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 미켈센
조명이 어두운 식당에서 네 남자가 술잔을 기울인다. 은은하게 번지는 조명이 남자의 얼굴에 내려앉고 우물처럼 깊은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비로소 장면이 완성된다. 마스 미켈센의 얼굴은 그 자체로 이야기이고 영화이며 정서다. 별거 아닌 독백도 이 남자의 얼굴을 거치는 순간 잘 숙성된 와인처럼 깊은 향을 머금는다. 2004년 <킹 아더>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마스 미켈센은 주로 무표정하게 적들을 무찌르는, 고독하고 프로페셔널한 전사 역할을 자주 맡아왔지만 실은 누구보다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2012년 <더 헌트>에서 집단의 광기 속에서 묵묵히 이를 감내하는 인물을 통해 얇은 피부 아래 터질 듯한 정념, 무표정의 격정이 무엇인지 여실히 증명했으며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007 카지노 로얄>(2006)의 섹시한 악역이나 <NBC> 드라마 <한니발>에서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벨벳 원단 같은 고급스러움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곧 개봉할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 조니 뎁을 대신해 겔러트 그린델왈드 역을 맡았는데, 공개된 예고편만으로도 조니 뎁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존재감을 선보인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그런 면에서 마스 미켈센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장면이 성립될 정도다(실제로 주류 광고의 모델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선 그가 어린 시절 기계체조를 하고 20대 시절 무용수로 활동했던 경력을 십분 활용한다. 젊은 시절 재즈댄스를 배운 마르틴이 엔딩에서 추는 춤은 삶과 죽음, 애도의 시간, 인생의 복잡한 순간들이 녹아든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배우의 육체가 곧 영화가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이다를 위하여
술은 산 자를 위한 것이지만 때때로 망자를 위한 최상의 선물이다. 술이 제의적인 성격을 띠는 건 가장 귀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술의 취기가 마치 망자와의 교감을 이뤄줄 것만 같은 환상성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다를 위하여’라는 내레이션이 뜬다. <어나더 라운드>의 촬영에 들어간 4일째,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딸 이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본래 이다는 영화에서 마르틴의 딸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빈터베르 감독은 영화의 각본이 조금 비극적으로 기울어졌을 때 딸의 조언으로 밝은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원래는 좀더 파멸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빠, 희망을 줘야 해’라고 말해준 딸 덕분에 밝고 가벼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네명의 친구가 술에 취해 함께 축구를 하는 장면도 딸의 아이디어였다.” 어쩌면 <어나더 라운드>의 가장 아름답고 본질적인 장면은 네 친구의 축구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술은 세월의 권태에 찌든 네 남자의 정신을 철없이 까불던 청춘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마치 아이처럼 어설픈 동작으로 공을 가지고 노는 네 남자의 모습은 <어나더 라운드>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장면 중 하나다. 작품에 등장하는 학교 역시 이다가 실제로 다녔던 학교에서 촬영되었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93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다, 방금 기적이 일어났어.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상은 너를 위한 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