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최선의 삶' 심달기, 솔직한 욕망을 찾아서
2021-09-01
글 : 송경원
사진 : 오계옥

심달기는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다. 마냥 해맑은가 싶다가도 문득 불안하고 장난기 가득한 것 같은 얼굴에 묘한 긴장이 감돈다. 언어로 포착되지 않은 존재감을 화면에 새기는 건 타고난 에너지에 힘입은 바 크다. 배우 특유의 눈빛과 타고난 몸짓, 육체적인 에너지가 편편한 캐릭터에 부피를 더한다. 심달기 배우를 직접 만나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난 뒤에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최선의 삶>의 아람은 어딘가 겉돌고 붕 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 해맑음이 위태로워 보이는 인물이다. 복잡미묘한 캐릭터에 피와 살을 입히는 건 배우 심달기, 아니 자연인 심달기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달기는 확신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되돌아본다. 배우 심달기는 자기 안의 어둠을 응시하고 하나씩 풀어내며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관객과 만난 후 세 배우가 오랜만에 뭉쳤다.

=우리 영화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게 신기하다. ‘강소아’ (강이-소영-아람)가 영화와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화보를 찍는 것 자체로 행복한 부분이 있다. 촬영이 끝나면 흩어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뭉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고 고맙다. 촬영 때도 셋 다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짧은 시간에 쉽게 가까워졌고, 오랜만에 다시 봐도 여전히 그대로라 기분이 좋다.

-아람 역이 개인적으로도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들었다.

=2018년경에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읽자마자 든 생각은 아람이란 인물이 어렵다는 거였다. 강이와 소영은 정말 끝까지 가보는 상황들이 나오는데, 아람은 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이건 아마도 당시 내 상황 때문이었기도 했다. 크고 작은 기회가 한꺼번에 찾아와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아람을 통해 나의 10대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아람은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를테면 무릎의 연골 같은 사람이다. 강소아가 뭉칠 수 있는 것도 아람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영화에서 아람의 모든 사연을 다 설명하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기도 하다. 아람이 처한 환경이나 폭력적인 상황들이 영화에 직접 드러나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하다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체화해서 느껴지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찍는 내내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람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겪은 아픔, 폭력 속에서 침묵하고 생존해야 하는 시간을 감히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그걸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이런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었다. 그걸 벗어나는 것도 죄송스러워서, 아람을 생각하면 계속 아파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다가갔기에 캐릭터에 부피가 확실히 느껴졌다.

=감사한 얘기이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아람의 행동들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봤다. 어쩌면 아람은 스스로의 아픔을 감각하지 못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다른 물건이나 동물 등을 통해 고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동만 놓고 보면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다. 자신의 아픔을 망각하기 위해 또 다른 연약한 존재를 연민하는 거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자기를 사랑할 줄은 모른다. 아람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거기서 가능하다면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게 아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또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매체이다 보니 그런 부분의 표현에서 괴리감이 있었다.

-보여주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당 부분은 또 배우의 몫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보면 그런 뉘앙스를 늘 품고 있었다.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묘한 분위기랄까, 말하지 않아서 더 뚜렷해지는 기운이랄까. 해맑은데 위태롭고, 과격한데 장난기 넘치는 인물들이다. 아니, 심달기라는 배우가 맡아서 그런 인물로 바뀌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기능적으로 그런 인물이 더 도드라지니까 눈에 띄는 걸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그런 모순적이고 복잡한 부분이 있다. 역할을 맡으면 인물이 가지고 있는 솔직한 욕망을 찾는 게 제일 재미있다. 성격상 마냥 선한 동기는 없다고 본다. 인물, 이야기, 상황에 대한 의심이 늘 있다. 납득이 안되면 연기하기 힘들고,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여러 생각을 해보는 과정이 즐겁다. 본능적으로 찾아지는 인물도 있고, 그 과정이 쉽지 않은 인물도 있는데 그럴 때 주변 동료나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다. 괴로움을 동반한 즐거움이랄까. 즐거운 고통이랄까. (웃음)

-지금 연출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은 배우 중 한명일 텐데.

=그렇지 않다. 그럴 리 없다. 그랬으면 좋겠다. (웃음) 요즘 촬영이 연달아 있어서 육체적으로 힘들다. 가장 행복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거다. 이 피로함에 감사한다. 쓴소리에 귀를 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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