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자리한 오래된 작업실에서 한 노년의 사진가가 나지막이 말한다. 그의 이름은 사울 레이터, ‘컬러 사진의 선구자’ , ‘거리 사진의 대가’라 불리는 은둔의 사진가다. 1923년에 태어나 1940년대에 뉴욕으로 건너온 그는 뉴욕의 일상을 소재로 사진을 찍으며 사진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생계를 위해 오랫동안 패션 잡지에 실리는 상업사진 촬영을 병행해온 그가 예술가로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 그가 80대가 되어서다. 세속적 성공이나 화려함에 대한 추구와는 거리가 먼 그의 삶처럼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담백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사로잡는다.
토마스 리치 감독의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는 ‘뉴욕이 낳은 전설’이라 불린 사진가 사울 레이터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토드 헤인스 감독이 영화 <캐롤>을 만들 때 영감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진 레이터의 작품들은 50~60년대 뉴욕의 일상 풍경을 감각적으로 담고 있다. 영화는 레이터의 작품 세계를 모르던 이라도 어렵지 않게 그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1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꾸밈이나 거짓 없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는 노년 예술가의 소탈함이 포근한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며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