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콘택트]
사진작가 박찬욱, 세계와 눈을 맞추다
2021-09-27
글 : 김혜리
사진 : 최성열
[김혜리의 콘택트]

* 본 기사는 <첫 개인전 '너의 표정' 여는 사진작가 박찬욱> 에서 이어집니다.

하찮고 숭고한

-그러면 어떤 사진들을 첫 개인전에 모았다고 소개할 수 있을까.

=배우, 인물 사진은 없고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연작이 있는데 그것도 제외했다. 절에 다니기를 좋아해서 사찰 사진도 많고 나무 사진도 찍고 있는데 그 작품들은 모두 이번 전시에서 제외했다. <아가씨 가까이>에 이미 수록된 작품도 뺐다. 이번 전시회와 사진집의 사진은 주로 풍경과 정물인데, 풍경이 정물 같고 정물이 풍경 같은 그런 유의 사진이고 그렇게까지 아름다운 절경이랄까 그런 건 없다.

-관습적으로 우리가 아름답다고 치는 대상을 찍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런 것은 나보다 잘 찍는 분들이 최고의 장비로 찍는다. 아마추어들도 절묘한 타이밍에 포착한 이미지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그런 기대를 갖고 오시는 관객은 실망할 거다. 뭘 이런 걸 다 찍었을까, 이 따위를, 왜 이렇게 하찮은 것을 찍었을까, 의아해할 만한 풍경과 사물들의 사진인데 그것이 어떤 날씨와 계절, 하루 중 시간대, 태양광 상태와 구름에 따라 거기에 더해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에 따라 절묘하게 특별함을 드러낸다. 단 1cm 차이라도 어떤 높이에서 어떤 초점 거리의 렌즈를 썼느냐, 나와 피사체 사이 거리가 얼마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피사체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중요한 것은 영화와 유사한가보다.

=그것이 적당하지 않으면 뭔가가 흩어진다. 때로는 우연히 맞닥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기다렸다가 포착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나를 놀라게 하는 것들이 있다. 사는 동네를 산책해도 매일 다니는 길에 어제 못 본 사물이 있고 5년 동안 보아온 똑같은 장소에서 낯선 풍경과 마주치기도 한다. 하필 그 순간에 내가 거기 있었고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큰 사건으로 느껴지고 남에게 함께 음미하자고 제안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05. 2013┃Digital C print Ⓒ박찬욱/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그것이 과연 어떤 찰나인지 설명에 한계가 있으니 몇점의 전시 작품을 보면서 촬영 당시의 정황과 매료된 포인트를 이야기했으면 한다. 첫 번째 사진은 <Face 3>(도판05)다. 용설란과 빨간 자동차를 찍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찍었다. 무엇보다 색깔의 대비에 끌렸고 브라질다운 공기를 담은 이미지다.

01. 2020┃Archival pigment print Ⓒ박찬욱/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두 피사체가 다른 차의 헤드라이트나 가로등 빛에 들켜서 함께 놀라는 것 같다. 이런 작품을 보면 스토리텔링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의 신바람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게 내가 사진을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플래시를 터뜨린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플래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보색 대비가 굉장히 강렬하고 원초적인 사진이다. <Face 127>(도판01)은 동네를 산책하다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아시는 분은 트럭 위의 하얀 방수포를 인위적으로 더 밝게 작업했을 거라고 짐작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자연광이 만든 순간이다. 유관으로 볼 때에도 빛을 발하는 느낌이 있어서 찍었다. 그게 아니라면 뭐 하러 찍었겠나.

-사진집 <너의 표정>의 조판을 미리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작품과 나란히 편집될 사진은 외국의 어느 묘지에 있는 조각상의 뒷모습을 찍은 작품이다. 우연하게도 방수포 더미와 조각의 부피나 밝기가 조각의 그것과 비슷해서 인간이 의도를 갖고 만든 예술품과 그냥 버려진 폐기물이 닮아 보인다.

=전시회에서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진 대형 프린트를 볼 때만큼의 감흥을 사진집에서 받기는 어려운 반면, 그런 편집의 재미가 있다. 묘지 조각은 밀라노에서, 방수포는 파주에서 찍었다. 그런 병치 편집은 보는 이에게 특정한 의미를 강요하는 것으로 읽힐까봐 조심하는데도 흥미롭다고 여겨 나란히 배치했다. 나는 파주의 방수포 사진이 좀더 좋다. 쓰레기나 다름없는 물건인데 신의 솜씨로 깎아놓은 고대 조각의 주름처럼 보인다. 하찮은 물건이 숭고한 대상처럼 보여 좋아한다.

