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요즘 다들 연애 예능 보더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세계
2021-09-13
글 : 임수연
<나는 SOLO>

보현호민이냐, 보현민재냐. 지금 가장 뜨거운 삼각관계 서사는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별한 커플들이 한집에 모여 자신의 ‘X’와 새로운 인연을 포함한 이들과 자유롭게 데이트를 한다는 설정은 익숙함과 새로움, 서운함과 고마움, 경쟁심과 호기심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의 좌표를 고민하는 일종의 시험대가 됐다. 2기에 접어든 <나는 SOLO>는 녹화 두달 만에 (최종 선택에서 연결되지도 않은)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고 또 다른 커플 역시 결혼을 앞두고 있다.

<환승연애>

<체인지 데이즈>는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들이 한집에 모여 살며 각자의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다른 이의 파트너와 데이트를 해본다는 파격적인 컨셉을 내놓았다. <돌싱글즈>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이 만나 미숙했던 과거를 갈무리하고 ‘결혼 2회차’에 도전한다. <투 핫!>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테라스 하우스> 등 다양한 해외 데이팅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던 넷플릭스는 JTBC 예능국과 손을 잡았다. 애당초 JTBC 사내 기획안 공모전에 나왔던 아이템을 “채널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열려 있는 OTT로 가는 게 좋겠다”(김수아 CP)는 내부 의견으로 넷플릭스로 방향을 틀게 된 <솔로지옥>(연출 김재원·김나현)은 최근 무인도에서 솔로 남녀 10명과 촬영을 마쳤다.

급증한 프로그램들, 저마다의 전략 갖춰

<돌싱글즈>

약속한 듯 비슷한 시기에 몰려나온 데이팅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이들이 한철 유행에 탑승한 고민 없는 복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의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시절부터 검증된 포맷이라는 점을 다들 암묵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케이블·종편 채널과 OTT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기획도 덩달아 다양해졌다. 플랫폼의 증가는 과감한 혹은 특정층의 니즈에 집중한 시도를 가능케 하는 발판이 되고, ‘연애’는 어떤 소재보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환승연애>는 “TV로 방영하면 소재를 너무 자극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어서 유료 결제를 전제로 좀더 애정을 갖고 방송을 볼만한 시청자들이 있는 티빙을 선택”(이진주 PD)한 경우다. OTT로 가니 러닝타임도 자유롭다. “TV프로그램은 앞뒤로 프로그램이 있으니 아무리 길게 해도 90분 안쪽으로 끊어야 한다. 방송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 정하는 엔딩 지점이 있다. 그런데 <삼시세끼>나 <여름방학>은 예를 들어 저녁 먹는 부분을 엔딩으로 잡고 편집하면 120분, 150분이 나오는 거다. 그래서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편집하느라 우리가 내고 싶은 메시지를 못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티빙에서는 이런 제한이 없어서 자유롭다.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시청하는데, 그렇게 능동적으로 내용을 재조립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체인지 데이즈>의 이재석 PD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상파라면 못했을 것 같다”라며 숏폼 플랫폼이 새로운 기획의 발판이 됐음을 설명했다. “디지털 콘텐츠기 때문에 수위가 더 센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카카오TV 사내 분위기가 소재나 주제에 대해 많이 열려 있는 편이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올드 미디어가 된 TV에서는 채널 타깃층에 맞게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아예 이 장르의 정통을 파고드는 방송들이 있다.

<돌싱글즈>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는 “결혼을 전제로 짝을 찾을 때 가장 진실된 것이 나온다”라는 생각으로 <나는 SOLO>를 만들고 있다. 홍보 목적의 인플루언서도 가급적 캐스팅하지 않고 기획에 맞는 사람들만 모이면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식이라 시즌제를 택하는 여타 방송들과 달리 1기에서 2기, 2기에서 3기로 회차가 바로 이어지고 있다. “진짜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동지애, 유대감 같은 게 생긴다. 다들 나이도 꽉 차서 마음만 맞으면 빠른 결혼도 가능하다. 아마 (과거 <짝>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기수끼리 만나 결혼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주 시청 연령대가 높은 MBN의 <돌싱글즈>는 이혼과 결혼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돌싱들을 미팅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연애를 5~7년 하고도 몰랐던 부분을 결혼 첫날부터 바로 알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같이 살아보는 과정까지 넣어야 새로운 사람을 찾는 데 좀더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박선혜 PD) 때문에 <돌싱글즈>는 남녀가 한달씩 동거한 후 마음을 결정하는 데이팅 프로그램과 달리 3박4일 만에 최종 선택을 한 후, ‘동거’ 스토리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넷플릭스 <솔로지옥>의 김재원 PD는 “어떤 특징들을 가진 요즘 데이팅 프로그램들이 변화구를 던지는 것이라면, 우리 방송은 물론 그 안에 명확한 컨셉은 있지만 돌직구처럼 묵직하게 정통 데이팅프로그램을 지향한다. 그 안에서 감정이 굉장히 깊어진다. 원초적인 느낌의 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프로그램의 방향을 소개했다.

