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기획]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진심으로 추천한 영화들 1
2021-10-06
글 : 이주현

아시아(남동철, 박선영, 박성호), 월드(박도신, 서승희, 박가언), 한국(정한석), 와이드앵글(강소원) 그리고 커뮤니티비프 프로그래머(정미)까지, 부산국제영화제 9인의 프로그래머들이 진심을 담아 추천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 추천작

일본 영화의 힘

스기타 쿄시 감독의 <하루하라상의 리코터>는 일본 독립영화가 여전히 새로운 재능을 배출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작품이다.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몇 가지 상황들을 제시하는데 시적으로 표현된 울림들이 잔잔하게 퍼져나간다.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은 짜임새와 깊이를 두루 갖춘 스릴러다. <마더>에서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을 맡았던 가타야마 감독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오픈 시네마에서 만날 수 있는 구사노 쇼고 감독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은 상업 극영화의 재기발랄함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 영화적인 재미뿐 아니라 진지한 문제의식도 겸비한 복합적인 매력의 영화다.

서아시아권 영화의 매력

이란영화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감독과 작품은 당연히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히어로>겠지만 그 밖에도 주목할 영화들이 적지 않다. 2021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흰 암소의 발라드>(베타쉬 사나에에하, 마리암 모그하담 감독)은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힘 있는 영화다. 메흐디 호세인반드 아알리푸르 감독의 <소행성>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 예를 들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사연 뒤로 사회의 그림자를 잘 포착했다. 팔레스타인의 하니 아부-아사드 감독이 연출한 <후다의 미용실>도 빼놓을 수 없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굉장한 흡입력을 선보이는 영화다.

박선영 프로그래머 추천작

뉴커런츠의 영화들-<페드로> <붉은 석류> <안녕, 내 고향>

인도영화 <페드로>는 이것이 신인 감독의 영화인가 싶을 만큼 놀라움을 안겨주는 영화다. 생생하고 섬세하게 이미지를 포착하는 촬영이 특히 두 눈을 사로잡는다. 나테쉬 헤그드 감독은 이번에 부산을 찾는다. 카자흐스탄 영화 <붉은 석류>는 <마리암>을 만들었던 샤리파 우라즈바예바 감독의 영화인데, 의붓아들이 성폭행당한 걸 알게 된 주인공이 임신한 몸으로 보수적인 사회의 남자들과 싸움을 해나가는 이야기다. <마리암>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힘있게 여성의 서사를 그린다. 중국영화 <안녕, 내 고향>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 가난하게 살아온 중년 여성, 고독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이 각자의 신산한 삶을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영화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영화다.

주목해야 할 중국영화-<쓰촨의 신-신 극단>

중국에서 꾸준히 주목할만한 신진 감독들이 나오고 있는데, <쓰촨의 신-신 극단>의 치우지옹지옹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뉴커런츠로 가져오고 싶은 영화였지만, 로카르노 영화제에 먼저 출품을 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 소개하게 됐다. 올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처음 영화를 볼 때 너무도 이상해서 3번을 다시 봤다. 마치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영화 같은 연극, 연극 같은 영화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안겨준, 올해 본 가장 독특한 영화다.

박성호 프로그래머 추천작

화이트 빌딩/White Building/능 카빅/캄보디아, 프랑스, 중국, 카타르/2021년/91분/아시아영화의 창

캄보디아 영화 최초로 베니스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수도 프놈펜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건물인 화이트 빌딩이 철거를 앞둔 상황에서 한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청년 썸낭은 무너져가는 건물, 그와 함께 쇠락해가는 자기 아버지를 바라본다.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도 다분한 작품으로 <화이트 빌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제 풍경을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전작 <지난밤 너의 미소>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사실주의 드라마의 전통이 캄보디아에서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고, 관객들이 이 지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유니/Yuni/카밀라 안디니/인도네시아, 싱가포르/2021년/96분/아시아영화의 창

보라색을 좋아해서 보라색 물건이 보이면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고등학교 3학년 여자 학생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 어른으로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청소년의 행동과 심리에 관해 개인적으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청소년층을 지지해주는 좋은 어른의 역할을 성찰하게 만든 작품이다.

