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키워드로 보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와 실화 사이의 복잡다단한 진실
2022-01-12
글 : 김소미
영광과 몰락, 사랑과 배신의 날들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브랜드의 세계적 명망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족 갈등과 탈세, 무리한 라이선스 확장 사업이 동반되던 1970년대 후반 무렵에서 출발한다. 창립자 구치오 구치의 두 아들 알도(알 파치노)와 로돌프(제러미 아이언스)가 경영권을 나눠 가진 상황. 알도의 아들 파올로(자레드 레토)는 디자이너가 되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는 패션 제국을 물려받는 일보다 법률 공부에 관심을 쏟는다. 구치가를 물들인 야망과 죽음의 서사는 마우리치오가 운송 회사의 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남몰래 싹을 틔운다. 로돌프의 반대에도 결혼을 감행한 이후 파트리치아는 알도와 공조해 마우리치오가 구치 가문의 리더가 되게끔 인도하지만 훗날 마우리치오는 외도와 함께 이혼을 요구한다. 구치가에서 배제된 파트리치아를 잠식한 것은 갖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없애버리겠다는 파괴심이었다.

#토스카나 사람들

작가 사라 게이 포든은 소설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마우리치오 구치와 그의 가문을 이해하려면 토스카나 지방 특유의 기질부터 알아야 한다”라고 썼다. 단테와 현대 이탈리아어의 고향이라 불리는 토스카나의 명성에 큰 자부심을 품은 토스카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탈리아 문화와 예술의 원천”이라 생각하며 ‘이탈리아의 프랑스인’이라고도 불린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구치 일가 특유의 괴팍함, 열정, 직설적 성격, 쉽사리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기복과 인간미는 이런 이상형과도 부합한다. 상인의 도시, 피렌체 출신인 브랜드 창립자 구치오 구치(1881~1953)는 “모름지기 피렌체 상인이라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외국 문물과 외국인을 접하고 한 재산 챙겨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비단 상인 그레고리오 다티의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19세기 말 밀짚모자 사업을 하다 파산한 집에서 도망쳐나와 영국 사보이호텔에 취직한 그는 상류사회의 인장과 같았던 가죽 트렁크와 슈트 케이스, 모자 상자에서 영감을 얻었다. 젊은 야심가는 착실하게 자금을 모은 뒤 1921년 피렌체로 돌아와 ‘발리제리아 구찌오 구찌’라는 고급 가죽용품점을 세웠고, 이것이 브랜드 구찌의 연원이다.

#알도 구치의 흥망성쇠

구치오 구치의 아들 중 탁월한 사업가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는 알 파치노가 연기한 인물, 알도 구치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국제연맹이 이탈리아로의 수출 금지령을 내리자 제품 제작에 위기가 닥친다. 알도가 묘수를 내 비교적 저가 재료인 대나무, 황마, 리넨 등으로 가방을 새롭게 디자인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브랜드의 전성기를 부르는 돌파구가 된다.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뱀부백은 2021년 새 컬렉션에서도 끊임없이 재해석될 만큼 구찌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영화에서는 1953년 이탈리아 브랜드로는 최초로 뉴욕 58번가 사보이플라자호텔에 진출하고 1960년대 후반에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홍콩과 도쿄에 매장을 내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에 공격적이었던 알도의 궤적이 담긴다. 그의 이런 공격적인 성향과 배포는 이후 라이선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구찌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700여쪽에 달하는 소설을 추리는 과정에서 이 지점을 부각한 리들리 스콧의 선택은 야심가 알도와 파트리치아의 공통점, 그리고 이후 이어질 파트리치아의 몰락까지 암시하는 데가 있다.

#로돌프의 영화 사랑

원래 가업에는 무심했던 로돌프 구치는 호텔 로비에서 이탈리아 감독 마리오 카메리니의 눈에 들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철로>(1929)에서 무성영화 시대 배우의 미덕에 걸맞은 양식적이고도 섬세한 표현으로 호평받았고, 나중에 아들의 이름으로 붙여준 마우리치오라는 예명도 이때 처음 쓴다. 로돌프의 배우 생활은 유성영화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로셀리니, 비스콘티, 펠리니 같은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더이상 그와 같은 배우를 선호하지 않으면서 막을 내린다. 가업에 복귀한 로돌프는 (제러미 아이언스를 캐스팅한 것이 더없이 적절하게도) 타고난 매력과 수려한 매너, 세련된 취향을 발휘해 금세 성과를 낸다. 피렌체 매장을 방문한 배우 그레이스 켈리(당시 모나코 왕비)가 선물용으로 꽃무늬 스카프를 고르자 그가 즉흥적으로 고안해낸 ‘플로라’ 패턴은 이후 구찌의 시그니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파트리치아의 명과 암

레이디 가가는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를 연구하면서 마우리치오와 처음 결혼을 결심할 무렵의 파트리치아는 분명 돈이 아닌 사랑에 더 집중했을 것이라 믿었다. 그만큼 로돌프는 파트리치아를 철저히 무시했고, 마우리치오를 가업에 손대지 못하도록 내쳤으므로 젊은 부부에게 부와 명성은 쉽사리 꿈꾸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화와 달리 파티에서 파트리치아에게 반해 먼저 구애를 한 것도 마우리치오였다. 훗날 파트리치아의 명성이 높아진 뒤에야 그가 젊은 시절부터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꿨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퍼져나왔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과 레이디 가가는 파트치리아가 경영권에 간섭하고 마우리치오를 닦달하는 모습에서 탐욕만이 아닌 열정을, 엄연한 가문의 일원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인정욕을 새겨넣었다. 영화 공개 이후 구치가는 성명서를 내고 지나치게 주인공 중심적인 해석이 모욕적이라며 크게 반발을 표했다.

