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콘택트]
첫 개인전 '너의 표정' 여는 사진작가 박찬욱
2021-09-27
글 : 김혜리
사진 : 최성열
[김혜리의 콘택트]

최초의 영화는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그로부터 1과 4분의 1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이미지의 멈춤이 도리어 사건이다. 더구나 디지털 매체와 재생장치로 영화를 정지시키기가 쉬워지면서, 포토그래피의 정지성을 통해 시네마의 속성을 생각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아날로그, 디지털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사진은 진지한 취미 이상이었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훈련이자 이미지로 대안적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한통속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크리스 마르케처럼 사진을 재료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영화 세계를 농축한 폴라로이드를 남긴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있다. 10대들의 서브컬처를 사진 찍다 <키즈>를 만든 래리 클락도, 한장의 사진을 내러티브의 씨앗으로 쓴 빔 벤더스도 모두 사진과 선을 긋지 않았던 감독들이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즈음부터 영화를 찍지 않는 시간은 있을지언정 카메라와 떨어져 지낸 적은 없는 박찬욱 감독이 사진가-감독 클럽에 가입한 건 오래전이고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도 2016년에 출간된 바 있지만 10월1일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 <너의 표정>은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와 영화 사이 머물 수 있는 호젓한 공간을 물색하는 관객이라면 고려해볼 만한 장소다.

30여점의 전시 작품 외에 더 많은 수의 사진을 편집한 같은 제목의 작품집도 출간된다. 박찬욱의 사진은 스토리텔링의 의무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을 만끽하며 순수한 조형 형식에 집중하는가 하면, 이목구비 없는 피사체에서 기어이 ‘눈동자’를 찾아내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을 읽어내는 다정다감함을 발휘한다. 진짜와 가짜, 자연과 인공, 생물과 무생물, 리얼리티와 픽션이 나란히 존재하는 광경에 자주 셔터를 누르지만, 우리는 거기서 씁쓸한 아이러니가 아니라 이 세계가 불균질한 존재들의 우정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감독, 제작자, 사진가로서 고난도의 저글링을 감당하고 있는 박찬욱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포토제닉함이 무엇인지 물었다. 새로운 영화들이 어디만큼 오고 있는지도.

*‘김혜리의 콘택트’에서는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이 만난 대중문화예술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이 인터뷰는 앞으로 한달에 한번 <씨네21> 공식 유튜브 채널과 지면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사진작가 박찬욱과의 인터뷰 1부는 9월17일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 도합 몇 가지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헤어질 결심>의 편집이 거의 끝났고 음악과 시각효과(VFX) 작업을 하면서 사진집 출간과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동생인 박찬경 감독과 단편도 계획하고 있다. 다음 작품인 <HBO> 시리즈 <동조자>를 위해 여러 작가를 모아 하나의 팀을 꾸리는 ‘작가방’(Writer’s Room) 구성도 최근 마무리돼 곧 각본 작업에 들어간다.

-예전에 서부극 준비하면서 데니스 루헤인 작가를 접촉한 적도 있다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그 작품은 아직 투자가 안돼 루헤인 선생에게 줄 돈이 없다. (웃음) 틈틈이 그 작품도 쓰고 있다.

-본인 작품 외에도 모호필름 대표인 제작자로서 프로젝트도 있을 텐데.

=그렇다. 김상만 감독의 사극 <전,란>이 있고, 오늘 처음 공개하지만 이경미 감독과도 새 작품을 한편 계약했다.

-최근 10여년의 기억을 돌아보면 만날 때마다 배낭에다 카메라 가방을 하나 더 겹쳐 멘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영화 만들기 훨씬 전인 대학 시절부터라고 알고 있다.

=사실 아버지께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잘 찍으셨다. 어렸던 우리 남매의 모습들이 단정한 구도로 흑백필름에 찍혀 남아 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졌고 아버지의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갖고 놀았다. 대학 진학하면서 영화과를 가고 싶었지만 감독 일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전공을 택했는데 영화 동아리가 없어서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영화 대신이었던 셈인가.

=미술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하고 싶었는데 이도 저도 안되니까 비슷한 매체인 사진에 끌렸다. 거리를 다니면서 소위 거리 사진(street photo)을 많이 찍었다.

-아무래도 대학생의 동아리 활동도 정치에서 자유롭진 않았을 시대라 사회 모순이나 노동계급의 생활공간을 찍은 사진이 많았을 것 같다. 사적인 사진을 찍으면 선배들이 눈총을 준다거나.

