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들 ① '티탄' 새로운 인간성을 위한 괴물의 탄생
2021-12-10
글 : 임수연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겠다는 야심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줄리아 뒤쿠르노의 신작 <티탄>을 선택했다. 가장 마지막에 호명해야 할 황금종려상을 무대에 오르자마자 공개해버린 심사위원장 스파이크 리 감독의 실수로 폐막식 내내 혼란스러웠다는 뒤쿠르노 감독은 심사위원이었던 샤론 스톤을 껴안고 “역사처럼 느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샤론 스톤은 웃으면서 “자기야, 이건 역사가 맞아”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티탄>은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이 필연적으로 조응한다. 창조를 위한 파괴, 새로운 인간성을 위한 괴물의 탄생을 긍정하기 위해 전통적인 작법을 탈피하고 장르와 규범을 초월한다.

붉은 캐딜락이 포효한다. 흥분한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밀어내고, 나체의 댄서는 축축한 몸으로 차체를 쓰다듬는다. 틈 없이 가까워진 댄서와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점점 격렬하게 리듬을 맞추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댄서의 이름은 알렉시아(아가트 루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머리에 티타늄을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제시되지 않지만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원인을 제공한 자동차에 다가가 정겹게 키스부터 하는 모습은 알렉시아의 성적 취향을 예고한다. 그는 인간 남자는 물론 인간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다.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남자들이 즐비한 모터쇼의 스트립 댄서가 된 것도 가장 강력한 머슬카를 만지고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티탄>은 냉과 온, 금(金)과 화(火), 유기체와 무기체가 얽히는 연금술로 이미지를 충돌시킨다.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는, 알렉시아의 머리에 박힌 티타늄은 H. R. 기거의 ‘에이리언’을 연상시키며 금속과 살, 괴물이란 타자와 인간을 혼합한다. 자동차와 육욕적 관계를 맺은 후 알렉시아의 배가 불러오고 성기에서 자동차 기름이 쏟아져 나올 때 이는 도나 해러웨이가 선언했던 트랜스휴먼/사이보그에 관한 괴팍한 상상일까 짐작해보지만, <티탄>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범주는 훨씬 포괄적이다. 먼저 영화 제목 ‘titane’은 티타늄을 의미하는 단어인 동시에 원래 남성 명사인 ‘titan’의 여성 명사다. 어린 알렉시아의 성별은 전통적인 젠더상에 비추었을 때 외관상 모호하며, 성인이 된 알렉시아가 행사장에서 추는 춤은 메일 게이즈(male gaze, 남성의 시선)를 조롱하듯 재현한 후 그가 카메라를 직시함으로써 시선의 권력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그렇게 터프한 남성성의 상징처럼 소비되던 자동차와 모터쇼는 뒤집힌 젠더에 의해 다시 정의된다.

알렉시아를 강간하려는 남성 구경꾼은 역으로 귀에 금속이 박혀 즉사하는데, 성폭력에 대한 유사 성폭력 형태의 복수를 명백히 의도한다. 이어서 연쇄살인범 수배를 피해 실종자 아드리앵 르그랑의 17살 모습인 척 연기하는 32살의 댄서는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이 거느리는 소방관 무리에 부대끼게 된다. 이들은 극도로 마초적이며 호모포빅한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알렉시아가 아드리앵이 되는 과정은 트랜스젠더보다는 젠더 유동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래의 흑인 여성이 폭력적인 남자들에게 위협당할 때 무대응하던 알렉시아가 뱅상 그리고 그를 ‘게이’ 같다고 놀리는 소방서 남자들과 섞여 파티를 즐길 땐 퀴어 뉘앙스가 묻어나고, 소방차 위에 올라가 모터쇼의 댄서 시절과 같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문제적 시퀀스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이성애 규범을 완전히 흩뜨린다. 무엇보다 도덕적이지 않은 캐릭터에게 공감할 것을 요구하는 영화의 태도가 혼란스럽다.

즉각적인 정동을 통한 젠더와 인간성의 해체

뒤쿠르노에게 인간의 신체는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생체 ‘기계’다. 인간과 금속체가 알렉시아의 몸을 공유하면서, 일종의 예술 실험체로서 그의 신체가 변형되는 과정은 즉각적인 정동을 통해 젠더와 인간성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피부 발진과 탈각의 이미지는 내밀한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뒤쿠르노의 인물들은 피부가 벗겨지고, 살갗이 찢어지고, 피를 흘린다. 단편영화 <주니어>의 전형적인 톰보이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몸에서 끈적이는 물질이 나오고 살갗이 벗겨진 후 전통적 의미의 페미닌한 특성을 가지게 되고, TV 무비 <망쥐>는 대학 시절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복수하는 폭식증 환자의 이야기였으며, 채식주의자 집안에서 억압받았던 <로우>의 쥐스틴은 수의학과에 입학한 후 섹스와 카니발리즘에 눈뜬다.

