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준희 감독,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밝힌 'D.P.' 영상화 뒷이야기
2021-09-08
글 : 이주현
아직도 어디선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김보통 작가가 2015년부터 연재했던 만화 <D.P. 개의 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완성돼 지난 8월 27일 공개됐다.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D.P.였던 김보통 작가의 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주인공 안준호는 탈영병을 쫓을수록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안준호의 시선은 자주 탈영병의 괴로움과 외로움에 가닿는다.

<뺑반>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이 연출을 맡은 6부작 시리즈 <D.P.> 역시 원작의 문제의식과 정서를 흡수한다. 군내 가혹행위와 그것을 알고도 묵인한 방관자들에 대한 일갈은 묵직하지만 <D.P.>는 대중 시리즈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탈영병을 쫓는 D.P.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 등 생생한 캐릭터들, 그들의 사연을 세심하게 엮은 각본, 캐릭터의 삶 속에 풍덩 빠져 인생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심지어 단역들마저), 중심을 잃지 않는 탄탄한 연출까지, 원작과는 다른 차원의 매력을 선보인다. <D.P.>의 각본은 한준희 감독과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함께 썼다. 두 사람은 마치 안준호와 한호열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완벽한 호흡으로 <D.P.>의 작업 과정을 들려줬다. 진지한 한준희 감독과 유쾌한 김보통 작가를 화상으로 만났다.

한준희 감독. 사진제공 넷플릭스
김보통 작가. (김보통 작가는 대외 활동 시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이번에도 탈을 쓰고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원작 만화 <D.P. 개의 날>은 연재 초기부터 영상화 제안이 많았던 작품이다.

김보통 <한겨레>에 2회차 연재했을 때 영화사 4곳에서 제안이 왔다. 영상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 나가기 위해 이렇게 때를 기다렸나 싶다.

-원작은 형사물, 추리물의 구조를 취하고 있어 장르적으로 활용할 요소도 많고, 동시에 군대라는 조직에서 어떻게든 2년을 살아야 하는 개개인의 사연이 담겨 있어 드라마적 요소도 풍부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상화에 욕심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감독 입장에선 어떤 매력이 있는 원작이었나.

한준희 작가님이 원작에서 보여준 결기,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그 결기가 좋았다. 연출자든 작가든 그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작가님도 나이를 더 먹으면 이런 날 서 있는 이야기를 날 서 있는 상태로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작가님이 던지는 명징한 메시지가 있다. 당신이 보지 않았다고 (군내 가혹행위가) 없었던 일이 아니라고. 그냥 넘어가는 건 방관일 뿐이라고. 대중만화인데도 날 선 시선으로 무언가를 찌르듯이 얘기하는 점이 좋았다. 앞서 얘기하신 것처럼 다양한 장르적 재미도 담겨 있지만, 확고하고 고집 있는 메시지가 6개의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고 본다.

김보통 영상화 제안이 왔을 때 제작사 대표들에게 주로 들은 얘기는 이런 거였다. 군대 이야기를 하면 배우들이 머리를 깎아야 하고, 계속 군대만 나오면 사람들이 지루해한다. 그런데 <D.P.>는 일단 배우들이 머리를 안 깎아도 되고, 물론 정해인 배우는 머리를 깎았지만, 군인이 사복을 입고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야기가 덜 단조롭다는 거였다. 형사물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탈영병을 잡으러 간다는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 색다른 지점이 생긴다고 하더라.

-김보통 작가가 만화 연재를 시작한 게 2015년이니 군대 제대하고 1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한 거다. 그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나.

김보통 아마 지금 시점이었으면 <D.P. 개의 날>을 못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내 마음의 변화라기보다, 지금은 탈영 사건도 줄고 자살도 줄고 핸드폰도 지급돼서, 말하자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가 돼버린다. <D.P. 개의 날>을 구상하고 그리던 시점인 2014년엔 강원도 전방 부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도 일어났다. 군내 여러 가혹행위들이 불거졌다. 감독님이나 내가 군 생활한 시절은 훨씬 야만적이었고, 2014년은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던 과도기였다. <D.P. 개의 날>은 그런 과도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배경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시리즈에서 안준호가 입대하는 시기도 2014년으로 그려진다.

