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원작의 음악에는 시대를 초월한 힘이 있다"
2022-01-14
글 : 이주현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터미널> 등 대표작을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인 이 시대 가장 성공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뮤지컬영화를 연출했다. 원작 뮤지컬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그는 현 시대를 향한 메시지까지 힘 있게 담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적인 영화 한편을 선물한다. 10살 때부터 듣고 자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부터 20세기 원작을 21세기에 다시 꺼낸 이유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란히 앉아 차 한잔한다 생각하라”라며 인터뷰어의 긴장까지 풀어준 그는 친절하고 다정한 영화 거장이었다.

- 예전부터 뮤지컬 장르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나.

=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반복되는 질문을 받아왔다. 당신이 만들고 싶었으나 아직까지 만들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40년이 넘게 나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대답해왔다. 마침내 뮤지컬영화를 만들게 되어 나 역시 영광스럽다. 수십년 만에 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

- 처음 경험해본 뮤지컬 장르는 어땠나. 예상보다 힘들었나. 아니면 재밌었나.

= 정말 재밌었다. 지금까지 만든 다른 영화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들면서 5개월 동안 리허설을 진행한 것이다. 전에는 이런 리허설을 해본 적이 없다. 촬영 들어가기 전 5개월간 댄스 리허설, 연기 리허설, 카메라 리허설을 했고, 녹음실에서 각 파트의 연주자들, 배우들이 모여 뮤지컬 트랙을 녹음했다. 나중엔 거의 뮤지컬 장르의 베테랑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춤과 노래와 연기 등 사람들을 트레이닝시켜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 또한 트레이닝해야 했다. 리허설 기간이 길었던 건 노래와 안무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안무가 저스틴 펙이 안무를 맡았는데,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안무가다. 제롬 로빈슨의 오리지널 안무에 바탕을 두고 저스틴 펙이 새롭게 춤을 디자인했다. 댄서들이 안무를 소화하기 위해 장시간 훈련하는 동안 나는 뮤지컬 넘버들을 어떻게 찍을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단지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라고 하고 그걸 그대로 찍을 수는 없지 않나. 이건 무대 공연이 아닌 영화니까. 이번 영화에서 나의 카메라는 퍼포머들과 매우 상호적이었다.

-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원작 뮤지컬, 로버트 와이즈와 제롬 로빈스가 연출한 1961년의 영화에 대한 애정도 각별한 것으로 안다.

= 뮤지컬이 처음 무대에 오른 때부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나와 여동생들을 뉴저지에서 애리조나까지 데리고 갔고, 음반 가게에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을 사줬다. 그 앨범을 듣고 또 들었다. 곧장 사랑에 빠졌다. 그 음악과 뮤지컬의 이야기에. 그때 나는 겨우 10살이었다. 하지만 그 음악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이후 영화감독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겼는데, 내 아이들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우리 가족 모두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모든 노래, 모든 가사를 기억한다. 1961년작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제롬 로빈스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다.

- <뮌헨>(2006)과 <링컨>(2013)을 함께한 각본가 토니 쿠슈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각본을 썼다. <링컨>을 만든 이후 토니 쿠슈너에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각본을 부탁했다고.

= <링컨>을 만들 때 토니에게 말했다. 그때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영화화 권리를 가지고 있진 않았는데, 만약 우리의 버전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만든다면, 그래서 내가 영화화 권리를 갖게 된다면 이 영화의 각본을 쓰는 데 관심이 있느냐고. 그는 즉시 좋다고 대답했다. 토니 쿠슈너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말하는 것, 1957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를 빌려 오늘날의 시대를 말하는 것 모두에 관심이 있었다. 오늘날 미국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인종차별이라든지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 등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8, 9년쯤 전부터 이 나라는 분열되고 추해지기 시작했다. 토니 쿠슈너 역시 이건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고 느꼈다. 연극 <미국의 천사들>(Angels in America)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한 토니는 훌륭한 협력자이자 이 나라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이다.

- 잠깐 언급해주었지만, 20세기의 시대상이 반영된 원작을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다시 선보이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어쩌면 우리가 처한 상황은 20세기보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원작 뮤지컬을 탄생시킨 4명의 천재, 스티븐 손드하임(작사), 레너드 번스타인(작곡), 제롬 로빈스(안무·연출), 아서 로렌츠(극작)가 처음 이 이야기를 품었을 때보다도 사회의 갈등과 차별은 더 깊어졌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인본주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불어 원작의 음악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특별함이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추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의 전반부는 삶을 축하하고 다양성을 축하한다. 그런 다음 알다시피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비극이 시작되기 전에는 삶을 찬양하는 이야기다.