특히 <로우>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진 뒤쿠르노의 스타일은 오줌을 누고, 비키니 왁싱을 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근접 촬영한다. “우리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식인과 같은 금기의 묘사가 필요하다.”(<인디펜던트>의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인터뷰) 뒤쿠르노 감독은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 피부과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며 어렸을 때부터 의사와 환자,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일찍부터 신체 변형과 부패, 징그러운 이미지를 생각하는 일은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5살 때 목욕탕에서 인간은 결국 죽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6살에 <텍사스 전기톱 학살>을 봤다. 10대 때는 에드거 앨런 포와 메리 셸리의 글을 읽고, 16살 즈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심취했으며, 특히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추상적인 육감에 영향을 받았다.”(<벌처>의 줄리아 뒤쿠르노 인터뷰) 유년 시절부터 그에게 깊이 각인된 신체 및 신체 변형의 욕망은 <티탄>에 이르러 더 집요해지는데, 성기를 비롯한 인체의 구멍에서 검은 기름이 흘러나오고 젖가슴에서 자동차 오일이 묻어나는 묘사까지 등장한다. 뒤쿠르노 감독은 “도덕적이지 못한 캐릭터를 따라가는 영화를 계속 보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느끼는 것을 느낌으로써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야 했다”(<LA 타임스>)고 설명한다. 출혈, 특히 여성에게는 하혈, 멍이나 찢어진 흉터는 관객이 아는 고통을 통해 주인공이 연약한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해 근접한 카메라에 담긴다. 또한 “유머와 편안함의 원천으로 보디 호러 문법을 사용”(<필름 스쿨 리젝트>)한다는 그는 돌발적으로 코미디를 극에 틈입하고, 신체 접촉을 통한 위안을 따뜻하게 그린다. <티탄>의 도발적인 세팅은 관습을 뒤틀고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고, 그렇게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도덕의 정의는 유동한다.

전작 <로우>의 쥐스틴과 알렉시아 자매가 함께 오줌을 누고 상대의 살을 물어뜯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몸이 구분되지 않는 경지를 보여준 것처럼 <티탄>의 알렉시아와 뱅상이 가진 상처는 같은 방식으로 촬영된다. 알렉시아처럼 그가 잃어버린 아들 아드리앵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 뱅상 역시 변화(노화)하는 육체의 고통과 슬픈 동거를 하고 있다. 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주사를 남용하는 그는 <티탄>의 또 다른 괴물이다. 친자 확인을 위한 기본적인 DNA 검사마저 거부하는 뱅상은 벗은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다른 소방관들이 반나체로 다니는 것과 대비된다) 입을 열지 않는 아드리앵을 온전히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신체 변형에 대한 저항과 죽음의 충동,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인 두 사람의 역동적인 관계는 결국 서로를 구원한다.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부자 관계’를 흉내내며 전형적인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을 그리는 소방관 집단에서 성별과 섹슈얼리티, 사회의 고정관념을 초월하는 사랑의 오디세이가 완성되는 것이 거대한 농담처럼 읽히기도 한다. 에로틱 스릴러에서 슬래셔, 블랙코미디에서 무거운 가족 드라마로 탈주하고 장르 문법을 바꾸는 <티탄>은 마치 이 괴물 같은 영화를 목격하고 감응했듯 새로운 세계와 인류를 포용하라는 대담한 선언으로 보인다. 뒤쿠르노 감독은 “하늘의 신인 우라누스와 대지의 신인 가이아가 만나 티탄이 탄생하는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인디와이어>)는 욕망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티탄>에 대해 실체보다는 스타일, 내면보다 공포를 중요시한 얄팍한 내러티브가 충분히 가능했을 성찰을 막연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대담한 줄타기로 촉발된 감각이 정확한 과녁을 뚫지 못하고 물음표 속에 남을지라도, <티탄>이 안긴 강렬한 혐오감과 에로스, 포용의 감동은 마법처럼 얽히고설키며 쉽게 휘발되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만들고 루크레티우스가 도입한 개념 중 ‘클리나멘’이라는 말이 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던 원자들 사이에 어느 원자가 불특정하게 방향을 바꾸면 다른 원자와 충돌하며 전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어떤 벗어남을 의미한다. 새로운 인간성을 담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겠다는 1983년생 감독의 야심이 어떤 평가를 받든 이것만은 유효하다. 시네마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고민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줄리아 뒤쿠르노가 가진 욕망과 같은 고집스러운 클리나멘이다.

