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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시네마] 매혹당한 사람들 '애나 만들기'
2022-02-25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뛰어난 사기꾼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숨 쉬듯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로 거짓말을 덮고,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고 이간질하며, 모든 것이 드러난 뒤에도 자신은 나쁜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 ‘그냥 일이 조금 잘못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가까이할수록 발은 점점 수렁에 빠진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사기꾼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나의 안온한 일상을 지키며 멀찌감치 물러서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숀다 라임스가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만들기>는 독일 부호의 상속녀를 자처하는 애나(줄리아 가너)의 뉴욕 사교계 입성과 몰락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뉴욕에선 대개 그렇듯,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돈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인 기자 비비안(애나 클럼스키)이 애나에 관해 쓴 기사의 첫 문장이다. 애나는 자신을 ‘금수저’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남들의 돈을 끌어다 쓴다. 부자 지인의 카드를 몰래 긁고, 친구의 회사 법인카드를 긁게 하고, 무전취식에, 은행 대출까지 받는다. 법과 금융 전문가라는 남자들조차 애나의 남다른 매력에 빠져 판단력을 잃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애나와 다른 여자들의 관계다. 애나는 자매애, 성차별을 향한 분노, 호화로운 라이프 스타일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맥과 돈을 빨아들인다. 애나의 친구였던 피해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나가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뛰어난 사기꾼은 상대의 욕망을 그 자신보다도 더 정확하게 읽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한다. 비비안에게는 모종의 사건으로 무너진 커리어와 평판을 출산 전에 회복하려는 야망이 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비켜서지 않는 여자들의 부릅뜬 눈과 굳센 입매는 <애나 만들기>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다. 누구에게도 온전히 호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각각을 이해할 수 있고 다음 순간 다시 멀리하고 싶어진다는 면에서 지독하게 생생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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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 넷플릭스

사기꾼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애나는 지인 빌리의 집에 잠시 얹혀산다. 빌리는 바하마의 섬에서 멋진 파티를 열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하는데, 그 행사의 이름을 듣는 순간 비명을 지른 시청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없던 끝내주는 음악 페스티벌 ‘FYRE’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파국이다.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 넷플릭스

틴더에서 알게 된 남자가 자신을 억만장자의 후계자라고 소개한다. 꿈같은 데이트가 이어지던 어느 날, 그가 외국에서 강도를 당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속느냐고? 애나와 이 다큐의 주인공 사이먼 레비예프는 타인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거나 훔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을 잊지 말자. 나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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