한준희 작가님이 얘기한 것처럼 2014년은 총기 난사 사건과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시기였고, 그래봤자 6~7년밖에 안된 과거이기도 하다. 그 시기를 비추는 게 우리에겐 중요했다.

김보통 중요한 건 2021년 현재에도 군내 인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거다. 최근까지도 불미스런 사건들이 있지 않나. 만화를 연재하던 당시 ‘요즘 군대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이런 일들이 있냐’는 반응이 있었다. 언제 적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냐고. 그런데 그 변화가 미미한 것은 아닌가 싶다. 더 좋아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다시 상기했으면 싶었다. 아직도 어디선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준희 감독은 <차이나타운> 때는 사채업자, <뺑반> 때는 뺑소니 전담반 소속 경찰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꼈다고 했는데, <D.P.> 때도 군무 이탈 체포조라는 특수한 군인 신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동했나.

한준희 첫 영화와 두 번째 영화 모두 직업윤리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D.P.>도 나는 윤리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군인이자 D.P.인 사람들.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인이 된 청춘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 윤리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했다.

김보통 군대 있을 때 탈영병을 체포하고 부대에 돌아오면 부대원들이 나를 앉혀놓고 어떻게 탈영병을 잡았는지 물어봤다. 체포 과정을 들려주면 다들 너무 재밌어 했다. 사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는 재미있는 공간일 수가 없다. 그런데 군인들도 재밌어 하는 군인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웃음) 물론 탈영은 오락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징병제에 의해 군대에 온 사람들이다. 누구는 탈영을 했고, 누구는 그들을 잡고, 누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좋아한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과 정서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각본은 한준희 감독과 김보통 작가가 함께 썼다. 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김보통 영상 각본에도 참여하게 된 건 참여하겠냐고 물어보셔서. 각본료 주시냐 했더니 준다고 해서 참여했다. (웃음) 작업 과정은 내가 초안 잡고 초고 쓰고 감독님이 각색하고, 다시 수정하고 주고받고의 연속이었다. 내가 어둡게 쓰면 감독님이 밝게 고쳐주시고.

한준희 작가님이 갖고 있는 디테일과 결을 살리면서 영상화에 어울리도록 만졌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리즈가 되도록 밝게 수정한 부분이 있는데, 작가님이 많이 이해하고 존중해주셨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고, 그 점에서 얘기가 잘 통했다.

김보통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과 추격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셔서. (웃음) 만약 나 혼자 그리는 만화라면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이건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거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찍을 감독님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원작은 상병 안준호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시리즈는 이병 안준호가 D.P.로 선택되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보여준다. 또 원작에선 후임인 박성준 일병과 짝을 이뤘는데, 이번엔 고참인 한호열 상병과 짝을 이룬다.

김보통 영상화할 때 원작의 타임라인을 그대로 가져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프리퀄로, 이등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안준호란 캐릭터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할 수 있고. 자연스레 헌병대에 입대해 폭력의 피해자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한호열은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캐릭터다. 내가 처음 쓴 버전에선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 많았는데 여기에 액티브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해서 한호열이 탄생했다.

한준희 원작에 있던 안준호의 양가적인 모습을 두명의 캐릭터로 발현시킨 것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안준호가 보여준 선임으로서의 결과 그가 가진 고집, 꼿꼿함, 정의로움을 호열과 준호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둘이서 충분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고, 지금과 같은 준호의 성장 서사가 만들어졌다. 호열은 김보통 작가님을 보면서 따온 면이 많다.

