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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사람들 사이를 걷다
2021-12-24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연말은 방송사 시상식과 ‘올해 최고의 프로그램’ 투표 시즌이다. 그런데 사실 요즘 내가 가장 기꺼이, 구석구석 재방송까지 찾아보는 프로그램은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다. 방문하는 공간과 주민들을 존중하며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이 프로그램의 특별함이다. “테레비서 많이 봤다”라며 반기는 노인부터 대뜸 “사딸라!”를 외치는 어린이, 가게 앞에서 채소를 다듬다 “여긴 어쩐 일이셔?”라며 일어나 손을 내미는 식당 주인까지, 김영철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거리의 예능이었던 시절 유재석만큼이나 어딜 가든 환영받는 스타다. 골목에서 마주하는 풍경마다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누구에게든 편안히 말을 붙이는 그는 농촌에 가면 도리깨질을, 산촌에 가면 시래기 말리기를 도우며 사람들과 섞여든다. 어떤 음식을 먹든 정성 들인 덕담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대단히 멋지거나 세련된 명소가 아니더라도 그곳을 운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정중함은 60대 후반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미덕이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 부나 명예를 떠나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제작진은 그들 각자의 힘들고 기뻤던 기억에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 그렇게 찾아간 ‘동네’에는 29년 된 식당, 46년째 과자를 굽는 가게, 130년간 대를 이어온 솜틀집이 있고 수십년 동안 이웃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사라지고 잊히겠지만,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보는 동안만큼은 세상에 아직은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이들은 신나게 재잘대며 자란다는 걸, 노인들은 느린 걸음으로 계속 살아간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김영철이 느릿한 어조로 “오늘도 무던히 걸었습니다. 걸어온 길보다 가보고 싶은 길이 더 많은, 참 좋은 동네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동네는 참 좋은 동네일 거라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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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EBS1)

흥 많고 친화력 뛰어난 중식 전문가 신계숙 교수가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전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그가 농어촌의 노년 여성들로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웃게 만들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과정에 담긴 환대의 마음이 귀하게 드러난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시즌2가 방송됐고 요즘은 EBS1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재방송된다.

<먹보와 털보> (넷플릭스)

가수 비와 방송인 노홍철이 바이크를 타고 국내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맛집을 찾아다닌다. 지역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해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하다면 어떤 아름다운 풍광과 맛있는 음식, 쉼 없이 쏟아지는 말이 있더라도 지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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