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애주가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고찰 '어나더 라운드'
2022-01-19
글 : 송경원
한잔의 술에 인생이 있다

술이란 무엇인가. 인류사에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아니 해결할 의지가 없는 질문. 토마스 빈터베르의 <어나더 라운드>는 술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을 시도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사라진 열정을 되찾기 위해 알코올 농도에 대한 실험을 벌이는 이 영화는 술에 대한 유쾌한 통찰과 애정으로 가득하다. 2021년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과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비결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균형감각에 있다. 술을 사랑하게 되는 중년 남자들의 해프닝을 해맑게 그리다가도 불현듯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감독의 솜씨는 그야말로 잘 익은 위스키처럼 성숙하다. 여기에 <더 헌트>(2012)에서 호흡을 맞췄던 마스 미켈센, 토머스 보 라센 등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농익어 표정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진실은 술 속에 있다. 진실을 이야기할 기분이 되기 위해서는 취해야 한다.”(리케르트) 영화가 전하는 진심 속에 흠뻑 취해봐도 좋을 것이다.

술은 꼬리가 길다. 한잔 술에 입이 가벼워져 말이 많아지고, 두잔 술에 가슴이 열려 솔직해지고, 세잔 술에 엉덩이를 들썩인 끝에 지나간 자리에 지저분한 흔적을 남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인다. 좋은 날을 기념할 때, 나쁜 기억을 씻기 위해, 행복을 나누고 싶을 때, 화를 삭이거나 슬픔을 달래야 할 때 우리 곁엔 술이 필요하다. 인류사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 사람이 모이는 모든 자리에는 술이 있었다.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를 찾다보면 문명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인류가 정착 생활과 농경 문명을 시작하게 된 원인을 술을 빚어 마시기 위해서라고 보는 가설도 존재한다.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급료의 일부를 맥주로 지급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대항해 시대 영국 해군에 많은 선원들이 몰렸던 것도 물 대신 술을 보급해 공식적으로 취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실제로 선원들의 술 취한 상태를 보다 못한 에드워드 버넌 제독이 1740년, 럼에 물을 희석해서 나눠주라는 명령을 내리자 폭동이 일어날 뻔했다는 기록도 있다(그 결과 럼에 물과 라임 등을 섞은 그로그란 칵테일이 탄생했다). 술은 언제나 마 실 이유를 필요로 하지만 어쩌면 술 뒤에 달라붙은 긴 꼬리들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 알코올의 기분 좋은 해방감을 최대한 오래 지속시킬 수만 있으면 어떤 이유든 갖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는 술을 마시고 싶은, 마셔야 했던 40대 중년 남성들의 변명을 차분히 따라가는 영화다.

애주가를 위한 보고서(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기)

고등학교 역사 교사 마르틴(마스 미켈센)은 권태라는 병으로 시들어가는 중이다. 마흔에 접어든 그는 문득 자신의 삶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야간근무에 시달리는 아내와 대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마주한 지 오래되었고 두 아들과도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멍하니 육신만 끌고 다니는 그의 주변은 항상 정적으로 감싸여 있다. 열의 없는 수업에 학생들이 역사 교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하자 마르틴은 문득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같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친구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의 생일, 마르틴은 참아왔던 술 한잔에 마음이 열려 괴로움을 털어놓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동료 교사이자 친구인 페테르(라스 랑드), 톰뮈(토머스 보 라센) 역시 젊은 날의 생기가 세월에 무뎌지고 있음에 한탄하고, 문득 니콜라이가 술에 대해 주워들은 풍월을 읊는다.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판 스코르데루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 결핍된 농도를 유지하면 창의적이고 용감해진다’는 것. 술자리를 스쳐가는 농담 같은 수다지만 절박한 마르틴은 다음 수업 시간 그 가설을 실행에 옮긴다. 술을 마시고 수업을 진행하는 마르틴은 예전 같은 용기와 활력으로 가득하다.

이후 영화는 네명의 고등학교 교사가 가설의 실험을 핑계로 술을 마시고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른바 ‘인간의 혈중알코올 수치가 0.05% 부족하다는 스코르데루 가설 실험’이다. 1부는 적당한 알코올이 삶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매일 술을 마심으로써 0.05%를 유지한다. 심리와 언어 운동 및 심리-수사적인 영향의 증거를 수집하는 한편 사회적, 직업적 수행 능력 증진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임. 오후 8시 이후와 주말에는 금주.’ 몇 문장 보태는 것만으로 이들의 일탈에는 근사한 명분이 생긴다. 마르틴은 술을 사랑했던 위인들을 재미나게 소개하며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니콜라이 역시 아이들의 집중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을 시도한다. 알코올은 권태의 늪에 잠식되어가던 이들의 반복된 일상에 변화를 불어넣는다. 어쩌면 필요했던 건 약간의 용기와 열정이었겠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준 도화선은 술 혹은 알코올을 빙자한 일탈이다. 여기까진 기분이 가벼워지고 입이 열리는 한잔이다.

