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들리 스콧의 20년 프로젝트였던 이유
<하우스 오브 구찌>의 서사는 구조적으로 볼 때 승계와 전복, 몰락의 서사가 어우러진 왕가의 대서사시와 닮았다. 어이없게 어리석은 일이 벌어져 모든 것이 망가진다는 점까지도 그렇다. 실로 구치가는 패션계의 왕조라 할 만했고,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던 명품 패션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의 먹잇감이 되는 시대적 역동 속에서 함께 절멸했다. 구치의 행보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스포르차 가문처럼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믿었으나 결국 장인 정신을 져버리고 만 자기 배반의 역사이기도 하다. 각본가인 로베르토 벤티베그나는 이를 하나의 아이러니로 일축한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스스로 일궈놓은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서로를 비난한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의 싸움이 대개 이러한 모양새라지만, 구치 일원들은 자신들이 부호인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하다는 마음 저편의 믿음 때문에 한결 더 복잡하게 불행해졌다.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억압받는 한편 동경의 상태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재벌가 아들들의 콤플렉스도 이 지점에서 서글픈 뉘앙스를 얻는다. 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점차 권력을 상실한 기득권의 숙명이란 피할 데 없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법이다. 장대한 실화 서사에서 시각적 모티프를 추출해 이를 극대화하길 즐기는 리들리 스콧에게 <하우스 오브 구찌>는 자신의 관심사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인 패션의 세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최상의 쇼케이스였다.
2. 분장과 메소드가 배우를 움직이는 방식이란
<하우스 오브 구찌>가 캐릭터를 조형하는 방식은 과장된 캐리커처에 가깝다. 외양부터 실존 인물들에 대한 고증적 묘사를 애초에 과감히 포기한 결과, 실제 구치가에서는 ‘영화 속 알 파치노보다 우리의 아버지 알도 구치가 훨씬 더 멋지고 잘생겼다’는 (영화 팬들이 듣기엔 민망하기 그지없는) 볼멘소리까지 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알도 구치의 아들 파올로는 출연 사실을 알고도 배우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극단적인 분장과 코믹적 터치를 더한 결과물이다. 자레드 레토는 구치가의 걸출한 초상들 중 상대적으로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던 파올로에게서 애수 어린 눈빛을 발견했고 그 근원에서 굴욕감, 비굴함, 피해의식 같은 내면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감정들을 읽어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챕터27> <블레이드 러너 2049>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에서 자주 그러했듯 자레드 레토는 이번에도 피사체로서 자신의 가장 큰 장기라 할 수 있는 유달리 푸르게 빛나는 두눈만을 남겨두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작정한다. 알리 압바시 감독의 스웨덴영화 <경계선>, 애덤 맥케이의 <바이스> 등에서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분장 실력으로 활약했던 스웨덴 분장감독 고란 룬드스트롬의 손길 아래 매일 새벽 4시30분부터 수시간에 걸친 분장이 이루어졌다. 알 파치노는 촬영 첫날 자레드 레토가 “안녕, 아빠”라고 인사하며 다가올 때 “촬영장에 미친 침입자가 들어온 줄 알고 당황스러워서 주변 스탭들에게 눈짓을 했을 정도”라고 자못 진지하게 회상하기도 했다.
현장에서의 무례한 기행이 회자될 정도로 메소드 연기를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논란의 배우, 자레드 레토는 <하우스 오브 구찌> 촬영장에서만큼은 환대와 영감의 대상이었던 듯싶다. 분장과 의상은 배우가 자아를 비우고 역할로 살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일부이고 때로는 배우 자신이 더 극적인 분장을 자처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몰입을 돕는 도구라는 사실에 레이디 가가 또한 동의했다. <스타 이즈 본> 이후 두 번째 영화에서 또다시 작품의 심장을 맡은 레이디 가가에겐 논쟁적인 실존 인물의 매력적인 재해석이라는 과제가 막막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화려한 페르소나를 즐겼던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외양적으로도 꽤나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 캐릭터였다. 살인 청부 혐의로 법정에 소환되었을 때 몸에서 온갖 장신구를 걷어내고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한 와중에도 신발만큼은 13cm가 훌쩍 넘는 높은 뮬을 신고 나타난 일화가 파트리치아의 콤플렉스와 자기 해석을 잘 보여준다. 210mm의 작은 발과 그에 맞게 아주 작은 키, 꾸미지 않으면 수수한 인상의 소유자였던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스타일과 제스처를 통해 본래의 자기에게 없는 크고 매서운 존재감을 창조하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배우 이전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 또한 한때 피가 뚝뚝 흐르는 생고기를 몸에 두르고 자신을 전시할 만큼 과감한 셀프 브랜딩의 귀재 아니었던가. 배우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던 아주 오래전부터 실은 다른 페르소나가 되기 위한 메소드의 과정에 익숙해져왔다는 사실을, 레이디 가가는 <하우스 오브 구찌>의 파트리치아를 만나며 뒤늦게 자각했다.
3. 왜 <올 더 머니>보다 아우라가 부족한가
리들리 스콧에겐 일면 수집가의 마인드가 있다. 때로는 일관성의 미덕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을 정도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한 시대배경과 장르를 구현하려는 야망으로 펄떡인다. 정확히 그는 자신이 창조한 새 이미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유의 감독이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방송국의 미술 스탭으로 일한 그는 예술적인 영상 CF를 연출한 첫 세대다. 괴수물(<에이리언>), 시대극(<글래디에이터>), SF(<블레이더 러너> <마션> <프로메테우스>), 전쟁(<블랙 호크 다운> <킹덤 오브 헤븐>), 판타지(<레전드>), 로맨스(<어느 멋진 순간>) 등 장르의 무대를 드넓게 활보한 궤적 중 <하우스 오브 구찌>와 비교해볼 만한 이력은 2017년작 <올 더 머니>다. 석유 부호 J. 폴 게티의 손자 유괴 사건의 전모를 다룬 이 작품 역시 가족과 혈연으로 세워진 울타리가 탐욕으로 인해 부서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올 더 머니>에는 있고 <하우스 오브 구찌>에는 없는 것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소유하고도 돈에 관한 한 언제나 “더”(More)를 외치는 남자에게 <올 더 머니>는 중후한 아우라를 부여하고 부패한 세계에의 매혹을 시인한다. 그는 풍자나 비판의 대상이기 이전에 남달리 맹렬한 집념과 정념을 가진 불세출의 인물이었고, 리들리 스콧의 스크린 안에서만큼은 시네마틱한 초상으로 호출된 듯 보였다. 그러나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리들리 스콧은 감정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한결 건조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인물들을 스케치한다. 애덤 드라이버, 알 파치노 등이 상대적으로 힘을 빼고 연기하는 지도 위에서 레이디 가가가 한껏 매력과 열성을 발산하지만, 영화는 그가 구치가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반전을 이끌어낼 때에도 결코 신격화되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르러 집착과 파괴심으로 무너져내리는 밀도 높은 감정적 드라마가 펼쳐질 때조차 카메라는 오히려 새로운 유혹에 빠진 마우리치오의 세계에 더 오래 머무른다. 결코 아버지들을 능가하지 못했던 부족한 아들들의 서사이기도 한 <하우스 오브 구찌>는 파트리치아를 묘사할 때 역시 그녀가 가진 한계와 어리석음 앞에서 자주 머뭇거린다. 감독 자신이 “비극으로 치닫는 실수의 희극”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하우스 오브 구찌>는 덜 웅장하고 오페라틱한 대신, 차라리 경쾌하고 우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