04. 2013┃Backlit film, LED lightbox Ⓒ박찬욱/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다음 작품인 <Face 16>(도판04)은 무척 재밌다. 이번 전시 제목이 <너의 표정>인데 이 작품은 정말 유령들의 가족사진 같기도 하고 KKK단의 으스스한 집회 같기도 하다. 우리에겐 사물에게서도 이목구비를 찾는 본능이 있지 않나. 어떤 관점에 입각해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인식되는 게슈탈트 전환 현상도 있고.

=나도 그랬다. 피사체는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수영장에 접어서 모아놓은 파라솔들로 해가 뜨고 손님들이 나오면 모두 흩어져 펼쳐지는 물건이다. 무시무시한 인상도 있었고, <고스트 스토리>나 <캐스퍼> 같은 영화도 떠올랐다. 이국의 원주민들이 환영하러 나온 풍경 같기도 하고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도 연상되고, 어쨌거나 불가피하게 사람 형상이 떠오른다. 아래쪽 기둥 부분은 인위적으로 조금 어둡게 만들어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조금 더했다.

-흑백을 선택할 때는 직관적으로 판단하는지.

=물론 디지털카메라라 찍고 나서 흑백으로 변환해도 손색없는 사진이 나오긴 하는데 필름 카메라를 쓰던 버릇 때문인지 인위적으로 흑백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퀄리티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흑백으로 찍어야 할 때는 항상 휴대하는 흑백 전용 카메라를 쓴다. 카메라 두대를 가지고 다녀야 하니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 확신이 안 들 때에는 컬러로 찍고 흑백으로도 찍는다. 대개는 한쪽을 선택하는데 그 기준을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

-판단의 이유를 나중에 깨닫기도 할 것 같다.

=맞다. 계조라고 하는데, 완전한 하양과 완전한 까망 사이 무한한 회색의 단계들을 표현해야 할 때 흑백으로 찍는다. 색이 없으니 형태가 돋보이기도 하고 추상화의 효과도 나온다. 흑백 계조만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잘 만든 흑백 사진은 어떤 컬러보다도 볼 것이 많을 수 있다.

03. 2013┃Archival pigment print Ⓒ박찬욱/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소파 사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 <Washington, D.C.>(도판03)라는 제목이다.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에 워싱턴 D.C.의 한 뮤지엄에서 행사가 있었다. 너무 피곤한 상태로 대기실에 있는데 저 소파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휴식처 같았는데 앉는 순간 못 일어날 게 뻔해 대신 카메라를 꺼냈다. 오래 묵은 소파라 사람 몸이 닿은 정도에 따라 천의 질감과 색, 결이 다른 것이 매력이었다.

-소파의 배경도 비슷한 톤이라 텍스처가 더 잘 보인다. 정황을 모르고 봤을 때는 그냥 소파를 마치 인물 포트레이트처럼 찍었다는 인상이었다. 굳이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이런 것이 사물의 표정이구나 싶었다.

=여기에 사람 얼굴을 연상시키는 형태는 전혀 없지만,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를 환대하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는 내가 고양이 사진을 빠뜨릴 수는 없으니 <Face 89>(도판02)를 보자. (웃음) 역시 파주에서 찍었던 것 같다.

02. 2012┃Archival pigment print Ⓒ박찬욱/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고양이가 포함된 사진을 찍을 때는 아무래도 다른 사진을 찍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작동하지 않나.

=많은 사진가들이 고양이나 강아지를 좋아하고 그런 취향을 감추지 않는다. 이번 사진집에도 고양이 사진이 몇장 있는데 그중 이 사진을 제일 좋아한다. 고양이가 어디가 머리고 꼬리인지 구별이 안되고 눈송이처럼 한 덩이로 보인다. 이 사진이 흑백이 아니라 컬러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언뜻 보면 배경에도 색이 없어서 흑백이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기 쉽지만 흑백으로 찍으면 역설적으로 이 고양이의 ‘하양성’이 사라지고 만다. 화이트니스를 드러내려면 컬러 사진이어야 하는 거다. 믿기지 않는 유연성과 고양이 특유의 무엇에도 상관하지 않는 성격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열여덟개의 주머니를 가진 남자

-연출이 개입하는 메이킹 포토나 두장 이상으로 구성하는 연속 사진, 콜라주에는 관심이 없나.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면 연출하고 조명을 세팅해 만드는 사진에는 별 흥미를 못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못 찍는 상태로 몇년 살게 된다면 사진에서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겠다.

