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건 누아르인데 어쩜 이렇게 멜로적이니?” 현(류승룡)과 이혼 후, 그의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와 사랑에 빠진 미애(오나라)는 말한다. 느닷없이 순모의 거친 얼굴에 선크림을 쓱싹 발라주고, 순모가 짜온 살인적인 데이트 스케줄을 꿋꿋이 따르면서.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골칫거리인 전 배우자와 사춘기 아들도 잊는다. 전남편 친구와의 연애, 친구의 전 부인과의 연애에 놓인 두 사람 사이의 ‘멜로적’ 순간을 사랑스럽게 연기해낸 배우 오나라와 김희원은 “아마 이런 커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를 설득한다. 영화를 찍으며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촬영장 밖에서도 술 한잔 없이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남매 케미를 선보이며 <장르만 로맨스>였던 여름날을 회상했다.
귀엽고 유쾌한 영화다. 처음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김희원 프랑스 예술영화 같았달까? 시나리오에 철학적인 구석도 있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있었다. 그런데 조은지 감독은 무조건 코미디로 찍는대서 어떻게 하려나 싶었다. 난 이게 왜 코미디지 했고.
오나라 영화에 웃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을 거다. 우리는 영화 속 상황에 충실히 진지하게 연기했고, 그러다보니 더 웃겼던 게 아닐까.
김희원 맞다. 진심으로 이 관계 설정에 짜증내면서 연기했다. (웃음)
두 사람이 연기한 미애와 순모는 비밀연애 중이다. 둘 사이에는 미애의 전남편이자 순모의 친구인 현이 있어 곤혹스러운데, 이들이 어떻게 사귀게 된 건지 상상해봤나.
오나라 자신이 현보다 먼저 미애를 좋아했다는 순모의 대사가 있다. 현은 더 과감하게 미애에게 대시했고, 순모는 오래 짝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미애는 처음엔 적극적인 현에게 끌렸을 텐데 이혼 후 마음이 움직였겠지. 미애와 순모 모두 현을 아끼고 있기 때문에 배려하는 마음으로 비밀연애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김희원 이렇게 엮이는 걸 누구나 싫어하지 않겠나. 나도 참 찝찝한 관계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런데 사랑은 아무리 찝찝한 상황에서도 시작된다. 그 점을 더 염두에 두려고 했다.
2019년 6월부터 9월까지 촬영했다. 당시 오나라 배우는 드라마 <SKY 캐슬> 종영 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오나라 마냥 행복했을 때다. 그러다보니 더 열려 있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오랜만에 도전하는 거였기 때문에 나 자신을 리셋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
김희원 오나라 배우와 연기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봤다. 밝고 가볍게만 비치는 면이 있는데 연기할 때는 굉장히 예리하다. 현장에서 하는 질문들이 모두 정확하고 명료했다. 20년 연기 경력이 허투루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오나라 감동이다. 그만큼 우리가 연기도 성격도 궁합이 잘 맞았다. 이번 영화로 오빠를 만나게 된 게 큰 행운이다. 김희원 배우의 경우 그동안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칼 들고 총 들고 잔인한 연기를 많이 해오지 않았나. 실은 로맨스가 잘 어울리는 남자다. 이번 영화에서도 너무 귀엽지 않나.
김희원 그건 네가 판단할 게 아니야! 보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셔야지.
오나라 아니야, 여성 관객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 약간 울먹이는 장면도 압권이고, 술 한잔도 못하면서 술 취한 연기도 잘했다. 앞으로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연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김희원 난 악역도 사랑하면서 하는데?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수한다고! (웃음)
김희원 배우가 귀여워 보일 만한 대목은 역시 미애와 순모의 데이트 신들이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의 브런치, 자작나무 숲에서의 명상, 나란히 앉아 커플 자전거 타기 등 순모가 스케줄을 꽉꽉 채워 정리한 데이트 코스가 인상적이었다.
