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성유빈
2021-11-03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몸짓의 연기학

류승룡과 성유빈은 <장르만 로맨스>에서 각기 다른 도전을 했다. <최종병기 활> <명량> <고지전> 등 장르영화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한 류승룡은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현’으로 생활 연기에 도전했고, <살아남은 아이> <봉오동 전투> 등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10대를 연기했던 성유빈은 “처음 받아본 코미디영화 대본” 속 고3 수험생 ‘성경’으로 변신했다. 극중 두 사람의 관계는 부자. 현의 이혼으로 따로 살고 있으나 두 배우가 함께한 첫 촬영이 부자의 말싸움 신일 정도로 왕래가 잦은 친밀한 사이다. 첫 촬영을 두고 류승룡은 “아들이 둘이라 생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회고했고, 성유빈은 선배와의 첫 촬영을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했다. 생각을 하면 더 굳는다”라고 떠올렸다. “생각 많이 한 배우와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가 만났을 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공기” (류승룡)에다가 조은지 감독의 유머가 섞이면서 미워할 수 없는 부자가 탄생했다. 가을날, 류승룡과 성유빈을 만나 제자 유진(무진성)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현과 공부보다 이웃 주민 정원(이유영)에게 관심이 많은 성경의 사정을 물었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해 설명한다면.

류승룡 현은 지질이처럼 보이고 일도 잘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 치부를 솔직하게 내놓는 인물이다. 우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현은 아들, 제자, 친구, 전 부인, 현 부인과의 관계에서 다소 서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밉지 않고 어둡지 않아 보이도록 표현하려 했다. <장르만 로맨스>는 피식피식 웃고 공감하면서 보게 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각자의 삶과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현은 공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성유빈 성경은 처음 사랑을 겪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영화를 제작할 때 성경이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땐 성경의 성격이 지질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감독님에게 “성경이 너무 지질하지 않나요?”라고 하면 감독님이 항상 “아니야~ 귀여워~”라고 했는데,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현이 자존심을 굽히고 유진 집에 찾아갔다가 부끄러워서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그러다 계단 가운데에 주저앉는데 그 몸놀림이 빠르고 독특해서 웃음을 유발한다. 성경도 가볍고 독특한 박자로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은 대본 지문에 자세히 쓰여 있었나, 아니면 배우들이 만들어낸 건가.

류승룡 조은지 감독은 신체의 모습으로 하나의 언어를 표현하는, 시각적인 언어에 섬세하다. 쪼그리고 앉는 것,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 등 시각적인 언어에 관해 감독에게 많은 주문을 받았고, 때에 따라 내가 생각해내기도 했다.

류승룡 배우의 첫 선생 연기를 본 것 같다. 문예창작과 교수로 강의실에 서서 출석을 부를 때 보여준 생활 연기는 10년 넘게 교단에 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류승룡 사실 나는 생활 연기에 부담이 있는 사람이다. 얼굴이 좀 강하고 목소리도 낮다. 그래서 <최종병기 활> <명량> <염력> 등 장르 연기를 많이 했다. 어떤 면에서 <극한직업>의 마약반 반장도 장르 연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생활 연기에 대한 갈급함과 긴장,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조은지 감독과 처음 미팅 때 “나는 생활 연기를 많이 안 해봐서 조금 두렵다”라고 솔직하게 말했을 정도다. 조은지 감독이 자료를 보여주며 도움을 줬고 나도 많이 공부했다.

성유빈 배우는 <완득이>의 유아인 아역, <파파로티>의 이제훈 아역,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이현우 아역, <역린>의 정재영 아역을 연기했다. 주로 주연배우의 어두운 과거를 연기했는데, 밝은 연기도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다. 코미디는 처음인데 이전 작업과는 어떻게 달랐나.

성유빈 연기할 때는 어두운 에너지를 쓰는 것만 항상 해왔으니까 밝은 연기를 하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장르만 로맨스>는 내게 들어온 첫 코미디 대본이었고, 밝은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을 때 들어온 제안이었다. 근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내가 또 어두워 보이지 않나 싶어 걱정됐다. 촬영 내내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고 주변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으로서 학교를 다니며 촬영을 병행했는데, 정신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장에 갈 때마다 ‘오늘 재밌겠다’라고 기대했다.