-영화 이야기로 넘어간 차에 감독으로서의 작업에 대해서도 간단히 듣고 싶다. 2019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차기작에 대해 드라이한 성격의 형사 이야기라고, 한국영화의 많은 형사들과 달리 거칠지 않고 차근차근 수사 루틴을 진행하는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정도의 단서를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 이야기라고 첨언했다.

=드라이하다는 표현은 전혀 맞지 않는다. 박해일 배우가 연기하는 형사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청결한 사람이다. 항상 물티슈를 휴대하고 상의에만 12개, 바지에 6개 주머니가 있다.

-의상팀의 반응이 사뭇 궁금해진다.

=새로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그 주머니들에 티슈, 핸드크림, 립밤 등 다 들어 있다. 언제 뛰어야 할지 모르니 운동화를 신되 구두처럼 보이는 검은 운동화를 신는, 그런 사람이다. 절대 욕을 입에 담지 않고 거칠게 굴지 않는다. 이 형사가 사망 경위가 불명한 남자의 변사사건을 맡으면서 죽은 사람의 아내(탕웨이)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극중에서도 한국어가 유창한 중국계 여성이다. 그러면서 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심과 관심, 후회, 뭐 이런 것들을 다룬다. ‘헤어질 결심’이라고 하면 결심을 한다고 하지만 헤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런 것에 대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계속 보게 되는 영화다.

-평소 스웨덴의 범죄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애독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 작품과 어떤 연관성은 없을까.

=박해일이 연기하는 형사의 책상에 그 책이 있다. 무리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천재적 영감과는 무관하며 반복되는 절차를 중시한다는 면이 마르틴 베크와 닮은 부분이다.

-<HBO> 시리즈 <동조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프로듀서 겸 배우로 참여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비엣 타인 응우옌 교수가 쓴 동명의 책이 원작인데, 베트남전 직후 미국과 베트남의 이중첩자로 살다가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는 남자 이야기라고 들었다.

=한국판은 두권인데 7부작이라 이야기를 많이 가지 칠 필요는 없다. 시리즈물의 장점이다.

-첩보 모티브가 있는 작품이라면 존 르 카레 원작의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했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 많은 제안도 받았던 걸로 안다. <동조자>의 경우 첩보물의 일반적 속성 외에 어떤 요소가 마음을 끌었는지.

=<동조자>는 스파이 스릴러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르 카레의 작품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장르적이진 않다. 그보다 아시아인의 전통과 미국이 대표하는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빚는 충돌도 주요한 주제다. 이야기의 품이 장르를 넘어선다. 아시아인으로서 내가 가져온 문제의식이 투영될 것 같다. 베트남은 제국주의 열강이 그들의 땅에서 각축을 벌이다 내전이 발생한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겹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권이 승리한 다음 벌어진 허망한 결과와 그 많은 청년들이 이런 현실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졌는가, 라는 질문도 원작에 대두된다.

-<동조자>의 제작사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A24다. 이 영화사와 작품을 한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요르고스 란티모스(<킬링 디어>), 아리 애스터(<유전> <미드소마>), 로버트 에거스(<더 위치> <라이트하우스>), 사프디 형제(<언컷 젬스>) 등이 있다. 지나치게 주소를 제대로 찾아가신 것 같다. (웃음) 일하는 방식도 제작 작품만큼 개성이 있나.

=아무래도 TV시리즈니까 아리 애스터 감독처럼 미친 듯한 작품은 아닐 것 같다. (웃음) 훨씬 얌전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일 것이다. A24와는 서로 호감이 있고 언젠가 함께해보자는 관심이 있어서 무엇이든 기획이 하나 있을 때 관계를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서부극을 구상한 걸로 안다. 그런데 근년 들어 웨스턴 장르가 다양한 얼굴로 귀환하고 있다. <미나리> <노매드랜드>, 브라질 웨스턴인 <바쿠라우>가 있었고 <퍼스트 카우>는 웨스턴은 아니라도 미국 개척시대가 배경이다. 또 이 영화들이 감독 다수가 미국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재미있다. 이 영화들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하다.

=내가 준비하는 작품은 정말 글자 그대로의 서부극이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서 상관은 없다. 언젠가 만들어지겠거니 한다. 양조장에서 오크통마다 연도가 다른 위스키들이 숙성되어가듯 길게 다듬을수록 좋아지는 면도 있겠거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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