김보통 각본 쓸 당시 각본 얘기보다 군 생활 얘기를 더 많이 했다. 군대에서 D.P. 할 때 난 안준호처럼 하지 않았다. 우당탕탕 우스꽝스럽게 활동했다고 했더니 거기서 감독님이 모티브를 얻은 것 같다.

-<차이나타운> <뺑반>을 봐도 그렇고 배우들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길 즐긴다.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에게선 어떤 모습을 끌어내고 싶었나.

한준희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보여준 모습이 참 좋았다. 영화에서 보여준 우직함, 투박함이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에 자연인 정해인과 가장 비슷한 역할이 안준호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남자다운 면도 있고, 형이자 동생의 느낌도 있고. 캐스팅은 직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저 배우가 이거 하면 되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싶은. 정해인 배우도 대본 받고서 본인이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데, 그럴 때 연출자로서의 쾌감이 있는 것 같다. 배우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제안하는 게 연출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구교환은 불규칙 바운드의 연기를 하는 배우고 정해인은 안정적이고 반듯한 연기를 하는 배우인데, 둘의 조합을 어떻게 떠올렸나.

한준희 구교환 배우는 알고 지낸 지 7~8년쯤 됐고, 언젠가 꼭 같이 작품 하고 싶은 배우였다. 멋있고 예리한 신스틸러로서만이 아니라 본인이 극을 리드해갈 수 있는 훌륭한 배우이고, 그의 첫 주연작은 내가 연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차이나타운> 때도 김혜수, 김고은 두 배우의 연기 스타일은 서로 달랐다. 마찬가지로 정해인과 구교환 배우도 호흡이나 발성이나 해왔던 연기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 그것이 충돌할 때의 재미가 있다. 중요한 건 그 충돌을 배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로의 연기에 호감을 느끼는가인 것 같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정해인, 구교환 두 배우가 급격히 친해졌다. 서로 다른 종류의 길을 걸었고 다른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았지만 금방 친해졌다.

김보통 개인적으로는 손석구, 김성균 배우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6~7년 동안 혼자서 가상 캐스팅할 때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나는 박범구 역에 누굴 캐스팅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머릿속으로 손석구, 김성균 두 배우를 놓고 ‘와 박빙이다, 박빙. 둘 중 누굴 캐스팅하지?’ 했는데, 감독님이 박범구 역할을 둘로 쪼개서 임지섭이란 인물을 새로 만들어 박범구에 김성균, 임지섭에 손석구를 캐스팅한 거다. 소름 돋았다. (웃음)

-한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군 입대날의 모습까지 빈티지 필름처럼 담은 오프닝 타이틀이 인상적이었다. 대한민국 군대 이야기를 하면서 영어 가사의 노래를 오프닝 음악으로 쓴 것도 신선했고. 어떤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고 오프닝 타이틀을 만들었나.

한준희 우선 이 작품의 인장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박민선 편집기사님이 아이디어를 주셨다. 어린아이 때의 모습부터 훈련소 들어가는 모습까지 필름롤로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정진수 감독님이 오프닝 타이틀을 만들었다. 음악은 <사냥의 시간>을 보고 너무 좋아서 당장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했던 프라이머리 음악감독님이 맡았는데, 케빈 오가 부른 오프닝 음악도 마지막까지 고쳐가며 만들었다.

김보통 전세계의 시청자들과 한국 예비역들이 오프닝 타이틀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다를 거라 생각한다. 아이가 커서 담배를 배우고 연애를 하고 입대해서 훈련소에 들어가는 그 장면 나올 때, 입대할 때의 불쾌한 감정들이 끓어오르면서 ‘와, 여기서 끝났다!’ 싶더라. (웃음)

-<D.P.> 시즌2 계획은 어떻게 되나.

한준희 나와 작가님, 배우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전원일기>처럼 하자고 그런다. (웃음)

김보통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하사, 중사, 상사, 원사…. 가능할 때까지 계속! 우리의 의지는 충만하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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