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위선에 빠진 인물을 위악적으로 몰아붙이는 신랄함 '프랑스'
2022-01-12
글 : 남선우

코로나19 확진으로 레드 카펫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명감독들의 스크린에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초대받은 배우 레아 세두는 지난해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 네편의 출연작(<프랑스> <프렌치 디스패치>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 <디셉션>)을 선보였다. 그중 무려 세편(<프랑스> <프렌치 디스패치>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이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주연을 맡은 작품 또한 세편(<프랑스>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 <디셉션>)이다. 작품성의 우열을 두고는 견해가 갈리겠지만 ‘레아 세두의 영화’로 남을 한편을 꼽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레아 세두가 양극의 이미지를 앞뒤 양옆으로 조립해 타이틀 롤로 군림한, 브루노 뒤몽 감독의 신작 <프랑스>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배경인 국가의 이름이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영화는 지체 없이 제목을 띄운 뒤 기자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와 프랑스 대통령의 대면 장소로 이동한다. 여러 언론사가 참석한 회견임에도 특유의 태도와 언변으로 이목을 끈 프랑스는 헤드라인에 언급될 정도의 스타 기자다. 그의 주 무대는 단독으로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 <세계를 향한 시선>. 프랑스는 호스트로서 국제사회 이슈를 브리핑하고, 주요 정치인들을 상대한다. 숱 많은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긴 채 턱을 한껏 끌어당긴 프랑스의 얼굴은 쇼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그 자체로 방송사의 간판이다. 이처럼 저널리스트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그는 나름의 균형을 갖춘 프로페셔널처럼 보인다. 스튜디오에 앉아 토론을 주도하는 프랑스가 냉철하다면, 카메라에 담길 취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그는 열성적이다. 필요하다면 사헬 지역의 폭탄 사이를 뛰어다닐 수도, 르완다 난민들 곁에서 곧장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그는 촬영과 편집까지 두루 챙기며 화면에 담길 자신의 모습을 기획하는 데 능숙하다. 물론 그의 일상도 완벽하지만은 않다. 소설가인 남편과는 미적지근한 관계를 유지 중이며 어린 아들은 학업에 전혀 열의가 없다. 두 남자는 프랑스가 하는 일에도 크게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가정에서가 아닌 길 위에서 발생한다. 프랑스가 운전 중에 일으킨 작은 교통사고가 뉴스가 되면서부터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부상을 입힌 배달원은 모로코계 이민자 출신 남성. 사건을 보도하기만 했지 당사자가 된 적 없었던 프랑스는 당황한 채 어떤 선택을 내리고, 이 과정에서 점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프랑스는 후퇴와 재기를 거듭하며 TV 안팎을 혼란스럽게 유영하고,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프랑스어로 죽음을 뜻하는 동사의 1인칭 단수형(Meurs)을 성으로 가진 인간답게, 시시포스처럼.

<프랑스>는 위선에 빠진 인물을 위악적으로 몰아붙이는 신랄한 영화다. 한 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로도 미디어 생태계 속 군상에 대한 풍자로도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감독 브루노 뒤몽은 자신의 관심이 “오직 프랑스라는 인물의 내면에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1997년 <예수의 삶>으로 장편 데뷔 후 <휴머니티>로 제52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브루노 뒤몽 감독은 인간 실존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던 초기작을 넘어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등의 작품으로 환상성을 겸비한 블랙코미디의 거장으로도 평가받았다. 감독의 말대로 <프랑스>는 타인의 고통을 중계하던 개인이 그 타인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게 되고, 자신 또한 고통과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의 균열을 근거리에서 묘사한다. 관객은 인물의 양면성을 두루 경험하며 자연스레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탐색은 고매함부터 부박함까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는 레아 세두 덕에 지루할 새가 없다. 세두의 프랑스는 후반부에 이르러 이상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거울 쌍과도 같은 두 인물의 만남은 끝내 제한된 역할로 인한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진보와 이상의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며, 현재성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CHECK POINT

기자의 런웨이

프랑스 국기의 빨강과 파랑을 한데 섞은 듯한 보랏빛 패션은 기자 프랑스의 트레이드마크. 그는 특히 방송에 나설 때 자주색을 즐기는데, 스튜디오 밖에서만큼은 내면에 충실한 복장을 선보인다. 톤 다운된 착장으로 사고 피해자를 만나다가도 호피 스카프, 뱀 비늘 같은 스팽글 외투를 걸친 채 잠재된 야성을 떨치기도.

깜짝 등장 마크롱

<프랑스>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익숙한 얼굴이 등장한다. 바로 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기자 프랑스와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사실 아카이브 푸티지를 활용해 만들어낸 것으로 이미지를 교묘히 합성해 편집한 결과물이라고.

잔 다르크의 환생?

브루노 뒤몽 감독은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2017)과 <잔 다르크>(2019)로 잔 다르크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두 작품은 샤를 페기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았는데, <프랑스> 또한 실존을 고민하는 입체적 여성 인물을 내세우며 샤를 페기의 시구를 원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현대판 <잔 다르크>’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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