-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가 영화의 중심을 잡고 간다.

= 이번 영화는 내가 만든 가장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다.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라는 점에선 <타이타닉>의 엔딩과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몇편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지만,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러브 스토리는 영화가 아니라 아내 케이트와 결혼해 우리 두 사람의 사랑으로 7명의 자녀, 5명의 손주들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게 내가 관여한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웃음)

- 1957년 뉴욕 어퍼 웨스트 사이드가 영화의 배경이다. 실제 뉴욕 거리에서 다수의 장면을 촬영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 다행히 뉴욕시에서 매우 협조적이었다. 뉴욕의 거리 일부를 막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고, 뉴저지의 패터슨에서도 일부 장면을 찍었다. 나는 이 작품이 연극적이지 않고 영화적이길 바랐다. 실제 뉴욕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대부분 야외에서, 실제 공간에서 촬영했다. 세트에서 찍더라도 사실성과 진정성이 있는 세트 디자인을 원했다. 놀라운 것은 뉴욕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63년, 64년 전 모습 그대로인 구역도 있었다. 뉴욕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도시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

= 하나를 고르기란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꼽자면 <Somewhere>다. 어릴 때부터 제일 좋아한 노래다.

-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곡은.

= 노노노노! <Somewhere> 한곡만 꼽겠다. (웃음)

- 당신은 영화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감독인데, 뮤지컬영화에서의 음악 작업은 기존의 음악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

= 위대한 작곡가 존 윌리엄스와 영화음악 작업을 자주 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할 때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런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건 바꿀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고,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없는 음악이었다. 비록 음 하나도 바꿀 수 없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스코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뮤지컬의 음악 중에서, 내가 들어본 최고의 음악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이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사가로 데뷔했고 뮤지컬 <컴퍼니> <스위니 토드> <숲속으로> 등을 만든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이 녹음실에 찾아왔었다고.

= 스티븐이 3주 동안 녹음실에 찾아왔다. 두명의 스티븐(손드하임과 스필버그)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파트를 녹음하는 동안 스티븐 손드하임이 내게 메모를 건네면 나는 뮤지컬 디렉터에게 그 노트를 전달하고, 뮤지컬 디렉터는 우리의 메모와 자신의 메모를 공연하는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녹음실에서 스티븐과 일주일에 5번 3주간 나란히 앉아 있었던 그 시간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웠다.

- 캐스팅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 진짜 어린 친구들을 캐스팅하는 거였다. 30살 어른이 18살 아이를 연기하는 거 말고, 진짜 18, 19살 배우가 18, 19살 캐릭터를 연기하길 원했다. 대부분 뮤지컬에선 나이 든 어른들이 10대 청년을 연기하곤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단인 샤크파의 배우들은 남자건 여자건 무조건 라틴계 배우여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무척 중요했다. 우리는 20명의 멋진 푸에르토리코 배우와 댄서들을 캐스팅했는데, 라틴계 배우 50명 중 20명이 푸에르토리코 배우였다.

- 출연진 다수가 신인이고 젊은 배우들이라 이를테면 톰 행크스나 메릴 스트립과 일할 때와는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소통법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땠나.

= 서로가 다를 때, 서로 다른 걸 이야기할 때가 더 흥미롭지 않나. 톰 행크스, 메릴 스트립과 나도 늘 서로 다른 것들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내게 7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내 자녀들을 통해서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세대는 달랐지만 배우들과 많은 생각을 나누며 교류했다.

- 1961년의 영화에서 아니타 역을 맡았던 배우 리타 모레노가 이번엔 발렌티나 역으로 특별 출연한다. 어떻게 성사된 출연인가.

= 그건 토니 쿠슈너와 그의 남편인 마크 해리스의 아이디어였다. 1961년 영화에서 캔디 가게를 운영하던 닥의 캐릭터를 이번엔 여자 캐릭터로 바꿔보자, 닥의 미망인 캐릭터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런 결정을 한 다음 바로 떠오른 배우가 리타 모레노였다. 리타 모레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깊이 연결된 인물이며, 뉴욕에 사는 푸에르토리코인으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고 위대한 경력을 가진 배우다. 리타 모레노에게 발렌티나 역을 제안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총괄 프로듀서 역할로도 참여해줘서 고마웠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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