크로넨버그, 뉴 프렌치 익스티리미티 혹은 새로운 경향

<티탄>과 줄리아 뒤쿠르노를 가장 편리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나 데이비드 린치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이다. 혹은 한동안 두드러지는 작품이 없었던 뉴 프렌치 익스티리미티(New French Extremity, 2000년대 프랑스영화에서 나타난 경향 중 하나로, 강도 높은 섹스와 폭력 묘사를 보여주며 금기를 넘어서는 일련의 작품군들. 클레르 드니의 <트러블 에브리 데이>, 비르지니 데팡트의 <베즈무아: 거친 그녀들>, 알렉산드르 아야의 <엑스텐션>, 마리나 드 반의 <인 마이 스킨>, 파스칼 로지에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같은 작품들을 꼽는다.-편집자) 계보를 새롭게 이어가는 작품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뒤쿠르노 감독은, 특히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를 오마주했다는 흔한 평가를 부정하며 어린 시절 보고 자랐기 때문에 영화적 자양분이 된 정도의 관련이 있을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오히려 그는 <티탄>에 한정해서는 <까마귀 기르기>(감독 카를로스 사우라)의 인간성을 다루는 방식,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만드는 <1917>의 인공적인 조명, 감정이입할 수 없는 연쇄살인범에게 결국 공감하게 만드는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의 영향을 언급한 바 있다. 한편 <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매체는 <티탄>을 뒤쿠르노의 <로우>, 조 비트톡의 <점보>, 안토니 곤잘레즈의 <유 앤 더 나잇> <나이프+하트> 등과 함께 ‘프렌치 펑크 퀴어 웨이브’(French Punk Queer Wave)라는 새로운 조류로 카테고리화했다. “프랑스영화계는 괴상한(queer) 관심을 펑키하고 관습에 거스르는 방식으로 장르영화 제작에 끌어들이는 흥미롭고 새로운 흐름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꽤 하드코어한 장르의 관습은 이 새로운 밀레니엄 영화들에 이르러 신체적 친밀감과 독립성, 섹스 그리고 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을 탐구하기 위해 여성성, 퀴어성 그리고 젠더 벤딩(gender bending, 기존의 성역할이나 외모의 전형적인 모 습을 의도적으로 뒤집거나 뒤섞거나 혹은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한 동시대적 고려로 급부상하고 있다.”

비전문 배우를 위한 트레이닝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관객이 배우를 알아보고 그의 얼굴과 신체가 변형되는 과정에 감탄하지 않기를 바랐다. 캐스팅 디렉터가 성별을 구분짓지 않고 인스타그램과 캐스팅 사이트에서 비전문 배우를 물색한 결과, 양성성을 가진 모델로 선호되어왔던 아가트 루셀을 발견했다. 알렉시아는 쇳덩어리로 사람들을 죽이고 스스로 코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여야 했다. 뒤쿠르노 감독은 아가트 루셀에게 <킬링 이브>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빌라넬, <트윈 픽스>에서 로라 팔머의 무덤 앞에서 분노하는 다나의 연기, <네트워크>의 하워드(피터 핀치)가 생방송 중 분노에 차서 연설하는 장면(“지옥 끝까지 화가 나서 나는 더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을 참고할 것을 권했다. 더불어 공허한 눈빛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사이코패스 영상을 공부하고 스트립 댄스와 폴 댄스, 복싱까지 섭렵하며 오로지 작품 준비를 위해 아가트 루셀이 바친 시간만 1년 남짓이라고 한다. 한편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뱅상 랭동은 6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위해 1년 반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에 매진해 몸을 키웠다. 뒤쿠르노 감독은 그에게 “에이블 페라라 감독의 <악질 경찰>에 나온 하비 카이텔이 연상되도록 황소처럼 우람한 체격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뒤쿠르노 세계에서 순환하는 쥐스틴, 알렉시아 그리고 아드리앵

<로우>
<로우>

줄리아 뒤쿠르노의 여성들은 배우 가랑스 마릴리에 그리고 ‘쥐스틴’이란 이름으로 함께 나이를 먹는다. 단편 <주니어>에서 마릴리에가 연기한 쥐스틴은 13살이었고, <로우>에서는 16살, <티탄>에서는 22살이 되어 알렉시아에게 살해당하는 동료 댄서로 등장한다. 이는 <주니어>의 톰보이가 전통적 의미의 여성성에 눈을 뜨고, <로우>의 소녀가 성인이 되고, <티탄>이 젠더 유동성을 전제로 하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뒤쿠르노 감독은 “가랑스 마릴리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각이 매우 강하다. 엄청난 아이러니와 코미디, 중력을 갖고 함께 놀 줄 안다. 그의 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표현력이 뛰어나다”()며 그가 배우로서 가진 능력을 극찬했다. 쥐스틴의 이름은 사디즘의 유래가 된 작가로 더 유명한 사드 후작의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에서 따왔다. 알렉시아와 아드리앵 역시 반복되는 이름이다. <로우>에서 쥐스틴의 언니 알렉시아는 충동과 동물성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감옥에 가는데, “알렉시아가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면 인간성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티탄>으로 이어져 주인공의 이름이 됐다. <로우>에서 쥐스틴의 룸메이트이자 가장 인간적이었던 캐릭터 아드리앵은 <티탄>에서 실종된 아들의 이름으로 재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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