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웨스턴이 갱신되다
2021-12-10
글 : 남선우
제인 캠피언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 - 뉴 웨스턴이 관객을 사로잡는 방식

두 악기가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한다. 여자가 서툴게 피아노를 두들기자 현란한 밴조 선율이 이내 따라잡는다. 현을 튕기는 이는 재혼한 여자의 새 시숙. 음악으로 말을 거는 그만의 방법일까 싶지만 피아노를 기다려주지 않고 놀리듯 앞서가는 밴조는 심술과 훼방의 도구일 뿐이다. 문을 젖히는 바람 소리가 끼어들어 한결 차갑게 들리는 2분가량의 기묘한 협연은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초반부를 대사 하나 없이 압축한다.

제인 캠피언 감독이 <브라이트 스타> 이후 12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자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한 <파워 오브 도그>는 토머스 새비지의 1967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두 형제와 두 모자의 불편한 동거를 그린 심리 스릴러로서 시동을 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은 1925년 미국 몬태나, 남편을 잃은 로즈(커스틴 던스트)가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와 함께 운영 중인 식당. 이곳에서 버뱅크 형제는 상반되는 면모를 드러내며 로즈에게 각기 다른 인상을 남긴다. 마초적인 카우보이들의 리더이자 말과 소를 다루는 데 있어 누구보다 능숙한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테이블에 놓인 종이꽃을 태연히 망가뜨린다. 땅을 기어가듯 낮게 파고드는 목소리로 주변인을 타박하거나 재촉하는 것도 그의 특기다. 반면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무리를 이끄는 카리스마 대신 목장 경영에 필요한 섬세함을 갖췄다. 그는 형의 언행을 사과하며 로즈의 눈물을 닦는다. 필이 스친 폐허를 수습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일은 그에게 일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토록 지쳐 있다가 만났기 때문일까. 조지와 로즈는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혼인을 약속하는 과정에서 필은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된다. 25년째 동업하고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중년이 되도록 트윈 베드룸을 써온 각별한 형제는 언제 균열이 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래도록 각자의 성격을 고집해왔지만 로즈는 그 차이에 불을 붙인다.

감미롭고도 잔인한

파국은 엔딩에서야 느닷없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그전까지 영화는 느긋해 보일 정도로 끈질기게, 지속적인 파열음을 들려준다. 조지와 결혼 후 로즈는 필을 견뎌야 하는 자리에 놓인다. 괴롭힌다는 표현으로 줄이기엔 너무나 자잘하고 복잡하게 신경을 긁는 필의 악의는 로즈를 알코올중독에 이르게 하고, 술에 의존하는 로즈의 태도는 필이 다시금 그를 비난하게 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피터가 엄마와 새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로즈의 편이 한명 더 생기긴 했으나 이 또한 나날이 로즈의 불안을 가중하고야 만다. 필은 피터가 카우보이들로부터 여자 같다고 놀림받는 걸 두고 보면서, 피터와 둘이 보내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기 때문이다. 두 남자의 동행은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산세의 개 형상으로 상징되는, 미묘하고 긴장감 넘치는 시퀀스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영화는 필과 피터가 각각 혼자 있는 신까지도 중간중간 삽입함으로써 로즈의 짐작 너머에서 지어지는 남자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구축한다. 거친 남자와 그를 따르는 여린 남자가 이해받을 수 있는 공간은 그렇게 입을 벌린다.

