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옥' '마이 네임' '포비든' 미리 보는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
2021-09-30
글 : 박도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부산으로 간 스트리밍
<지옥>

2019년 20세기 폭스의 라인업부터 마블까지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디즈니가 넷플릭스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한 디지털 배급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워너미디어와 HBO를 보유한 미국 굴지의 통신회사 AT&T는 올해 디스커버리채널을 인수했고, 이에 질세라 OTT 시장의 선두 주자인 넷플릭스 또한 소니픽처스와 2022년부터 4년 동안 개봉하는 모든 소니 영화를 스트리밍 배급하는 독점 계약을 맺었다. 또한 다른 경쟁사에 비해 다소 수동적이었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올해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MGM을 84억5천만달러(약 9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주고 합병했다.

이렇게 미국 회사들이 필사적으로 합병이나 독점 계약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 확보 때문이다. OT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되도록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시에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경쟁사에서 아예 손도 못대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런 점에서 OTT 업체들의 자체 제작(오리지널) 콘텐츠 또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매해 자체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특히 드라마 시리즈 같은 경우가 더욱 그렇다. 앞으론 영화보다 드라마 시리즈가 훨씬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등급이 적용되는 극장용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시 말해 과거 공중파나 케이블방송에서 쉽게 다룰 수 없었던 주제와 요소를 갖춘 드라마 제작이 더욱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용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의 경계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그 둘의 차이점이라곤 러닝타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올봄 드라마 시리즈의 부산영화제 상영 여부를 놓고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작품만 확보할 수 있다면 영화제에서 상영하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회의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드라마 상영이 결정됐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였고 베니스국제영화제나 토론토국제영화제와 같이 일부 비아시아권 영화제에서만 드라마 시리즈를 상영하는 상황에서 아시아 최초로 이런 선택을 안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TV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극장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한다는 점이 영화제 입장에선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섹션명을 ‘온 스크린’으로 정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다. 또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 회사도 스트리밍 서비스 전에 관객에게 영화제를 통해 프로모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했다.

<마이 네임>

올해 새롭게 신설된 ‘온 스크린’ 섹션에서 소개될 드라마 시리즈는 총 3작품이다. 첫 번째로 최규석 작가의 인기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6부작 <지옥>이다. 믿음, 정의, 속죄, 광기 등을 소재로 해 장르적 쾌감을 안기는 대작으로 유아인, 박정민, 김현주, 원진아, 양익준, 김도윤, 김신록, 류경수, 이레 등이 출연한다. 연상호 감독의 장르적 창의력과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가 더해지며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6부작은 파트1과 파트2로 나뉘는데 이중 파트1에 해당하는 3부작을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작품 <마이 네임>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액션 누아르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새로운 이름으로 경찰에 잠입한 주인공(한소희)의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그린 8부작 시리즈물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화제작 <인간수업>의 김진민 감독이 내놓은 차기작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인기를 얻어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한소희 배우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장르물의 전통적 컨벤션과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박력 있고 세련된 액션 스타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8부작 중 3부작을 상영한다.

<포비든>

마지막으로 HBO아시아의 <포비든>은 태국에서 제작한 시리즈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심리물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음산하고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8부작 중 첫 2편이 부산에서 소개된다. 아이돌 가수 JJ를 비롯해 태국의 라이징 스타 네명을 주연으로 해 태국의 깊은 숲속에서 펼쳐지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이국적이고 야만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제22회 부산영화제에서 <마릴라: 이별의 꽃>으로 지석상을 받은 아누차 부냐와타나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 김준표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올해 부산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선보일 세 작품 모두 극장 관객과 시청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웰메이드 드라마 시리즈라 자부한다. 지난 8월 ‘온 스크린’ 상영작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을 때 국내외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우리로선 영화 스크린으로 드라마를 처음 보는 관객의 평가도 궁금하고, 여러 가지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아무쪼록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관객은 물론 영화제, OTT 회사들까지 모두 윈-윈-윈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에는 좀더 풍성하고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을 맞이할 것을 약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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