박도신 프로그래머 추천작

푸른 호수/Blue Bayou/저스틴 전 /미국/2021년/117분/월드 시네마

미국 드라마 <드라마월드>, 영화 <트와일라잇>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저스틴 전이 감독 데뷔했다. 영화는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남성의 기구한 일상을 그린다. 저스틴 전은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감독이지만 <푸른 호수>를 보고 나면 제2의 정이삭(<미나리>)이 되리란 생각이 들 것이다.

카우/Cow/안드레아 아놀드/영국/2021년/94분/아이콘

처음부터 끝까지 젖소만 나온다. 가끔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 말고는 주구장창 키우는 젖소만 나오는데, 계속 보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지루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다. 카메라가 젖소의 눈을 클로즈업할 때, 소들이 풀을 뜯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마치 소들의 얼굴이 꼭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원래 소가 아니라 닭을 찍을 계획이었다는데, 여러모로 올해 가장 용감하고 특이한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다.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Summer of Soul (...Or, When the Revolution Could Not Be Televised)/아미르 “퀘스트러브” 톰슨/미국/2021년/ 117분/와이드 앵글 -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1969년 우드스탁이 한창일 때 동시에 열렸던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 당시에 내로라하는 흑인 뮤지션들이 총출동해 30만 관중을 모은 ‘할렘 컬쳐 페스티벌’이다. 우드스탁만큼이나 큰 규모였고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흑인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유로 50년간 사장되어 있다가 이제야 영화화됐고 올해 선댄스에서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흑인 음악에 왜 ‘소울’이란 수식이 붙는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영화로,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한 편의 생생한 공연을 만끽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승희 프로그래머 추천작

영화제를 찾은 관객 모두를 위한 추천작

베네데타/Benedetta/폴 버호벤/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2021년/131분/오픈 시네마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한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몰입도가 뛰어난 걸작이다.

아네트/Annette/레오스 카락스/프랑스/2021년/140분/갈라 프레젠테이션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였다. 트래지디 뮤치컬이자 록 오페라.

멈출 수 없는/Inexorable/파브리스 뒤 벨즈/벨기에, 프랑스/2021년/100분/오픈 시네마

불어판 악녀전 혹은 유럽 버전의 <하녀>로 매혹적인 스릴러다.

영화제가 끝나고 극장에서 여유롭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

프랑스/France/브루노 뒤몽/프랑스, 독일, 벨기에/2021년/133분/아이콘

거장 브루노 뒤몽과 레아 세두의 만남으로 탄생한 현대의 희비극. 가장 여운이 길었던 영화 중 하나다.

베르히만 아일랜드/Bergman Island/미아 한센 로브/프랑스, 벨기에, 독일, 스웨덴, 멕시코/2021년/113분/아이콘

현실의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만나서 빚어내는 우아하고 섬세한 소나타.

마르크스 캔 웨이트/Marx Can Wait/마르코 벨로키오/이탈리아/2021년/91분/아이콘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박수치며 많이 울었던 작품이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그 어떤 작품보다 깊고 아프다.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000일/Onoda - 10 000 Nights in the Jungle/아서 하라리/프랑스, 일본,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캄보디아/2021년/165분/플래시 포워드

형이상학적 모험극. 올해 본 신인 감독의 작품 중 최고다.

파비안/Fabian – Going to the Dogs/도미니크 그라프/독일, 프랑스/2021년/179분/월드 시네마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애 서사극. 시네필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자유/Great Freedom/세바스티안 마이저/오스트리아, 독일/2021년/117분/월드 시네마

강렬한 오프닝 신과 게이 클럽의 백 룸을 탐험하는 시퀀스 숏은 세바스티안 마이저 감독이 파스빈더의 계보를 이어갈 감독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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