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존재하지 않는 영화 세계로의 초대
2021-12-02
글 : 김현수
VR의 방향성을 보여준 ‘디지털 노벰버’ 전시 현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주한 프랑스 대사관, 플랫폼엘이 공동 주관한 ‘디지털 노벰버’ 전시가 서울 학동에 위치한 플랫폼엘 전시장에서 11월19일부터 12월2일까지 열렸다. 4편의 VR 콘텐츠를 대중에 무료로 공개했는데,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 제작한 작품을 비롯해 VR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최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행사에서 공개된 VR 콘텐츠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세계적인 VR 프로젝트인 <미싱 픽처스> 시리즈를 제작 총괄한 클레멍 드뇌 감독과의 인터뷰도 덧붙인다.

영화가 영화적일 수 있는 이유는 사각의 스크린이라는 제한적인 틀을 이용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신비를 들여다보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는 사뭇 다른 형식을 지닌,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VR 콘텐츠 혹은 VR 영화는 영화적인 형식이 주는 전통적인 감동을 뛰어넘거나 대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프랑스의 VR 제작 스튜디오 아틀라스파이브가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에게 ‘감독이 되어서도 만들지 못한 필생의 프로젝트’를 VR로 구현해보자는 제안을 해 시작된 <미싱 픽처스> 시리즈는 만들어지지 않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려는, 그리하여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안겨주려는 시도다. 평생 뉴욕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왔던 에이블 페라라 감독이 자신이 만들지 못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잊혀진 작품: 버즈 오브 프레이>, 차이밍량 감독이 들려주는 유년 시절 기억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돌아보게 해주는 <미싱 픽처스: 차이밍량> 두편이 그러한 시도의 결과다. 창작의 고통과 예술적 비전으로 요동치는 감독의 마음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잊혀진 작품: 버즈 오브 프레이>는 에이블 페라라 감독이 <복수의 립스틱>과 <피어 시티> 사이에 기획했으나 투자받지 못해 엎어진 영화를 재현한다.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가상의 미래 도시 뉴욕에서 빈민가의 노숙자 리더이자 테러리스트인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방인 프리요가 주도한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기업이 잔혹한 살인마 케이를 고용한다는 내용. 눈앞에선 뉴욕 빈민가 뒷골목에서의 핏빛 싸움이 펼쳐지면서 영화 기획 당시를 회상하는 에이블 페라라 감독의 거친 음성이 들려온다. <미싱 픽처스: 차이밍량>은 “만들지 못한 영화가 없다”라고 말하는 차이밍량 감독이 직접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던 기억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잠들곤 했던 침대, 아파트 단지 마당에서부터 ‘오데온’이란 극장이 있던 거리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 말레이시아의 풍경 한복판으로 들어가 걸어보고 고개를 들이밀어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연출했다. 차이밍량 감독의 창작의 원천과도 같았던 극장 좌석에 앉아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작품의 중요한 연출 포인트다.

또한 이번 ‘디지털 노벰버’ 전시에 함께 소개된 두 작품은 ‘경험’의 미학을 극대화한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쇼베 동굴을 배우 데이지 리들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탐험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회화의 탄생>과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 시력을 잃어버린 작고한 신학자 존 헐의 육성 일기를 담은 <Notes on Blindness>는 미지의 공간과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플랫폼엘 전시장에 마련된 ‘디지털 노벰버’전시관에서 작품을 관람 중인 사람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잊혀진 작품: 버즈 오프 프레이> 에이블 페라라 감독편

감독 클레멍 드뇌ㅣ프랑스ㅣ제작연도 2020년ㅣ러닝타임 8분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싱 픽처스: 차이밍량> 차이밍량 감독편

감독 클레멍 드뇌, 라이쿠안위안ㅣ프랑스, 대만, 영국, 룩셈부르크ㅣ제작연도 2021년ㅣ러닝타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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