현은 타인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고, 성경은 누군가를 쫓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여러 인간관계에서 오는 즉각적인 감정과 몸짓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류승룡 나는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초연 멤버고, 5년 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대사 없이 몸놀림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공연을 수천번 했다. 그 경험이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놀라서 후다닥 뛰어가고, 그러다가 멈칫하면서 멈추는 동작 등은 모두 몸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템포다. 장진 감독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그와 12개 작품을 했다. 연극도 많이 했고 상업영화 중에는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를 함께했다. 장진 사단 배우들은 시치미 뚝 떼고 하는 연기를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정재영씨도 템포 코미디, 상황 코미디, 무표정 코미디를 잘한다.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도 비슷한 유다. 현실에서도 유머러스한 사람들을 보면 시치미 뚝 떼는 게 있지 않나. 신파영화에서 배우가 관객을 울리기 위해 관객 몫이 없을 정도로 다 울어버리기 때문에 카타르시스가 덜하다고 생각한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장르만 로맨스>는 무성영화처럼 소리 없이 봐도 이해할 만한 작품이다. 성유빈 배우도 몸을 정말 가볍게 쓰는데.

성유빈 <살아남은 아이>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무거웠던 것 같다. 걸음도 터벅터벅 무겁게 걸었다. <장르만 로맨스>에서 성경이 엄마 미애(오나라)와 걷는 장면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없어서 굉장히 가볍다. 후에 성경이 정원을 만나고 나서는 급하게 쫓아간다기보다는, 너무 좋으니까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받아주는 정원 역의 이유영 배우도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여서 재밌다.성유빈 선배가 연기하는 걸 보고 저렇게 재밌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좀 따라 했다.

류승룡 감독님이 이유영, 성유빈 배우가 연기할 때 엄청 행복해했다. 그리는 대로 그려지니까.

성경이 노래방에서 춤추며 사랑을 고백하는 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조은지 감독의 춤을 따라 한 거라고 들었다.

성유빈 감독님이 평소에 도대체 어떤 춤을 추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뭐 이런 춤 있잖아”라고 설명하면서 보여주셨다. 연기할 때 본 걸 그대로 했다. (웃음) 현장에서 감독님이 보여준 것 말고 다른 게 생각나지 않았다.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의 주문은 다른 감독과 어떻게 달랐나.

류승룡 배우에게 ‘황제케어’라고 할 만큼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 조은지 감독은 배우에게 “나무가 돼주세요”가 아니라 “8월 말 새벽녘 만개한 배롱나무처럼”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감독이 배우의 연기 패턴, 습관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주문을 하니까 음표에 플랫을 달고 박자가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 배우가 알아서 다 한 것 같잖나. 아니다. 거의 모든 대사를 감독이 그렇게 만져주고 파인 튜닝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배우 본인이 아닌 스탭이나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게 조곤조곤 주문한다. 배우를 향한 배려로 느껴졌다.

성유빈 나 역시 조은지 감독님이 정확한 느낌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느낌으로 주문받는 걸 좋아한다. 그 느낌이란 게 내 생각과 감독 생각이 다르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긴 설명을 듣고 ‘아, 이 느낌이구나’ 싶어 연기했는데 연출자가 “그거 아닌데?”라고 하면 난감하다. 그런데 조은지 감독님과는 그 느낌이 거의 일치했다. 설명을 정확히 해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감독님의 머릿속에 정확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지금 상태를 책으로 쓴다면 무슨 장르일 것 같나.

류승룡 여행산문일 것 같다. 종주하듯이 끝을 정해놓지 않고 과정을 기록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등산이 아니라 종주다. 자연스럽게 ‘업 앤드 다운’이 있다.

성유빈 기행문을 많이 쓴 작가가 쓴 옴니버스 소설!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아픔도 있고 기쁨도 있다. 독자가 볼 때 부담스럽지 않게 쓰였으면 한다. 기승전결로 봤을 때는….

류승룡 서문 쓴 거 아냐? 서문? (웃음)

성유빈 기와 승 사이인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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