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방관자들' 고수 인터뷰
2022-02-09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체념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고수가 연기한 <방관자들>의 정익제 태이고시 전 부시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그리고 불법 살인 경기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건 오랜 친구 김낙수 의원(이희준)이 등장하면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한 적이 있는 배우 고수는 때로 게임 유저의 입장에서, 또 펍지유니버스의 한 조각을 완성한 배우의 입장에서 답변을 이어나갔다. 짧은 호흡의 작품임에도 그가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과 캐릭터를 관찰하며 촬영을 이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각으로 정익제의 면면을 그려나간 고수의 이야기를 전한다.

-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해본 적 있나.

= 예전에 해봤다. 승패에 크게 욕심이 없어 게임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배틀그라운드>는 재밌게 했다. (웃음)

- <방관자들>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단편이라 대본이 짧은데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배틀그라운드> 유저들은 대부분 그 배경에 어떤 서사가 있는지 궁금해할 테니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그러니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 정익제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 일단 태이고시에서 벌어진 그 모든 사건을 알고 겪은 인물이다. 정익제만이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아 혼자서 굉장히 두려웠을 거다.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지만 거대 세력이 자신을 예의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인 김낙수 의원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 직감하고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고자 마음을 바꾼다. 영화에서 김낙수는 말이 많지 않나. 대사로 그 모든 걸 표현하는데 정익제는 대사보다는 표정이나 행동, 분위기로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전달해야 했다. 그래서 대사 외적인 면에 집중했다.

- 이종석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방관자들>은 큰 사건이 진행되는 중간 단계라 전반적인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정익제의 경우 극적인 것보다 리얼하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연기 톤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 촬영 현장에 실제로 100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있었다고 들었다. 좁은 공간을 빽빽이 채운 수많은 기자와 국회의원 사이에서 정익제의 편은 오로지 김낙수 한 사람뿐이다.

= 뉴스 자료화면처럼 나오다가 청문회 현장으로 딱 전환되는 시점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청문회 현장은, 익제가 말 한마디하면 득달같이 꼬투리를 잡는 상황이 이어지지 않나. 배우들이 전부 실감나게 연기해서 몰입이 됐고 약간의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검은색 슈트를 입었는데 정익제와 김낙수만 베이지 톤의 의상을 입었다.

= 죄수복이 보통 푸른색인데 이번엔 감독님이 베이지 톤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영화의 배경이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될 무렵이라 좀더 과거의 느낌을 주기 위해 그렇게 컨셉을 잡으신 것 같다.

- 이희준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 총 2회차의 짧은 촬영이었는데 이희준 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대본에 묘사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맡은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상황을 잘 표현하는 배우였다.

- 김낙수와 정익제는 어떤 관계였다고 생각하나.

= 예전엔 아주 친한 친구였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이가 차츰 멀어지지 않았을까. 사건을 겪고 나서 정익제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됐을 거다. 청문회 현장에서도 김낙수를 곧바로 믿었겠나. 그러다 정익제가 물 폭탄 세례를 받고 테이블 위에 김낙수가 손수건을 얹어주면서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그 손수건은 어렸을 때 정익제가 김낙수에게 생일 선물로 준 것이란 설정이 있다. 그걸 받고 익제가 ‘낙수라면 나를 도와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 “IMF 외환 위기 때 다 죽어가는 시골 동네 살리겠다고 혼자 구른 게 나다”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입을 닫고 있던 정익제가 거의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 침묵하는 연기는… 정말 힘들다. (웃음) 그 대사는 정익제가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이지 않나. 참다못해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이니 감정을 좀 표출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 <방관자들>은 펍지유니버스의 일부에 해당한다. 한편의 영화로 완결되지 않는 이야기에 참여하는 건 배우로서도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 펍지유니버스의 또 다른 단편인 <그라운드 제로>를 봤다. 마동석 형이 알고 보면 되게 부드러운 사람인데 영화에서 과격한 면이 부각되니 무섭기도 하고, 고생했겠다 싶고. (웃음) 그래도 굉장히 흥미롭더라. 여러 작품이 이어지다 보니 <방관자들>도 가능성이 열려 있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그런 작품을 선호해서 촬영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그라운드 제로>와 <방관자들> 그리고 곧이어 공개될 <붉은 얼굴>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펍지유니버스의 퍼즐이 어떻게 맞춰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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