실험 결과에 고무된 네명의 중년 사내는 흥분하며 점차 수위를 높인다. 2부는 ‘개인의 혈중알코올농도 실험’이다. ‘각자 다양한 양의 알코올을 매일 섭취해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수행 능력 수준에 이른다. 이에 따른 심리적, 심리-수사적 영향의 증거를 수집’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거창하게 썼지만 그냥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니 좀더 마셔보자는 거다. 한두잔 몰래 마시던 술이 한두병으로 늘고, 8시 이후 금주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다. 물론 네명의 사내도 자신들이 선을 넘는 건 아닌지 살짝 불안해하지만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활력의 유혹이 더 크다. “우린 중독자인가.” “아냐, 중독자라면 이렇게 통제해가며 마시지 못해.” 이들은 취한 것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중간 단계에서 빼어난 음악을 선보였다는 피아니스트 헤르포르트의 음악에 심취하며 결의를 다진다. 여기까지가 가슴이 열리고 솔직해지는 두 번째 잔. 문제는 뒤가 지저분해지는 세 번째 잔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알코올의 무서운 점은 이 가속도를 멈추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윽고 이들은 3부 ‘최대 혈중알코올농도 실험’에 돌입한다. ‘최대 농도에 이르기 위한 알코올 다량 섭취 연구. 해방감과 관련된 심리적 영향 관찰에 중점을 둠. 주변으로부터의 혹은 주변과의 부정적 간섭 차단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 한마디로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보겠다는 것. 뒤는 보지 않아도 빤하다.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이들의 삶은 망가지고,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좋을 것까지 헤집어 풀어낸 끝에 관계마저 부서져간다.

통제되지 않는 것들의 매혹. 양, 원숭이, 돼지, 사자의 시간

포도주의 탄생에 대한 전설이 있다.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을 때 악마가 찾아와 자신도 돕겠다며 네 마리의 짐승을 끌고 왔다. 양, 원숭이, 돼지, 사자의 피를 거름으로 포도나무가 자라자 포도주에 네 짐승의 혼이 스며들었다. 첫잔에는 양처럼 순했다가, 좀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러워졌다가 마침내 사자처럼 난폭해진다는 일화. <어나더 라운드>는 얼핏 술의 속성을 따라가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술은 핑계, 아니 도구일 뿐이다. 마치 술을 마시고 싶어서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처럼, 술이 인생에 가져오는 빛과 그림자는 그저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 정도에 불과하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이 진정 집중하는 건 살아가는 것, 아니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통찰이다. 권태가 영혼을 어떻게 갉아먹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말한다.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는 젊은이와 필사적으로 발버둥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늙어가는 중년의 묘사를 통해 인생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려 했다.”

오프닝에서 학생들은 술 마시기 게임을 벌이며 젊음을 낭비한다. 낭비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삶의 모든 순간이 의미로 가득차는 건 불가능하다. 비워내는 시간이 있어야 뭔가 채울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있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청춘의 특권은 그런 낭비와 일탈, 멍청한 행동마저 아름다울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감독은 이 시기의 축복을 키르케고르의 시로 표현한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마르틴을 비롯한 네명의 교사들도 한때는 청춘의 활력으로 가득찬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마흔에 접어들어 권태의 지옥에 빠진 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망가지는 시간인지 모른다. 달리 표현하자면 젊은 시절에 허락되었던 일탈과 낭비, 그러니까 멍청한 짓들이다. 술은 단지 그걸 할 수 있도록 불을 지피는 부싯돌에 불과하다. 수업 시간에 술을 마셔보자는 이들의 작당 모의는 못된 장난을 벌이는 아이들의 행태를 닮았다. 그럴듯한 실험과 에세이라는 장식으로 꾸몄지만 본질은 망가짐을 통한 해방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 마르틴은 청바지 입고 센 척 돌아다니는 애송이였고, 재즈 발레를 배운 청년이었으며 연구직이나 교수가 될 수도 있었던 유망한 학자이기도 했다. 알코올은 이들을 그 시절로 잠시 데려다놓는다. 누군가를, 아니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불태웠던 한여름의 밤.

물론 달콤한 꿈은 깨기 마련이고, 꿈이 선명할수록 반동의 골도 더 깊고 어두운 법이다. 술과 세월의 닮은 점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많은 애주가들이 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 네명 역시 “도전이란 자신의 토대를 일시적으로 잃는 것이며 도전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잃는 것이다”라는 문구까지 인용, 온갖 변명을 앞에 붙여가며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어쩌면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이때 동원할 변명거리의 개수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빈터베르 감독은 <어나더 라운드>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깃든 선량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세월은, 늙음은 통제할 수 없다. 그리하여 마르틴은, 네명의 교사는 생기 잃은 오늘에 무너져간다. 하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어도 오늘을 받아들이는 건 가능하다. 시간에는 악의가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다만 마주한 이들의 마음을 비추어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드렁크>에서 <어나더 라운드>로 바뀐 건 꽤 의미심장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술이 무언가의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 술을 마실 이유를 찾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술이 무언가에 이유가 되는 상태다. 마르틴이 술 때문에 아내와 관계가 다시 좋아지고, 술 때문에 학생들에게 다시 관심을 끌고, 술 때문에 삶의 활력이 돌아왔다면 그건 술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날아가버릴 백일몽에 불과하다. 술은 어디까지나 그런 변화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촉매에 머물러야 한다. 술이 이유가 되는 순간 술을 마실 이유를 찾으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술을 마셔서 기쁘고, 술을 마셔서 행복하고, 술을 마셔서 괴로움을 잊는다면 술이 없어진 다음에는 감당할 길이 없다. 술은 그저 기쁠 때, 슬플 때, 행복할 때, 괴로울 때 곁에 잠시 함께해주는 동반자 정도면 족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때때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친구. 진정 좋은 친구에겐 이유가 필요 없다. 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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