과 질투, 화해의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작가 다케다 아야노의 소설 <울려라! 유포니엄 기타우지 고등학교 취주악부, 파란의 두 번째 악장>이 원작이며, 이 영화는 이를 소재로 만든 TV시리즈 <울려라! 유포니엄>의 스핀오프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 <목소리의 형태>(2016)의 각본가, 캐릭터 디자이너, 음악감독 등 주요 스탭들이 참여한 작품으로 남성감독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판에서 뭔가 다른 접근과 시도를 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 이 한곡!

우시오 겐스케의 <Girls, Dance, Staircase>

<목소리의 형태>와 <리즈의 파랑새>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우시오 겐스케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엔딩곡을 소년 소프라노가 불렀으면 좋겠다고 한 아이디어를 듣고 이 엔딩곡을 만들었다.

#치유하는 선율

<크레센도>(2019)

감독 드로 자하비 출연 페터 지모니셰크, 사브리나 아마리, 다니엘 돈스코이, 메흐디 메스카르, 비비아나 베글

목적은 평화 콘서트지만 만나기만 하면 서로 증오를 불태우는 오케스트라단은 무사히 합주를 마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인 반, 팔레스타인인 반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꾸린 지휘자 에두아르트(페터 지모니셰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연습이 아니라 심리 치료임을 합주 첫날에 곧바로 깨닫는다. <크레센도>는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위로, 둥글게 모여 서로에게 응어리를 토해내는 청년들의 치유 과정을 뜨겁게 응시한다. 음악 자체보다 연극 치료에 기반한 테라피 세션의 풍경이 한결 더 흥미로운 영화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실화에서 나온 이야기로, <토니 에드만>의 아버지였던 페터 지모니셰크가 나치 부모로부터 독립해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마에스트로를 연기했다. 아무 데서나 방귀 뀌길 즐기던 해학의 남자, 토니 에드만의 흔적은 먼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장의 자태를 품은 지모니셰크의 아우라가 훌륭하다.

▶ 이 한곡!

요한 파헬벨의 <Canon>

오케스트라에서 각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라일라(사브리나 아마리)와 론(다니엘 돈스코이)은 <Canon> 합주에서부터 삐걱댄다. 라일라는 너무 소극적으로, 론은 너무 공격적으로 해석한 탓인데 론이 이유를 묻자 라일라가 이렇게 답한다. “이미 아름다운 곡인데 뭐하러 힘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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