캠피언 감독의 영화가 늘 그래왔듯, 그 공간은 조그마한 구멍으로 시작해 천천히 전체를 장악한다. <피아노>(1993)의 첫 장면에서 에이다(홀리 헌터)는 손가락 틈새로 세상을 본다. 6살 때부터 말하기를 거부한 여자의 내면 독백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피아노만이 그의 음성언어를 대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다 악기가 가져다준 비극과 소생으로 맺는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여인의 초상>(1996)은 평범한 결혼이 아닌 “인생의 고락을 체험할 기회”를 바란 이자벨(니콜 키드먼)이 열정에 휩싸여 맺은 혼인으로 예상과 다른 상처를 받아든 후 각성하는 이야기다. 그런 이자벨을 연모하며 멀리서 바라봐온 사촌 랄프(마틴 도노반)는 “이유 없는 고통이란 없다”며 그를 위로한다. <인 더 컷>(2003)도 이에 동의하는 듯하다. 작문 교수 프래니(멕 라이언)는 이웃집 여자가 살해된 후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말로이(마크 러팔로)와 에로틱한 관계에 몰두한다. 마초적인 남자와의 섹스에서 쾌감을 느끼는 프래니는 동시에 그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영화는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프래니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이성애자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혼란을 견디며 연명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욕구를 탐험해온 제인 캠피언 감독에게 여성의 결핍이란 남성에 의한 구원 대상이 아닌 여성 자신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원료이자 삶을 추동하는 핵심으로 기능해왔다. <피아노>에서 에이다가 진심으로 베인스(하비 카이텔)를 사랑했을까. 그저 베인스만이 에이다의 탈출구였던 것은 아닐까. <여인의 초상>은 또 어떤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이자벨은 오스먼드(존 말코비치)의 음모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선전하듯 내세우는 지성과 취향, 상대적 가난을 매력으로 여긴다. 제인 캠피언의 여자들은 관객이 계속해서 그의 속내를 질문하게 만든다. 성적 욕망도 직선적인 형태만을 띠지 않는다. 그것이 이상한 모양으로 발휘될지라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여자들의 몸짓은 제인 캠피언 영화의 주된 동력이었다. 그의 영화에서 여자주인공들은 유혹하는 남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기주장을 확실히 했고, 그 결과로 비참해지는 한이 있어도 욕망을 그르치지 않았다. 여성이 마초를 탐닉하거나 성적인 ‘거래’에 동의하는 것이 짐짓 문제적으로 비칠지언정 문제 그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파워 오브 도그>는 제인 캠피언의 남성 인물 유형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분기점처럼 읽힌다. 여기에는 자기가 유혹당하는지도 모르고 제 발로 덫에 걸어들어온 남자가 전면에 나온다. 한 여자(로즈)와 세 남자(필, 조지 그리고 피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필, 그러니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영화다(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필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말 타는 연습은 물론 1920년대 몬태나 사투리와 밴조 연주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캠피언 감독의 고향 뉴질랜드 남섬(South Island)을 로케이션 삼아 미국 북서부를 재현한 <파워 오브 도그>에서 유독 찬란한 빛으로 묘사되는 장면의 주인도 주로 필이다. 여느 웨스턴처럼 <파워 오브 도그>에서도 자연은 단지 공간적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지형과 짐승은 인물의 삶을 통제하면서도 달랜다. 필은 호숫가에서 목욕을 하고, 풀밭에 나체로 드러누워 햇살을 껴안는다. 빛바랜 헝겊을 허공에 흔들다 바지춤으로 들이민다. 아지트에서만큼은 시종 벗겨질 것 같지 않던 딱딱한 껍질을 잠시 내려놓고 아보카도 속처럼 물러진다. 그런 그를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가 숨겨둔, 남성 모델들의 육체미를 부각한 책자들을 찾아내는 이는 ‘낸시’라고 불리는 소년 피터. 필이 입이 마르게 부르짖던 옛 동료 ‘브롱코 헨리’가 이상적 카우보이의 원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확신은 피터에 의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외과 의사를 꿈꾸며 해부에도 도전하는 등 손재주를 가꿔온 피터는 필에게 가죽 밧줄 만들기를 제안하며 비밀스런 밤을 꾸민다. 1920년대 서부의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하고, 감미롭고도 잔인하게.