<체인지 데이즈>

방송의 색깔에 따라 그들이 보여주는 비주얼도 판이하다. 동거형 데이팅 프로그램 열풍의 시작을 연 <하트시그널> 계보의 방송들은 출연자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화면을 보정하고, 방송 이후 SNS에서 입소문을 탈 법한 근사한 데이트 장소 섭외에 공을 들인다. <체인지 데이즈>의 이재석 PD는 “출연자들 눈에 스탭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커플당 카메라를 3~4대 정도만 운용하고, 멀리서 찍었다. 대신 며칠 전부터 데이트 장소를 여러 번 답사하며 거의 콘티를 짜듯 그림을 체크하고 동선을 짰다”라며 그들이 어떤 요소에 공을 들였는지 설명했다.

반면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촬영한 <나는 SOLO>는 출연자들이 만난 첫날 밤부터 소주를 종이컵 가득 따르고 주량 이상을 마셔 곤란을 겪는 남자도 있으며 초면에 노래방까지 함께하는 등 평범한 사회인 동호회를 방불케 하는 꾸밈없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을 너무 뽀샤시하고 아름답게 가공하는 것은 우리 제작팀 스타일하고는 맞지 않는다. 얼마나 사실적으로 담아내느냐가 중요했다”는 남규홍 PD의 스타일은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짝>에서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체인지 데이즈>

각자 방송이 자기 갈 길을 확고히 하면서, 데이팅 프로그램은 ‘연애’란 거시적 주제하에 파생되는 다양한 각론이 됐다. 이는 단지 연애가 시작될 때 설렘에 국한되지 않고 이성과 충돌하는 연애와 결혼의 본질을 묻고 심지어 왜 연애를 포기하게 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방송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부 4B(비연애·비섹스·비결혼·비출산) 세대의 공감까지 사고 있다. <환승연애>는 딱히 X에게 마음이 남아서가 아니라 X가 다른 출연자를 관심에 둘 때 느끼는 배신감과 공허함을 조명하고, <돌싱글즈>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출연자간 호감의 화살표가 완전히 바뀐다든지 아무리 호감이었어도 한집에 살다보면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주된 사건으로 등장시킨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잔재하는 편견도 들여다보게 한다.

박선혜 PD는 “미팅하면서 20~30대 돌싱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다. 돌싱 커뮤니티가 40~50대 위주로 형성되기 때문에 여기서도 저기서도 연애를 하지 못한다고, 이 시기를 지나 40대가 돼야 연애를 할 수 있다더라”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연애를 시작할 때 두근두근한 느낌보다는 그 이후를 담고 싶었다”(이재석 PD)는 <체인지 데이즈>는 실제 커플들이 출연해 이미 곪아버린 관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다 결국 전부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해서 연애란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까지 연료 삼아 유지되는 것이 아닌지 넌지시 질문한다. <나는 SOLO>는 방송 중에는 술버릇이 좋지 않은 영철을 신뢰하지 않아 결국 선택을 포기한 영숙이 녹화 종료 후 두달 만에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이 알려질 때, 어떤 남자도 선택하지 않는 대신 마음 맞는 강아지를 입양한 정자의 행복한 얼굴이 나올 때 정말 흥미진진해지는 방송이다.

경쟁심, 질투, 권력 다툼, 그리고 사랑

<환승연애>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는 결국 인간이란 종족의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포맷이 비슷해도 그 안의 캐릭터들이 다르고 그들이 만드는 스토리가 다르기 때문에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다”는 <솔로지옥> 김나현 PD의 말은 이 포맷의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여준다. 시대가 바뀌면 출연자들의 생각도 바뀌고 그들은 이전 방송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갈등을 겪게 된다.

<체인지 데이즈>의 이재석 PD는 “요즘은 초등학생도 연애를 한다고 하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노인정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분들이 있다. 평생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라서 너무나도 폭넓은 시청자층을 갖고 있다”라며 이 포맷이 나이대와 성향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며 시장성을 확장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둘 이상의 인간이 모였을 때 가능한 관계망을 고찰하는 일종의 실험실이자 그에 대한 광범위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킬링타임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나는 SOLO>

<환승연애>의 이진주 PD는 “연애 리얼리티 방송에는 단순히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경쟁심이나 질투, 권력 다툼도 있다. 연애를 소재로 어떤 환경에 놓여진 사람을 관찰하는 심리 실험 같은 성격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연애를 구경하기 위해 시청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의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홍상수 영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술과 섹스 앞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홍상수의 작품처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각자 개성을 세분화할수록 이들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간에 거의 연애라는 공통분모를 경유한 인류학적 보고서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창작자와 시청자가 목격하고픈 은밀한 욕망이 구체화될수록 이 장르는 미시적인 인간 심리를 파고들며 보편적인 공감과 반발을 발동하는 미치도록 재밌고 동시에 논쟁적인 포맷이 된다. 다양한 플랫폼의 성장과 더불어 날개를 단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이 어떤 의미에서든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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