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현실 정치를 공부할수록 공무원들을 리스펙하게 됐다"
2021-12-09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윤성호 감독 인터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웨이브가 ‘정치, 블랙코미디, 시트콤’ 성격을 띤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을 위해 윤성호 감독에게 손을 내민 것은 신의 한수가 아니었을까. 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이른바 ‘웹드라마’라는 단어가 낯설던 2010년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내놓은 이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길고 짧은 영화와 드라마를 유연하게 선보여온 그는 언제나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 창작자였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는 “로컬의 디테일이 중요한” 윤성호식 코미디가 어떻게 그 특수성을 바탕으로 보편적 재미를 획득할 수 있는지 증명한 작품이다.

사진제공 콘텐츠웨이브

극 초반 “정치가 도대체 뭐길래”라는 절규가 등장한다. 정치를 어떻게 다루고 싶었나.

기획안에 맨 처음 쓴 문장이 “고작 우리 마음 얻으려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많은 경우 그걸 얻으려는 과정에 천착하는데, 나는 ‘정치인들이 우리 마음 얻어서 뭐 하려는 걸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의 일은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댐에 구멍이 나서 무너지기 전에 막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없으니 현실에는 아이언맨 같은 슈퍼히어로 대신 우리가 대표성을 주고 예산을 쥐어준 정치인이 있는 거다. 그럼 그는 어디부터 용접할까. 아이부터 살릴까, 노인부터 살릴까, 방역부터 할까. 여러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몫을 할애하는 게 정치인인데, 그들은 정세라는 풍향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그런 와중에 위에서 뭐라 하든 꼭 필요한 예산과 정책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절충하며 계속 일이 돌아가도록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 정치를 공부할수록 공무원들을 리스펙트하게 됐고 그들의 서사에 더 무게를 싣는 쪽으로 바뀌었다.

참신한 설정과 재미있는 대사로 입소문을 탔는데, 작가진의 구성이 궁금하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보니 혼자 쓰기는 어려웠다. 그동안 후자에 속하는 작품을 여러 번 만들었는데, 가능하면 이야기의 주인공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작가나 연출가가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세계관이나 캐릭터는 내가 쓰고 에피소드마다 3~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초반 캐릭터간의 티키타카나 “손병호 게임 하면 금방 줍니다”, “어제 여의도 생고기에서 회식하신 분들” 같은 다이내믹한 대사는 김홍기 작가의 공 이다. 최성진 작가는 군더더기 빼고 기승전결이 있는 플롯을 짜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김홍기 작가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작가인데 둘 다 나보다 훨씬 ‘정덕’(정치 덕후)에 가까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역시 신인인 박누리 작가는 북한 관련 내용 등 큰 서사 안의 중간 에피소드를 주로 맡아 써주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배경인데 공공기관 특유의 문화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반응이 많다.

일단 시놉시스를 쓴 다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팩트체크하며 대본을 만들었다. 조직도, 문헌, 규정 같은 걸 계속 찾아보면서 극적 허용이 가능할 것 같은 부분과 너무 나가면 안될 것 같은 선을 잡았다. 예를 들어 이정은(김성령)이 서도원(양현민) 정책보좌관에게 “너 아웃!”이라고 말하며 자르는 방향으로 쓰고 나면 겁이 났다. 공무원은 저렇게 못 자르지 않나? 그래서 규정집을 찾아보면 “공무원을 직위해제하려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절차를 밟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서도원이 “윗선하고 얘기되신 건지”라고 반박하면 이정은이 국가공무원법을 언급하며 “절차는 제대로 밟을 거”라고 덧붙이는 식으로 조금씩 길어졌다.

이정은은 스마트하고 품위 있으면서 위기에도 강한 인물이다. 특별히 흠잡을 데 없으면서도 지루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 사람을 어떻게 보여줄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이상청>은 뒤로 갈수록 온갖 예측 불허한 사건과 짓궂은 장면, 주인공과 측근들을 둘러싼 반전이 있는 이야기인데 2화까지만 보면 ‘착하고 훌륭한 여성 서사, 하지만 재미는 없네’라고 느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이정은이 작은 승리를 하는 한편 계속 깨야 하는 퀘스트를 만나면서 첩첩산중에 놓이게 했다. 원래는 그냥 충복이라는 설정이던 김수진(이학주)이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도록 바꾼 거나, 차정원(배해선)이 이정은을 경계하는 것도 자꾸 ‘이정은한테 뭐가 있나 본데?’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정은을 따르는 사람도 뒤통수를 칠 수 있고, 그들이 오히려 이정은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깔기 위해 애썼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특정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적지 않다.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 자칫 일차원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

현실을 반영하되 정확하게 등치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가령 팽길탄(권태원) 하면 당연히 어떤 목사가 떠오르겠지만, 그 목사만 생각나면 안된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그와 비슷한 다른 인물들이 떠오르길 바랐다. 지금 인도네시아 시청자든, 5년 뒤의 브라질 시청자든 ‘우리나라에도 저런 사람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덴마크 정치 드라마 <보르겐>(한국에서는 <여총리 비르기트>라는 제목으로 번역)을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에게 낯선 정치 구조와 의제가 계속 등장하는데도 다 이해가 되더라. 거기서도 언제나 SNS가 문제고, 매체에 보도된 한마디의 뉘앙스가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배우자가 갈등을 낳는다. (웃음) 잘 만든 드라마 속 현대인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동일한 환경에 살지 않더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상청> 시즌2 제작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 계획이 있나.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는 생각해둔 게 있다. 시즌2나 스핀오프 제작 여부를 떠나 <이상청>의 일주일을 쓰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정은과 김성남(백현진)은 어떻게 만났나, 차정원과 김수진은 어떤 관계였나, 그리고 퇴임 후 이정은이 어떤 활동을 할지 등은 대략 잡아두었다.

단편영화부터 꼽으면 데뷔 20년을 맞았다. 유머에 나이는 없지만, 재기발랄한 창작자로 주목받았던 만큼 ‘감’이 떨어지는 데 대한 부담 같은 건 없나.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도 대단히 감각적인 편은 못됐다. ‘나는 그렇게까지 웃기는 재주는 없는 것 같다’라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고 이제는 더 자신이 없다. 다만 극적인 플롯 속에 아이러니를 집어넣는 데는 세월이 필요한 것 같은데, 스탭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그림이나 사운드로 재미를 살리는 재주는 그동안 조금 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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