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배틀그라운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단편 <100>에서 김낙수 의원(이희준)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찾기 위해 <배틀그라운드> 게임에 참가한 국가정보요원 천호영(엄태구)에게 김낙수는 “나 죽인다고 이 게임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다. <방관자들>은 <100>보다 앞선 시점의 이야기로, 김낙수 의원이 태이고시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의문의 살인 경기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청문회에서 정익제 전 부시장(고수)의 유일한 편이 되어준다. 하나의 캐릭터로 <100>과 <방관자들>을 촬영한 배우 이희준은, 두편에 드러난 김낙수의 변화 과정을 계속 염두에 두고 정익제와 김낙수의 관계, 김낙수가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며 다채롭게 캐릭터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 연출과 출연을 겸한 <병훈의 하루>(2018) 이후 오랜만의 단편 출연이다.
= 그렇다. 이야기를 간결하게, 이미지적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게 단편의 매력인 것 같다. 더 하고 싶었는데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웃음)
- <방관자들>의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다고.
= 100명이 모여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배틀그라운드>에 여러 가지 상상력을 더해 세계관을 넓혀가는 게 재밌었다. 해외에는 마블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런 시도가 거의 없었으니까. 작품 자체가 열려 있어 같이 대화하며 창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펍지유니버스와 관련해 <방관자들>과 <100> 두편을 촬영했는데, 김낙수라는 한 캐릭터로 두명의 감독님과 작업한 과정도 신선했다.
- 김낙수 의원을 연기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 <방관자들>의 김낙수가 젊고 정의로운 국회의원으로 그려진다면, <100>에서는 어둠의 세력과 결탁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해버린다. 그런 변화에 집중해서 <방관자들>에서 <100>보다 더 정의롭고 완강한 김낙수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 촬영 전부터 이종석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들었다.
= 의상부터 대화를 나눴는데 처음에는 김낙수의 의상 톤이 블루였다. 그런데 막상 블루 슈트를 입으니 클럽 DJ같아 보였다. (웃음) 김낙수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힘을 쏟는 사람일 것 같아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되 조금 후줄근하게 입고 나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먼저 촬영한 <100>에 안경을 쓰고 나와서 이번에도 안경을 써서 연결점을 주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고수 형이 쓰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촬영 끝나고 나니 고수 형도 안경을 안 썼더라. (웃음) 김낙수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 영화에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국회 청문회 분위기가 잘 연출되어 있다.
= 2002년 월드컵이라는 시대 배경에 맞춰 현장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그 당시의 화면 비율과 색감을 살리려고 옛날 캠코더로 촬영한 부분들이 있다. 옛날 카메라로 찍은 부분들이 인상적이더라.
- 김낙수 의원은 청문회에서 유일하게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인물이다. 그가 이 사건에 관해 그토록 깊게 파고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 김낙수는 정익제와 어릴 때부터 태이고시에서 함께 나고 자랐다. 다만 정익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부시장이 되었고, 김낙수는 좀더 험난한 길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시간을 보낸 뒤 어느 날 자기 친구가 음모에 휘말려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걸 청문회에서 밝혀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 중간에 정익제가 “내가 태이고시를 살리려 할 동안 의원님은 뭘 하셨냐”라고 묻는다. 김낙수 의원이 그간 태이고시에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어느 정도는 그 자신도 방관자였음을 반성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 그런 것도 있을 거다. 자기 살기 바빠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겠지.
- 청문회가 잠시 중단됐을 때 김낙수 의원이 주변을 살피는 눈빛이 남다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을까.
= 많은 이들이 연루됐다는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국회의원들과 의장까지 전부 다 연관됐다는 걸 그 순간 확신한 것 같다. 중단된 청문회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을 거란 직감이 들지 않았을까.
- 이 모든 비리와 사건을 김낙수 의원이 직접 설명한다. 대사량이 엄청나던데 부담스럽진 않았나.
= 사실 재밌었다.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김낙수 입장에서도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비리에 관해 언급하기보다, 이 사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드러낼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예정된 차기작이 많다. 영화 <핸섬 가이즈>와 <보고타>에 출연했고, 현재 <그때도 오늘>이라는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 <핸섬 가이즈>와 <보고타> 모두 촬영을 마쳤다. <그때도 오늘>은 창작극이다. 진선규 형과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라는 극단을 창단했는데, 사람 둘이 나와서 실컷 연기하는 극을 해보자고 해서 만들게 됐다. 걱정이 많았는데 많이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매일 무대에 오르고, 컷 없이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는 면에서 참 행복한 작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