#왕자의 난에 가려진 공주의 소외

구치 패밀리의 갈등은 주로 왕자의 난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서 완전히 배제된 구치오 구치의 맏딸 그리말다의 스토리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순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상속에서 배제됐다. 평생 구찌 매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했고 그의 남편은 1924년 구치가 현금 부족으로 급작스러운 파산 위기를 겪을 때 구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구치오 구치는 죽기 직전 아들들에게 절대로 여자가 회사 경영권을 상속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불문율을 내렸다. 그리말다는 심지어 남동생들이 사업 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도록 막기 전까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홀스빗 로퍼의 운명

구찌의 상징인 홀스빗 장식은 특히 로퍼에서 빛을 발한다. 1953년에 구찌가 홀스빗 로퍼를 발표한 이후 존 웨인, 클라크 게이블, 프레드 아스테어 등 유행에 민감한 당대의 스타들이 앞다투어 로퍼로 멋을 냈고, 1960년에는 르네 클레망 감독이 나폴리를 배경으로 제작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의 아이템으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에서 알도와 마우리치오가 언급하듯 이 로퍼는 1985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고 있다. 가문과 브랜드의 자부심과도 같은 로퍼를 바레인에 소재를 둔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 그룹에 선물하는 순간은 그래서 매우 상징적이다. 박물관에서 나온 로퍼가 자본주의의 첨탑으로 향하는 이 순간 이후, 인베스트코프는 알도와 파올로의 주식을 차례로 매수하고 1993년에는 나머지 50%를 갖고 있던 마우리치오의 것까지 사들인다. 토스카나 사람들의 가업이 글로벌 거대 기업에 편입된 것이다.

#제트족의 우상, 톰 포드의 등장

넘쳐나는 가품과 라이선스, 그리고 올드한 이미지로 부침을 겪던 구찌에 신인 톰 포드가 나타났을 때, 그의 나이는 29살이었다. 1990년 디자인팀에 합류한 텍사스 출신의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는 1994년에 디자인 총괄이사가 될 정도로 빠르게 승진하며 과감한 행보로 구찌를 이끌었다. 그의 구찌는 세련된 섹시함으로 무장해 구릿빛의 부드럽고 중후한 유산에 현대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구치가 더이상 가족 기업이 아니게 된 이후에도 1995년 톰 포드의 F/W(가을/겨울) 컬렉션 젯셋 글래머 테마가 대히트하면서 90년대 후반의 구찌는 승승장구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가 패션쇼 도중 유일하게 웃은 순간이 톰 포드의 구찌 쇼를 볼 때였다는 전설도 있다. 영화 속에서 톰 포드는 쇼가 대성공을 거둔 것을 확신하고 “오스틴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뛰어간다. 같은 해 11월, 마돈나는 톰 포드의 구찌 스타일로 꾸며 입고 MTV 무대 위에 올라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다.

#마우리치오의 죽음

1995년 3월27일, 소설 <하우스 오브 구찌>는 첫장에서 어느 아침의 풍경과 공기를 매우 소상히 묘사하고 있다. 영화 오프닝이기도 한 이 장면에서 리들리 스콧은 소설에서 강렬하게 얻은 영감을 숨기지 않는다. 카페테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고 밀라노 사무실로 출근하는 마우리치오의 아침은 오프닝과 엔딩에서 두번 반복된다. 마우리치오가 구찌의 경영권을 모두 주식회사에 넘기고 새 연인과 허무감을 달래던 이 시기, 그에게 배신당하고 뇌종양 수술까지 한 파트리치아는 남몰래 청부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마우리치오처럼 치사하고 비열한 인간이 50m짜리 요트와 개인 비행기, 고급 아파트와 페라리 테스타로사 같은 것들을 누려서는 안된다.” 영매 피나(살마 아예크)를 불러 묘약과 저주를 사용하는 것에서 멈출 수 없었던 파트리치아는 결국 약 600만리라(당시 약 4억6천만원)를 치르고 마우리치오의 살인을 교사한다. 그날 아침, 마우리치오는 사무실 건물 출입구에서 6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다.

#파트리치아의 현재

올해 72살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1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2016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자신의 입장을 일면 대변해주었음에도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에 관해서는 구치가의 공식 입장과 마찬가지로 리들리 스콧을 강하게 비난했다. “가족의 정체성을 빼앗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했다”라는 게 그 이유다. 리들리 스콧은 라디오에 출연해 “세계적 브랜드 가문의 일원이 탈세로 감옥에 가거나 피살을 당하는 사건을 한 가족의 개인사라고만 볼 수 없다”라고 입장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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