미투 이후의 뉴 웨스턴

토머스 새비지의 1967년작 소설 <파워 오브 도그>는 2001년 재출간되면서 작가 애니 프루의 해설을 실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쓴 소설가 애니 프루는 <파워 오브 도그>의 “동성애 문제를 외면한” 1960년대 후반 평자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 작품을 한편의 심리연구서라 지칭하며 그 테마를 분명히 밝힌다. “그 주제란 다름 아닌 남성성이 지배하는 세계인 목장에서 동성애 혐오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억압된 동성애다.” 소설도 마지막인 14장에 이르러 안타고니스트의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정리한다. “그(필)는 세상을 혐오했다,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 소설도 영화도, 모든 걸 아주 은근한 어투로 조심스럽게 암시한다. 그의 비대한 남성적 자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립된 것인지 제시하면서 그가 그 외피를 앞세워 감추려는 사실이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브롱코 헨리의 이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 함축한다.

<파워 오브 도그>가 디나이얼 혹은 클로짓 게이의 정체성을 빌려 남성성의 일면을 설명하고자 한 것은 새롭지 않지만 제인 캠피언 감독이 이를 시도하게 된 계기와 맥락은 최근의 영화사와 조응한다.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캐나다인 프로듀서 로제 프라피에를 만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상의한 제인 캠피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이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기를 거치며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남성성이라는 다층의 양파 껍질을 벗겨내주었기에 나 같은 늙은 전사가 <파워 오브 도그> 같은 남성 서사를 탐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것.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캠피언은 리허설 과정에서 남성 캐릭터에 빙의한 듯 글을 쓰는 경험까지 했다. 그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필이 브롱코 헨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보라고 주문했고 그 자신이 브롱코 헨리가 되어 답장을 썼다. “브롱코 헨리의 위대한 점은 그가 영화 속 어디에도 없는 동시에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령 혹은 미스터리이자 현재에 분출될 수 없는 과거 그 자체다. 그를 영화에 등장시키기보다 오직 필의 감정과 생각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브롱코 헨리가 필을 장악하는 힘, 브롱코 헨리가 이야기를 홀리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캠피언은 <파워 오브 도그>를 “유령 이야기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라며 얼굴 한번 비추지 않고 영화를 장악하는 브롱코 헨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명한 셈이다.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가 소박한 요리와 인종 초월 우정을 빌려 서부극을 다시 쓰고,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고용불안 시대의 여성을 따라가며 현대 시점의 서부를 재구성했다면, <파워 오브 도그>는 유해한 남성성의 뿌리에 자리했을 거부의 경험을 탐구해 한 사람의 카우보이를 깊이 본다. <더 하더 데이 폴>이 흑인 중심의 웨스턴을 구현하고,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아메리카 선주민들에 의해 길러진 소녀를 초대하고, <미나리>가 동양인 가족의 남부 정착기를 선보이며 매개한 동시대적 감각은 1967년에 쓰인 소설을 각색한 <파워 오브 도그>로 한겹 더 두터워졌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의 재료들을 마주할 때 어떤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정복하고 싶어진다”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용기로 가능해진 이 지층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알 수 없지만, 제인 캠피언의 다음 작품을 만나기까지 부디 12년보다 짧은 시간이 필요하기 바란다.

<파워 오브 도그>와 원작자 토머스 새비지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세밀했으며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제인 캠피언의 직감은 적중했다. <파워 오브 도그>는 토머스 새비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알려졌다. 그는 2살 무렵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5살 되던 해 어머니가 몬태나주의 목장주와 재혼하면서 말과 양에 둘러싸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필의 모델이 된 이는 새비지의 새 큰아버지, 즉 양아버지의 둘째 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를 비롯해 <파워 오브 도그> 속 캐릭터들의 원형과도 같은 가족 군상이 (훗날 <양들의 제왕>으로 제목이 바뀌는) <누나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등의 소설들에도 등장한다. 여러 차례 픽션으로 그를 소환한 토머스 새비지를 향해 작가 애니 프루는 “자기 어머니의 숙적을 제거한 가공의 인물 피터 고든만큼이나 확실하게 그 남자를 다시 죽이는 셈”이라며 그 집요한 서술에 탄복하기도 했다. 2003년 사망하기까지 토머스 새비지는 총 13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파워 오브 도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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