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는 꼭 가야 한다
2021-12-09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윤성호 감독의 시트콤이 주는 웃음

2020년 가을, 웨이브로부터 ‘정치, 블랙코미디, 시트콤’이라는 세개의 키워드를 건네받은 윤성호 감독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먼저 구상했다. 주인공인 여성이 청와대를 바라보며 ‘이렇게 된 이상 저기까지 간다’라고 결심하는 모습이었다. <정치 블랙 21> <열린 장관실과 그 적들> <나라와 권세와 영광> 등 가제가 몇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그 아이디어만큼은 접지 않았던 감독은 첫 대본을 웨이브에 보내기 직전, 제목이 ‘노잼’으로 보일 것 같다는 우려와 ‘어차피 나중에 청와대 보면서 끝나니까’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제목을 적어넣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라는 제목은 이말년 작가의 웹툰 <이말년 씨리즈> 등장인물들이 뜬금없이, 그러나 호기롭게 파국을 향해 달려가기로 의기투합하며 외치는 바람에 밈으로 유명해진 대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청>은 스포츠 스타 출신 초보 정치인 이정은(김성령)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된 지 6개월 뒤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관한 이야기다. 이정은의 가장 큰 염원인 체수처(문화체육예술계 범죄 전담 수사처) 설립을 위한 행사가 뜨거운 반응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예산은 날아가버리고 본의 아니게 차기 대선주자 리스트에 올라버린 이정은이 이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남편 김성남 평론가(백현진)를 납치한 괴한들은 장관직 사임을 요구한다. 이정은을 만만하게 여기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남자들 사이에서 그가 숨긴 발톱을 알아보는 인물은 보수 야당의 베테랑 정치인 차정원(배해선)뿐인데, 이정은의 수행비서 김수진(이학주)은 차정원과도 미묘한 관계에 있다.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르는 ‘평범한’ 20대 남성, 혐오 정서를 팔아 세를 불린 종교인, 불공정 계약으로 고통받는 아이돌 습생, 여성 혐오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하며 ‘이대남’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수많은 징후를 생생히 담아낸 이 작품은 무책임한 파국이나 단순한 영웅 서사로 흘러가는 대신 공적 영역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사람들의 ‘일’에 주목한다. 밀려드는 악재와 언론의 공세 속에서 통상적 업무 수행하랴, 장관 보좌하랴 노심초사하는 문체부 소속 ‘늘공’(‘늘상 공무원’의 줄임말로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 공무원) 신원희 대변인(이채은)과 최수종 기획조정실장(정승길)은 그동안 정치를 다룬 드라마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영역의 인물들이다.

일종의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학 드라마 같은 관점으로 <이상청>에 접근했다는 윤성호 감독은 “정치적 행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비판, 지지, 혐오라는 프레임 대신 전문직으로 보고 싶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혹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세계에 능수능란한 사람도, 지리멸렬한 사람도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체수처를 설립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예산을 짜내려던 최수종 실장이 비교적 중요도 낮아 보였던 ‘이야기 할머니’(노년 여성 동화 구연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열정과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딜레마처럼, 짤막한 에피소드 하나하나조차 이 작품의 근본적 질문과 맞닿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정치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실한 질문을 바탕으로 12회에 걸쳐 쉼 없이 이어지는 쓴웃음과 폭소의 끝에서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바람이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는 꼭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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