김희원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을 찍으면서 자작나무 숲에 여러 번 갔는데 갈 때마다 오나라 배우와 촬영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자작나무 숲에만 가면 이 영화가 생각나지 않을까.
오나라 관객에게 못 보여드려 아쉬운 데이트도 하나 있다. 편집됐는데, 둘이 한강에서 잔나비 노래에 맞춰 블루스를 추는 장면이 있었다. 아주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신인데, 다른 캐릭터들은 치열하게 고민 중일 때 우리만 달콤해서 편집됐다. (웃음)
얼마 안 있어서 모두가 휘말리는 거실에서의 육탄전이 있다. 현의 현 부인을 연기하는 류현경 배우까지 가세해 난장에 가까운 몸싸움을 벌였다.
오나라 그날 류현경 배우를 처음 봤는데 다짜고짜 머리끄덩이를 잡고 올라탔다. 처음 본 사이에 몸을 부대끼면서 엄청 친해졌다.
김희원 애들처럼 목 조르고, 넘어지고, 베개 던지고… 에어컨도 못 틀고 하루 종일 찍었다. 리허설만 반나절을 했을까. 그 장면만큼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여야 했기 때문에 재밌게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도 약간은 있었다. 그래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단체로 뒤엉키는 신을 찍다보면 많이 지치는데, 모두가 배우로서 욕심을 내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얘기도 많이 했다.
거실에서의 액션 이외에도 유독 오나라 배우는 소리치는 신이 많고, 김희원 배우는 애걸하는 신이 많다. 애드리브처럼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순간들도 많아 보였다.
오나라 워낙 대사 맛집인 영화라서 주어진 대사에 충실히 연기했고, 대사보다 행동을 즉흥적으로 많이 추가했다. (류)승룡 선배가 그런 걸 잘하는데, 나도 화답해서 움직이다보니 뻔하지 않고 활어 같은 그림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김희원 난 터널에서 미애와 순모가 싸우다 했던 애드리브들이 되게 좋았다. 내가 그때 실제로 운전을 했는데, 운전하랴 연기하랴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이 차 안에서 티격태격하다가 미애가 순모에게 앞을 보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그게 짜놓은 게 아닌데 타이밍이 잘 맞으면서 싸우는 신까지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오나라 그렇게 합이 잘 맞을 때 묘한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정말 그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배우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으로도 친근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김희원 배우는 <바퀴 달린 집>에서, 오나라 배우는 <식스센스>에서 출연진과 소탈하게 소통해왔다.
오나라 예능 프로그램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 같다. 그렇다보니 나만 아는 내 단점도 보여 부끄럽기도 했다. 나를 다시 한번 체크할 수 있는 기회이자 팬으로서 좋아하는 예능인들과 가식 없이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후배 배우들이 게스트로 나오면 특히 신경 써서 챙겨주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오나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았다. 알아봐주니 뿌듯하고 보람 있다.
김희원 <바퀴 달린 집>에서는 모두가 최대한 편안했으면 해서 제작진에게 아무것도 주문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배우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더 힘들어하더라.
오나라 나도 두번 출연했는데, 설거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웃음)
예능과 작품을 오가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중인데, <장르만 로맨스> 개봉을 앞둔 요즘의 일상은 어떤 장르로 흘러가는 중인가.
오나라 잔잔한 물결이 찰랑이는 휴먼 드라마? 편안하고 안락하다.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일상이 즐거웠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쉼표를 찍는 시기인 것 같다. 재충전하고 또 다른 작품을 만나면 다시 날아오를 거다. 그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김희원 나도 비슷하다. <전원일기> 같달까? ‘도시일기’가 맞겠다. (웃음) 경제 공부, 주식 공부를 하면서 재밌게 지내고 있다.
오나라 나도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서 다시 운동해야겠다 싶은데! 에너지가 좋아야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일도 잘할 수 있겠구나 싶거든.
김희원 지금보다 에너지가 더 좋아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유지만 해도 돼! 관객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팝콘이나 먹어야지 생각하며 우리 영화를 봐주셨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