=맞다. 요즘은 안 쓰는 표현이지만 달동네에도 출사를 갔고, 지금은 좋은 장소로 변했지만 쓰레기 하치장이 산을 이룬 난지도 주변에는 쓰레기를 분류하고 재활용하며 생활하는 분들이 가건물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주민들에게 카메라를 갖다대는 일이 불편했고 그래선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취향일 뿐 그렇다고 포토 저널리즘 계열 사진을 낮게 평가하진 않는다. 훌륭한 작가도 많고 그런 사진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당시에도 내 렌즈는 동네 골목, 인물이 찍히더라도 멀리 있는 풍경,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구도와 자세의 인물에게 자꾸 향했다. 결국 영화 동아리를 만들며 사진반원으로서 졸업하진 못했으나 그때의 활동을 통해 암실 작업도 하고 그룹전에도 참여해봤다.

-직업 영화감독이 된 이후에는 잠시 사진 휴지기가 있었나.

=그렇다. 아마도 <복수는 나의 것> 때부터 사진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마음의 여유가 좀 있었으니까. (웃음)

-사진은 영화와 비교할 때 우선 집단 예술이 아니다. 더구나 감독님은 철저히 프리프로덕션을 하는 스타일이라 작은 세부도 다 기획해서 만들어내는데, 사진은 피사체를 만들지 않고 예기치 못한 우연을 포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대척점에 있지 않나 싶다. 영화와 사진이 상호보완적인 면이 있나.

=물론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연출해서 사진을 찍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찍는 사진은 연출도 조명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발견하는 부류고 그래서 몸이 가벼울 수 있다. 내 영화가 굉장한 대작은 아니어도 저예산의 소품도 아니라서 후반작업까지 치면 몇십, 몇백명의 스탭들이 공동 작업하는 만큼 몸이 무겁고 결정에 따르는 책임감도 크다. 이 부담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박찬경 감독과 파킹찬스라는 이름으로 단편도 만들고 다른 작업들을 병행해왔는데 그중 최고가 사진이다. 사진은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오늘 카메라를 들고 나갔는데 아무것도 못 찍고 돌아와도 오늘 못 찍으면 내일은 뭔가를 맞닥뜨리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 참 좋다. 그렇다고 내가 사진을 가볍게 생각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취미로 여기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사진은 영화보다 오히려 내 일상에 더 밀착해 있다. 영화는 날 잡아서 각본 쓰고 편집하지만 카메라는 내 몸 가까이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카메라를 든 나는 어디를 가도 촉각이 곤두서 있고 뭔가를 만나 놀랄 준비가 돼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사진은 영화와 다른 속성을 가진 대등한 직업이다.

-개인전은 <너의 표정>이 최초지만 과거에 김중만 작가와 자선 사진전을 연 적이 있고, 2019년에는 국제갤러리에서 라이카가 주관한 전시회에도 출품했었다.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CGV용산 박찬욱관 외벽의 상설전시 <범신론>이다. 사진 작업이 주는 만족과 별개로 전시 맥락에 놓여 다수의 관람객이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일 텐데.

=2018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박찬경 작가와 함께 동영상을 포함해 개인 작업까지 망라한 대규모 전시를 연 적 있다. <범신론> 전시는 한번에 6점만 볼 수 있지만 넉달에 한 차례씩 작품을 교체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은 계속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갤러리라는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처음 하는 개인전이고, 상업 갤러리에서 여는 행사라 작품을 팔기도 해야 한다. (웃음)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에는 현장에서 찍은 배우들 사진도 있었는데 당시에 보면서 접근하기 힘든 배우들을 무방비한 상태에서 마음껏 찍을 수 있다니 굉장한 특권 남용(?) 아닌가 생각했다. (웃음)

=그러니까 그런 특권을 누릴 기회를 갖고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범죄가 아닌가 하는…. (웃음) 나아가 좋은 배우들과 작업하는 다른 감독들도 사진으로 많은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 현장에 스틸 작가라는 정식 스탭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순간도 감독은 목격할 수 있고 배우들도 좀더 열린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택한 사진들은, 필모그래피로 치면 <스토커>(2013)부터 <헤어질 결심>을 만드는 기간에 걸쳐 찍은 작품들이라고 들었다.

=감독의 인생은 작품을 기준으로 분류되니까 필모그래피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사실 사진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한 시점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전에는 당연히 필름과 35mm 카메라, 중형 카메라도 쓰다가 디지털카메라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성능이 향상됐다는 것이 확인된 다음부터는 디지털로 전환했는데 집도 파주라 현상소에서 멀고 아무래도 필름으로 돌아가긴 어렵더라. 예전에 필름으로 찍었던 사진은 따로 분류해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할 생각이다. 디지털로 옮겼다고 사진 자체에 큰 변화는 없다. 어차피 디지털이라고 마구 셔터를 눌러대는 성격도 아니고 오토포커스 카메라도 쓰지 않는다. 멋진 순간을 발견해도 기껏해야 서너 숏 찍고 마는 편이라 필름을 쓸 때와 비슷하다.

* 본 기사는 <사진작가 박찬욱, 세계와 눈을 맞추다>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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